우리 역사 이야기 · 15화 · 초등 3~4 · 4분
닷새마다 등짐을 지고 다음 장으로 떠난 사람들이 있었다

1832년 이른 새벽, 충청도 강경 장터였어요. 등짐을 진 사내 여럿이 줄지어 들어섰어요.
이들은 보부상이라 불렸어요. 봇짐이나 등짐에 물건을 지고 전국 장터를 돌아다니는 상인이었어요.
물건을 나르는 방식은 둘로 나뉘었어요. 바늘이나 옷감처럼 가벼운 것은 보자기에 싸서 들었어요.
소금이나 생선, 놋그릇처럼 무거운 것은 지게에 짊어졌어요. 보자기 짐을 진 이는 보상, 지게 짐을 진 이는 부상이라 불렀어요.
둘을 합쳐 보부상이라고 했어요. 오늘은 강경, 다음은 논산, 그다음은 공주로 짐을 옮겨야 했어요.
이런 상인은 고려 시대부터 있었다고 전해져요. 조선에 들어와서는 그 수가 크게 늘었대요.
여성 상인도 있었어요. 방물장수라 불린 이들은 화장품이나 바느질 도구를 지고 다녔어요.
방물장수는 집안까지 들어가 물건을 팔았어요. 문밖 출입이 자유롭지 않던 여성들에게는 반가운 손님이었대요.
장은 아무 날에나 서지 않았어요. 닷새마다 한 번씩 열리는 오일장을 따라 고을과 고을 사이를 옮겨 다녔어요.
하루에 몇십 리 길을 걸어야 다음 장에 닿을 수 있었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짐을 지고 걸음을 재촉했어요.
지게를 받쳐 세우는 지팡이는 물미장이라 불렸어요. 걸을 때는 지팡이였지만 위급할 때는 몸을 지키는 도구도 되었어요.
혼자 다니면 도적을 만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기 쉬웠어요. 밤길에 짐을 몽땅 빼앗기는 상인도 있었다고 전해져요.
그래서 보부상들은 임방이라는 조직을 만들었어요. 같은 임방 소속끼리는 서로 돕고 규칙을 지키기로 약속했어요.
임방마다 우두머리를 뽑아 규율을 어긴 사람을 가려냈어요. 동료가 병들면 돌아가며 짐을 대신 져 주었대요.
다투는 이가 생기면 임방 어른이 나서서 시비를 가려 주었어요.
나라도 이들을 인정해 신표라는 증표를 내주었어요. 신표가 있으면 낯선 고을에서도 정식 상인으로 대접받았어요.
보부상은 물건만 나른 것이 아니었어요. 이 고을 소식을 저 고을에 전하기도 했다고 전해져요.
기차도 신문도 없던 시절이었어요. 장터를 오가는 보부상의 입에서 입으로 소식이 옮겨 갔대요.
오늘날에는 택배 기사가 트럭에 물건을 싣고 하루 만에 먼 곳까지 배달해요. 보부상은 그 먼 길을 오직 두 다리로 걸어서 날랐어요.
갑오개혁이 일어난 뒤 보부상 조직은 상무사라는 이름으로 개편되었어요.
철도가 놓이고 기차가 짐을 대신 실어 나르기 시작했어요. 보부상의 발길은 그만큼 점점 줄어들었어요.
지금도 몇몇 옛 장터 골목에는 그 시절 상인들이 다니던 길의 흔적이 남아 있어요. 등짐과 봇짐 대신 무엇이 그 길을 오가고 있을까요?
다 읽었으면 한 문제 — 무거운 소금이나 그릇을 지게에 지고 다닌 상인을 무엇이라고 불렀을까요?
정답: 부상
가벼운 물건은 보자기에 싸서 든 보상이, 무거운 물건은 지게에 진 부상이 날랐어요. 둘을 합쳐 보부상이라 불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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