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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정 — 열일곱 번째 속성
    1 · 2026년 8월 3일

    짐과 벽 사이

    해 뜨기 전 마당, 아홉 살 아이가 큰 신을 신고 손을 펴고 단 앞에 서 있다. 단 위에는 놋그릇 하나, 마른 나뭇가지 한 단, 물 한 사발이 놓였고 늙은 기록관이 붓을 들고 아이를 보고 있다. 뒤쪽 그늘에는 색 띠를 어깨에 걸친 사람들이 앉아 있다.
    아홉 살 아이가 손을 펴고 섰고, 붓은 세 번 바뀌었다.

    은포에서 계 없이 먹고사는 방법은 세 가지다. 짐을 나르거나, 줄을 서거나, 남이 하기 싫은 것을 한다.

    소하는 세 가지를 다 했다.

    새벽에는 어물전 짐을 나른다. 해가 오르면 관청 앞에 줄을 선다. 인지를 떼려는 사람이 하루에 백 명씩 오는데 그중 절반은 줄을 설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라, 대신 서 주면 두 푼을 받는다. 오후에는 무엇이든 한다. 지난달에는 죽은 개를 치웠고 그 전에는 뒷간을 팠다.

    "소하야."

    어물전 주인이 광주리를 턱으로 가리켰다. "저거 열둘, 서쪽 창고."

    소하는 광주리를 등에 얹었다. 여덟 개까지는 한 번에 진다. 열둘은 두 번이다. 주인은 그걸 알면서 열둘이라고 한다. 두 번 가는 값을 한 번으로 치려는 것이다.

    "두 번인데요."

    "뼈꾼은 한 번에 가."

    "저는 뼈가 아니고요."

    "그러니까 값이 그것밖에 안 되지."

    소하는 더 말하지 않았다. 말해서 값이 오른 적이 없었다.

    서쪽 창고까지는 시장을 가로질러야 한다. 아침 시장은 걷는 곳이 아니라 밀리는 곳이다. 광주리를 지고 사람 사이를 지나가려면 어깨를 반쯤 돌린 채 옆걸음으로 가야 하고, 그렇게 가면 등이 벽에 긁힌다.

    가는 길에 계 사람들의 일이 보인다.

    쌀집 앞에서 흔적꾼이 자루에 손을 얹고 있었다. 값을 매기는 게 아니라 이 자루가 어제 어디 있었는지를 읽는 것이다. 물에 젖었다 마른 쌀을 새 쌀이라고 팔면 흔적꾼이 잡아낸다. 그래서 큰 쌀집은 흔적꾼을 하나씩 앉혀놓고, 그 값을 쌀값에 얹는다.

    다리 밑에서는 매듭꾼이 사람 팔을 붙이고 있었다. 어젯밤에 싸움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매듭꾼이 실을 손가락에 감고 상처 양쪽을 잡자 벌어져 있던 것이 닫혔다. 값은 두 냥이라고 했다. 두 냥이면 소하가 한 달을 줄 서야 하는 돈이었다.

    소하는 그 사이를 지나간다. 아무것도 읽지 못하고 아무것도 닫지 못하고 아무 소리도 못 보내면서, 등에 광주리를 지고 지나간다.

    열아홉이 되고 나서 달라진 것은 하나였다. 사람들이 이제 안 묻는다. 어릴 때는 다들 물었다. 미정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진짜 아무것도 안 나왔냐, 다시 적으면 안 되느냐. 지금은 아무도 묻지 않는다. 물어볼 만한 일이 아니라 그냥 소하가 그런 사람인 것으로 정해졌다.

    소하가 아홉 살 되던 해 마당에서 있었던 일은 이렇다.

    그날 소하는 신이 컸다. 어머니가 다음 해까지 신으라고 큰 것을 사줘서, 줄에 설 때는 발가락을 오그려 신 안쪽을 붙잡고 있었다. 그해 아홉 살은 스물세 명이었고 소하가 스물세 번째였다. 앞에서 한 아이는 놋그릇을 검게 만들었고 뒤쪽 그늘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그다음 아이는 두리였는데, 두리가 손을 편 자리에서 마른 나뭇가지 한 단이 저 혼자 섰다. 두리 아버지가 마당 가에 주저앉아 웃었다.

    소하 차례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놋그릇은 놋그릇이었고 나뭇가지는 나뭇가지였고 물은 물이었다. 열을 셀 사이면 되는 것을, 기록관이 스물을 넘게 세도록 소하를 세워뒀다.

    그러고 나서 적으려는데 붓이 종이에 닿지 않았다. 기록관은 붓을 세 번 바꿨다. 네 번째에 겨우 두 글자가 적혔다.

    미정.

    관 옷을 입은 사람이 어머니에게 와서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다. 어머니가 두 번 되물었고 두 번 다 같은 대답을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신이 벗겨졌고, 어머니는 그것을 신겨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열넷에는 계에 들어가려고 해본 적이 있다.

    매듭계 문 앞에 아침부터 서 있었다. 매듭은 손이 좋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고, 소하는 자기 손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문이 열리고 나온 사람은 소하를 위아래로 보지도 않았다.

    "속성."

    "…없습니다."

    "없는 사람은 없어. 뭐라고 적혔어."

    "미정입니다."

    그 사람은 잠깐 멈췄다. 그리고 안쪽을 향해 누구를 불렀다. 두 사람이 나와서 소하를 봤다. 구경한 것이다. 소하는 그때 처음으로 자기가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라는 걸 알았다.

    "미정은 못 받는다."

    "손은 나쁘지 않은데요."

    "손이 문제가 아니야." 그 사람이 말했다. "우리가 가르치는 건 매듭 쓰는 법이야. 너한테 가르치면 그건 매듭이 아니고, 매듭이 아닌 걸 가르치면 우리가 벌을 받아. 알겠니."

    알아들었다. 그 뒤로는 어느 계 문 앞에도 서지 않았다.

    어머니만 아직 묻는다. 일 년에 한 번쯤, 밤에 등을 끄고 나서.

    "손을 다시 펴보면 어떻겠니."

    "열아홉인데요."

    "아홉 살에 안 나온 사람이 스물에 나온 적도 있다더라."

    그런 적은 없다. 소하도 알고 어머니도 안다. 그래도 어머니는 일 년에 한 번씩 그 말을 하고, 소하는 일 년에 한 번씩 손을 펴본다. 아무 일도 없다. 그러면 둘 다 그날은 더 말하지 않고 잔다.

    해가 오르고 나서는 관청 앞에 섰다.

    줄은 이미 담을 따라 꺾여 있었다. 소하 앞에는 나이 든 여자가 서 있었고 그 앞에는 아이를 업은 남자가 있었다. 둘 다 대신 선 사람이었다. 줄 앞쪽에서 누가 자리를 팔고 있었다. 앞자리는 다섯 푼, 그 뒤는 세 푼. 관청에서는 그걸 알면서 내버려 둔다.

    소하가 대신 선 사람은 뼈계 사람이었다. 뼈꾼은 아침에 일하고 낮에 잔다. 그래서 인지 떼는 일을 남에게 맡긴다.

    "어느 계요." 창구 안에서 물었다.

    "뼈계 사람 대신 왔습니다." 소하는 종이를 밀어 넣었다.

    "본인 것도 떼려면 지금 떼요."

    "제 건 없습니다."

    창구 안의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소하 얼굴을 보고, 어깨를 보고, 띠가 없는 것을 봤다.

    "이름은 있고?"

    농담이었다. 관청 사람들은 그런 농담을 한다. 이름 속성이 관에서 관리되는 것이라 이름이라는 말로 농담을 하면 자기가 관 사람이라는 게 표시가 나기 때문이다. 소하는 웃지 않았고 창구 안의 사람도 웃지 않았다. 그냥 도장을 찍고 종이를 밀어냈다.

    "다음."

    두 번째 짐을 지고 나선 것은 해가 꽤 오른 뒤였다.

    골목은 아까보다 더 밀렸다. 소하는 벽 쪽으로 붙어 걸었다. 반대쪽에서 짐수레가 들어오고 있었다.

    짐수레가 골목에 들어오면 안 된다. 은포 규정에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규정을 지키면 짐이 안 나가니까 다들 들어오고, 골목에서 수레를 만나면 사람이 알아서 비켜야 한다.

    소하는 벽에 등을 붙였다. 광주리 때문에 등이 완전히 붙지 않았다. 수레는 멈추지 않았다. 수레를 끄는 사람은 앞만 보고 있었고, 뒤에서 미는 둘은 아래만 보고 있었다.

    벽과 수레 사이가 좁아졌다. 한 뼘, 반 뼘.

    소하는 광주리 끈을 쥐었다. 끈을 쥐어도 광주리가 작아지지는 않는다. 짐꾼이 골목에서 수레에 끼면 광주리부터 터지고 그다음이 갈비다. 작년에 그렇게 죽은 사람이 있었다. 뼈꾼이 와서 갈비를 세우기는 했는데 그 사람은 그 뒤로 짐을 못 졌다.

    소하는 눈을 감았다.

    끼지 않았다.

    수레가 지나가는 동안 소하는 눈을 감은 채 서 있었다. 바퀴 소리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겨갔다. 나무가 삐걱거리는 소리, 미는 사람의 숨소리, 누가 웃는 소리. 다 지나갔다.

    눈을 떴다.

    벽은 등 뒤에 있었다. 수레는 이미 골목 끝으로 가고 있었다. 광주리도 그대로였고 어깨도 아프지 않았다.

    소하는 벽과 자기 사이를 봤다. 그리고 손을 들어 그 사이에 넣어봤다. 벽에 손등이 닿았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새벽의 좁은 흙벽 골목. 오른쪽으로 짐을 가득 실은 수레가 지나가고, 벽과 수레 사이 좁은 틈에 등에 큰 광주리를 진 마른 청년이 눈을 감은 채 옆걸음으로 서 있다.
    들어갈 수 없는 폭이었는데 소하는 끼지 않았다.

    지나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골목에서 수레를 만나면 다들 어떻게든 지나간다. 붙어 서면 되고, 안 되면 광주리를 앞으로 돌려 안으면 된다. 그렇게 해왔다.

    다만 광주리를 앞으로 돌린 기억은 없었다.

    소하는 광주리를 고쳐 지고 걸었다. 서쪽 창고에 짐을 부리고 값을 받았다. 두 번 간 값이 아니라 한 번 간 값이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말했다. 값은 오르지 않았다.

    그날 저녁, 어물전 뒤에서 밥을 먹을 때 옆에 앉은 늙은 짐꾼이 물었다.

    "아침에 골목에서 수레 만났지."

    "네."

    "어떻게 지나갔어."

    소하는 숟가락을 멈췄다. "…붙어 섰는데요."

    "그 골목 폭이 다섯 자야." 늙은 짐꾼이 자기 밥그릇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수레가 넉 자 반이고. 니 광주리가 한 자 반이지."

    소하는 셈을 해봤다. 다섯 자에 넉 자 반을 빼면 반 자가 남는다. 광주리는 한 자 반이다.

    "그러니까 니가 어떻게 지나갔냐고."

    소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늙은 짐꾼은 더 묻지 않고 밥을 먹었다. 다 먹고 일어나면서 한 번만 더 말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왜요."

    "허가 없는 건 다 죄니까."

    그가 그릇을 놓고 갔다. 소하는 남은 밥을 다 먹었다. 손이 조금 떨렸는데 배가 고파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집에 와서는 어머니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등잔을 켰다.

    소하는 방문을 닫고 문틀에 손가락을 대봤다. 문과 문틀 사이에 손가락을 넣고 문을 당겼다. 아팠다. 손가락을 빼고 손톱을 봤다. 피는 안 났지만 눌린 자리가 흰색으로 남았다.

    다음에는 벽에 등을 붙이고 서봤다. 아침처럼 광주리를 진 것처럼 팔을 벌리고, 벽과 자기 사이를 생각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 벽은 벽이었고 등은 등이었다.

    마지막으로 소하는 상 아래에서 붓을 꺼냈다.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적는 날 이야기는 어머니가 열 번은 넘게 해줬다. 기록관이 붓을 세 번 바꿨다는 것도, 세 번째 붓으로 종이 맨 아래 여백에 겨우 두 글자를 적었다는 것도 그래서 안다.

    소하는 먹을 조금 개고 붓을 적셔서 종이에 댔다.

    먹이 묻었다.

    한 번 더 댔다. 또 묻었다. 획을 그으니 그냥 그어졌다. 소하는 종이가 다 검어질 때까지 붓을 댔다가 떼고 댔다가 떼고 했다. 붓은 계속 종이에 닿았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도 종이가 다 젖은 뒤에 소하는 한참 앉아 있었다.

    "소하야."

    어머니가 깬 것이었다. 소하는 붓을 내려놓았다.

    "…자요."

    어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등잔을 껐다. 어두워진 뒤에 어머니가 한 번 말했다.

    "오늘 뭐 있었니."

    소하는 벽과 수레 사이를 생각했다. 다섯 자에서 넉 자 반을 빼면 반 자다. 광주리는 한 자 반이다. 말하면 어머니는 내일부터 일 년에 한 번이 아니라 하루에 한 번씩 손을 펴보라고 할 것이다.

    "아니요."

    그리고 어물전 담 위에서, 어깨에 아무 띠도 걸치지 않은 사람이 그 골목을 아침부터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것은 소하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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