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이야기 · 22화 · 초등 3~4 · 5분
한겨울에 캔 얼음이 한여름 밥상까지 살아남은 비밀

1740년 한겨울, 한강 노들나루에 도끼질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어요.
두꺼운 강 얼음을 사람들이 힘껏 잘라내고 있었어요.
이 일을 나라에서는 장빙역이라고 불렀어요.
겨울철 부역으로 백성들이 강제로 동원되는 힘든 일이었어요.
찬물에 손을 담그고 얼음을 톱으로 켜다 다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해져요.
그해 겨울 강이 충분히 얼지 않으면 큰 걱정거리가 됐어요.
얼음을 제대로 못 캐면 이듬해 여름을 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캐낸 얼음은 돌로 쌓은 커다란 창고로 옮겨졌어요.
이 창고를 석빙고라고 불렀어요.
석빙고는 두꺼운 돌벽과 흙더미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었어요.
짓는 자리도 아무 데나 고르지 않았어요.
그늘이 지고 바람이 잘 통하는 산기슭을 일부러 골랐다고 전해져요.
그냥 쌓아만 두면 한여름이 오기 전에 다 녹아 버렸을 거예요.
그래서 얼음 사이사이에 볏짚과 왕겨를 촘촘히 채워 넣었어요.
짚과 왕겨는 얼음끼리 서로 붙지 않게 하고 바깥 열도 막아 주었어요.
얼음덩이는 정간이라는 나무틀 위에 가지런히 쌓아 올렸어요.
이렇게 해야 무게에 눌려 무너지지 않았다고 해요.
지붕에는 좁은 통풍구도 뚫려 있었어요.
창고 안의 더운 공기가 위로 빠져나가도록 만든 장치였어요.
바닥은 한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었어요.
얼음이 녹은 물이 배수로를 타고 빠르게 빠져나가게 하려는 것이었어요.
물이 고여 있으면 얼음이 훨씬 더 빨리 녹기 때문이에요.
돌벽과 짚, 통풍구와 배수로가 함께 얼음을 여름까지 지켜 냈어요.
서울에는 이런 얼음 창고가 두 곳 있었다고 전해져요.
하나는 제사에 쓸 얼음을 보관하는 동빙고였어요.
다른 하나는 왕실과 관청에 나눠 줄 얼음을 보관하는 서빙고였어요.
이런 얼음 창고는 조선보다도 훨씬 전인 삼국시대부터 있었다고 전해져요.
수백 년 동안 얼음을 저장하는 방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여름이 되면 서빙고의 얼음을 조금씩 꺼내 나누어 주었어요.
하지만 아무나 원하는 만큼 받을 수는 없었어요.
관리들은 벼슬의 높고 낮음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얼음의 양이 정해져 있었어요.
얼음을 타 갈 수 있는 증표를 빙표라고 불렀어요.
빙표에 적힌 양만큼만 얼음을 받아 갈 수 있었어요.
높은 벼슬일수록 더 많은 얼음을 받았다고 전해져요.
궁궐에서는 이 얼음으로 음식을 차게 보관하거나 여름 더위를 식혔어요.
반면 겨울에 얼음을 직접 캐낸 백성들은 정작 그 얼음을 구경하기도 어려웠어요.
가장 고된 일을 한 사람과 가장 시원한 여름을 보낸 사람이 서로 달랐어요.
오늘날 아이스박스도 이와 비슷한 원리를 써요.
스티로폼 같은 소재로 얼음 둘레를 감싸 찬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요.
짚과 돌벽이 하던 일을 지금은 얇은 단열재가 대신하고 있어요.
전기로 얼음을 얼리는 냉장고는 백 년 조금 넘는 역사밖에 안 됐어요.
그 전까지는 이런 방식이 사람이 가진 거의 유일한 냉장 기술이었어요.
냉장고가 없던 시절, 한여름의 시원함은 겨울 한강의 노동에서 시작됐어요.
그 여름 한 그릇의 시원함 뒤에는, 한겨울 한강에서 흘린 땀이 있었어요.
다 읽었으면 한 문제 — 석빙고 안에서 얼음 사이사이에 볏짚과 왕겨를 채운 까닭은 무엇일까요?
정답: 얼음끼리 서로 붙지 않게 하고 바깥의 열도 막아 주려고
짚과 왕겨는 얼음 사이에 틈을 만들어 서로 들러붙지 않게 하고, 바깥의 더운 공기가 전해지는 것도 막아 주는 단열재 역할을 했어요.
이 이야기가 참고한 자료
※ 이 글은 위 자료를 바탕으로 생성형 AI가 초안을 쓰고 사람이 확인해 다듬었습니다. 삽화도 AI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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