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는 사람
열흘째 새벽이었다. 밧줄이 우물 턱에 걸린 채 밤을 났고, 젖었던 자리가 마르면서 흰 것이 서걱하게 앉아 있었다. 소하는 손바닥으로 그 위를 쓸어보았다. 부스러기가 손금에 끼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늙은 짐꾼이 그것을 손가락으로 찍어 혀끝에 댔다. 한참 입을 다물고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짜지 않소." "소금이면 짜야 하고 재면 떫어야 하는데, 이건 혀에 아무것도 안 옵니다."
소하는 매듭을 세면서 밧줄을 손으로 훑어 내려갔다. 열두 번째 매듭까지 젖어 있었다. 어제는 열이었다. 흰 것은 아홉 번째부터 열두 번째 사이에만 앉아 있었다.
늙은 짐꾼이 지팡이로 마당을 짚어가며 걸음을 셌다. "열넷이오." 어제는 열이었다. "서쪽 담까지 넉 걸음 남았소." 짐꾼은 젖은 자리 끝에 지팡이를 꽂아 표를 해두었다.
소하는 밧줄을 놓고 눈썹 자리를 손끝으로 짚었다. 손끝이 닿았다는 것은 손끝 쪽으로 알았고, 눈썹 쪽으로는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어제까지는 눈썹 아래에서 멈춰 있던 자리였다.
소하는 눈을 감아보았다. 오른쪽은 감기는 것이 느껴졌다. 눈꺼풀이 내려가면서 속눈썹이 뺨에 닿는 것까지 알았다. 왼쪽은 아무것도 없었다. 감았는지 떴는지 알 수 없었다.
소하는 왼쪽 눈꺼풀을 손가락으로 만져 확인했다. 감겨 있었다. 손을 떼고 다시 감아보았다. 또 알 수 없었다. 세 번 그렇게 했다. 세 번 다 손으로 만져야 알았다.
늙은 기록관이 아침마다 묻는 두 가지를 물으러 왔다. 소하는 먼저 대답했다. "눈썹을 넘었습니다. 이마 하나 남았습니다." 기록관은 못을 우물 턱 돌에 대고 그 말을 새겼다. 못이 돌을 긁는 소리가 마당 끝까지 갔다.
"넘은 뒤에 없어진 것이 있습니까." 기록관이 물었다.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모릅니다." 소하가 왼쪽 눈꺼풀에 손가락을 대 보이며 말했다. "만져봐야 압니다."
기록관의 못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는 아무 말도 보태지 않고 새긴 글자 옆에 획 하나를 더 그었다.
마당에 삼태기가 멈춰 서 있었다. 어제까지 우물로 들어가던 흙과 돌이 오늘은 마당 한쪽에 쌓인 채였다.
은실 두 줄이 그 사이를 지나 우물 쪽으로 왔다. 그가 소하의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을 대라." 그가 젖은 흙을 가리켰다.
소하는 무릎을 꿇고 왼손을 흙에 댔다. 손바닥 전체가 닿도록 눌렀다. 흙은 그대로 젖어 있었다. 손을 뗀 자리에도 물이 배어 나왔다.
우물물을 길어 놋그릇에 부었다. 소하가 그 안에 왼손을 담갔다. 손목까지 넣고 한참 있었다. 물은 줄지 않았다.
은실 두 줄이 소매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릇 옆에 놓았다. 관에서 쓰는 흔한 통행 기록이었다. 소하는 젖은 왼손을 그 위에 얹었다. 글자가 있던 자리가 그냥 종이가 되었다. 대여섯 자가 한 번에 없어졌다.
은실 두 줄은 종이와 그릇을 번갈아 보았다. 오래 보았다. "물은 얹혀 있는 게 아니로군." 그가 종이를 접어 소매에 넣었다. 목소리에는 실망도 노여움도 없었다. 될 만한 것 하나를 지워 없앤 사람의 얼굴이었다.
기록관이 그 결과도 못으로 새겼다. 은실 두 줄은 막지 않았다.
"메우는 것을 그만둡니다." 은실 두 줄이 마당 전체가 들리게 말했다. "담을 헐고 우물을 관 밖으로 냅니다. 서쪽 담부터 스무 자."
"관 밖으로 내면 사람이 못 들어갑니다." 기록관이 못을 쥔 채 돌아섰다. "관 안의 우물이라 관 사람이 내려갔습니다. 밖이 되면 밧줄을 내리는 것도 규정 밖입니다."
"압니다." 은실 두 줄이 서쪽 담을 손으로 가리켰다. "못 재고 못 메우면 남는 것은 지키는 것인데, 지키는 데도 사람이 듭니다. 관 안에 있는 동안은 여기서 생기는 일이 전부 관의 일입니다. 밖이면 아닙니다."
그는 소하 쪽을 한 번 보았다. "오늘 안에 끝낼 일이 있으면 오늘 안에 하십시오." 그러고는 일꾼들에게 곡괭이를 나눠주라 일렀다.
곡괭이가 서쪽 담에 처음 들어갔을 때 흙벽 안쪽에서 냄새가 났다. 오래 갇혀 있던 마른 흙 냄새였다. 볕도 비도 이백 년 동안 못 든 자리의 냄새라 마당 흙과는 아주 달랐다.
담이 한 칸 무너지자 그 아래 그림자가 없어졌다. 무명이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민 채였다. 손끝은 여전히 허공을 짚고 있었다.
은실 두 줄이 걸음을 멈추고 코를 조금 들었다. "이 사람한테서는 은포 냄새가 안 납니다." 그가 일꾼들에게 손짓했다. "시장 냄새도, 물 냄새도, 관 냄새도 없습니다."
"나는 여기 사람이 아니오." 무명이 그제야 일어섰다. 옷깃을 다시 여미고 손에 묻은 흙을 털었다.
관 사람 둘이 그의 양쪽에 붙었다. 소하는 물동이를 든 채 서 있었다. 무명이 끌려가면서 소하 쪽은 보지 않았다. 젖은 마당 웅덩이를 한 번 내려다보았을 뿐이었다.
흔적꾼이 그 뒤를 지나가며 낮게 말했다. "저 사람 손에는 여기 흙이 안 묻어 있습니다. 이십 년 만에 처음입니다."
날이 저물고 담 헐린 자리로 바람이 곧장 들어왔다. 일꾼들이 물러가고 곡괭이 자국만 남았다.
이름꾼이 우물 턱에 앉아 밧줄을 풀고 있었다. 매듭을 하나씩 세면서 풀었다. 발소리가 나지 않는 사람의 손이 그날은 유난히 느렸다.
"내일이면 여기가 관 밖입니다." 이름꾼이 밧줄 끝을 우물 안으로 넘겼다. "밖에서 내리는 밧줄은 규정에 없습니다. 안에서 내리는 밧줄은 오늘까지만 규정입니다."
소하는 밧줄을 잡아 무게를 걸어보았다. 손바닥에 흰 것이 서걱거렸다. "낮에는 왜 안 하셨습니까."
"낮에는 저 사람이 마당에 있었습니다." 이름꾼이 은실 두 줄이 있던 자리 쪽으로 턱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 하루 내내 저 사람 반대쪽에 서 있었습니다. 냄새는 서 있던 자리에 남습니다."
담이 헐린 자리에 어머니가 서 있었다. 담이 없어졌으니 담 옆 세 걸음이라는 자리도 없어졌는데, 어머니는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서 있었다. 소하가 밧줄에 발을 걸 때 한 마디만 했다. "손 놓지 마라."
소하는 내려갔다. 오른손으로 밧줄을 잡고 왼손은 벽을 짚었다. 벽은 아홉 번째 매듭 아래부터 젖어 있었고 손바닥이 미끄러졌다. 발끝으로 돌 사이를 더듬어 디딜 곳을 찾았다.
열두 번째 매듭에서 소하는 눈을 감았다. 감았다고 생각했다. 오른쪽은 감긴 것이 느껴졌고 왼쪽은 알 수 없었다. 확인하려면 한 손을 놓아야 했고, 놓을 수 있는 손이 없었다.
소하는 그 자리에서 한참 매달려 있었다. 뜬 줄 알고 뜨지 않았을 수도 있고, 감은 줄 알고 감기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사이의 크기를 자기가 정하지 못한다.
소하는 왼손 새끼손가락, 마디가 없는 그 끝을 벽에 댔다. 저쪽에서 저절로 좁아지는 것을 기다렸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손끝이 사이를 물었다.
몸이 어느 쪽에 서 있는지 셈이 흐려졌다. 반 박자였다. 발이 벽을 딛고 있는지 아무것도 안 딛고 있는지 헷갈렸다가 곧 돌아왔다.
그 반 박자 안에 여울의 셈이 왔다. 짧았다. 소하는 담이 헐린 것과 내일이면 여기가 관 밖이 된다는 것을 셈으로 바꿔 보냈다. "오늘 하루입니다."
소하는 손을 떼고 숨을 고른 뒤 다시 짚었다. 이번에는 흐려짐이 셋을 셀 동안 갔다. 소하는 그것을 셌다. 하나, 둘, 셋. 발이 어디를 딛고 있는지 셋을 셀 때까지 몰랐다.
반 박자에서 셋으로 늘었다. 소하는 벽에 이마를 대고 그 뜻을 짚어보았다. 흐려지는 동안이 길어진다는 것은 저쪽에 서 있는 몸이 늘고 있다는 뜻이었다. 마디 하나였을 때는 반 박자였다. 지금은 셋이다. 저쪽은 소하의 몸을 조각으로 세우는 중이었고, 세운 만큼 그쪽에 자리가 늘었다. 그 짐작은 이제 짐작이 아니었다.
소하는 한 번 더 짚었다. 세 번째는 열을 셀 동안 갔다. 열을 세는 동안 소하는 오른손이 밧줄을 잡고 있는지 왼손이 잡고 있는지 몰랐고, 무릎이 꺾여 벽에 정강이를 찧었다. 밧줄이 손아귀에서 한 뼘 미끄러졌다.
그 열을 세는 동안 여울의 셈이 왔다. 지난번에 보내려다 멈춘 것이었다.
"세지 마십시오."
소하는 손끝에 힘을 주었다. "무엇을 말입니까."
"전부입니다." 여울의 셈은 느렸다. "자 수도, 매듭도, 날수도. 저는 여섯 해 동안 셌습니다. 스물여섯 자에서 줄이 끊어졌을 때부터 하루도 안 빼고 셌습니다. 셀 때마다 손이 조여졌습니다. 저는 그걸 아주 늦게 알았습니다."
"관은 재라고 저를 내려보냈습니다."
"압니다." 여울이 잠깐 말을 끊었다. "저 손은 우리를 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재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는 사람이 없으면 저쪽은 여기가 어디까지인지 모릅니다."
소하의 손끝이 벽에서 떨어질 뻔했다. 소하는 아홉 살 이후로 늘 셈으로 살았다. 골목의 반 자도, 된 것과 안 된 것을 갈라 규칙을 얻은 것도 전부 셈이었다. 세지 않는 소하가 무엇으로 사는지는 소하 자신도 몰랐다.
그리고 소하는 이미 세고 있었다. 반 박자, 셋, 열. 방금 자기 손으로 그것을 세어 저쪽에 내주었다.
당김이 왔다. 왼팔 전체가 아래로 당겨지고 몸이 밧줄을 타고 미끄러졌다. 한 자, 그리고 또 한 자. 소하가 풀지 않은 길이였다.
소하는 눈을 뜨려 했다. 떴는지 알 수 없었다. 벽은 어둡고 왼쪽 눈은 원래 밝고 어두운 것만 보았으므로, 뜬 것과 감은 것이 소하에게는 같은 그림이었다. 굳지 않았다.
소하는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셈을 놓는 것이 손에 힘을 빼는 것처럼 되지 않아서, 머릿속에 올라오는 숫자마다 그 자리에서 버렸다. 매듭이 몇 번째인지, 몇 자를 내려왔는지, 얼마나 당겨졌는지 전부 버렸다.
당김이 느려졌다. 멎지는 않고 느려졌다. 소하의 발끝이 벽의 돌 하나를 다시 찾았다.
위에서 이름꾼이 밧줄을 당겼다. 한 번에 많이 당기지 않고 조금씩 끌어올렸다. 소하는 두 손으로 밧줄을 안았다. 흰 것이 손바닥에서 부스러졌다.
우물 턱을 넘어 마당에 눕는 데까지 오래 걸렸다. 흐려짐은 그 뒤로도 가라앉지 않았다. 소하는 어느 손이 오른손인지 어머니가 잡아줄 때까지 몰랐다.
은실 두 줄이 등불 없이 헐린 담 쪽에서 걸어왔다. 그가 우물 턱 앞에 서서 코를 조금 들었다.
"열두 번째 매듭까지 당신 냄새가 나 있습니다." 그가 이름꾼에게 말했다. "낮에 내 반대쪽에 서 있었던 것도 압니다. 그것도 냄새가 남습니다."
이름꾼은 부정하지 않았다. 밧줄을 손에서 놓지도 않았다.
"이름을 말하지 않는 사람은 이름으로 못 부릅니다." 은실 두 줄이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관은 당신을 자리로 불렀습니다. 그 자리를 내놓으십시오."
이름꾼이 소매 안쪽에서 관 표를 꺼내 그 손에 얹었다. 어깨에 띠가 없던 사람에게서 마지막 남은 표식이 없어졌다. 그는 표를 넘긴 손을 다시 밧줄로 가져갔다.
"밧줄은 두십시오." 이름꾼이 말했다.
"두겠습니다." 은실 두 줄이 표를 소매에 넣었다. "내일이면 저건 관 밖 물건입니다. 관 밖 물건은 관이 치우지 않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마당을 절반쯤 갔을 때 한 번 멈춰 우물 쪽을 보았다. 넷을 자기 손으로 내려보낸 사람이 그 자리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는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소하는 마당에 누운 채 눈썹 위를 손끝으로 짚었다. 손끝 쪽으로만 닿는 것이 느껴졌다. 이마까지 남은 자리를 재보려다 그만두었고, 그만두려다 저절로 재어졌다. 하나. 그 숫자가 머릿속을 지나간 순간 마디가 없던 자리, 왼손 새끼손가락 끝에서 무언가가 아주 조금 좁아졌다. 소하는 오른손으로 그 손을 감싸 쥐고 아무것도 세지 않으려 애쓰면서, 담이 헐린 쪽으로 들어오는 밤바람을 오래 맞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마지막 회차입니다.
다음 회차는 월·금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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