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마디
아흐레째 새벽, 해가 오르기 전에 흙과 돌이 마당에 쌓였다. 관 일꾼 여섯이 지게로 날라 우물 턱에 부렸다. 소하도 지게 하나를 졌다. 끈이 어깨를 파고들었는데 그 자리가 이미 차가움을 넘어선 곳이라 짐의 무게가 반만 느껴졌다. 소하는 그것도 셌다. 절반. 다른 일꾼들은 세 번째 지게부터 앓는 소리를 냈다. 소하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낼 수 있는 쪽이 아니었다. 아홉 번째 지게를 내려놓을 때는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그것도 어깨와 같은 이유였다.
늙은 짐꾼이 돌 하나를 골라 우물 안으로 던졌다. 다들 허리를 굽히고 소리를 기다렸다. 아무 소리도 올라오지 않았다. "일곱 개째입니다." 짐꾼이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일곱 다 안 돌아왔소. 자가 못 재도 발은 잽니다만, 이건 발로도 못 잽니다."
담 옆 세 걸음 자리에 어머니가 서 있었다. 마당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지게를 지고 지나가는 소하에게 짧게 말했다. "돌 있는 쪽으로 딛어라." 소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지나쳤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눈은 줄곧 우물 쪽에 가 있었다.
마당 밖 저잣거리에도 소문이 먼저 가 있었다. 물지게꾼 몇이 걸음을 멈추고 담 너머를 흘끔거렸다. 은포의 우물 쉰넷 중 하나가 메워진다는 말은 나머지 쉰셋에도 옮겨붙을 소문이었다. 아무도 오래 서 있지는 않았다.
관 일꾼이 마른 흙 한 삼태기를 우물 안으로 부었다. 흙이 물에 닿는 순간 쉭 소리가 나며 그대로 사라졌다. 타는 냄새는 아니었다. 마른 것이 젖은 것에 먹히는 냄새, 소하가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다. 코 안쪽이 아릿하게 남았다. 삼태기를 진 일꾼들은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숨을 짧게 참았다.
늙은 기록관이 그 자리에 서서 삼태기 수를 세고 있었다. "열둘째. 소리가 안 돌아온 게 열둘째입니다." 그가 우물 턱 돌에 못을 대고 그 숫자를 새겨 넣었다. 관 밖에 남는 기록이었다. 흔적꾼이 지나가다 그 못자국 옆에 서서 한참 들여다보았다. 손끝으로 못자국 하나하나를 짚어보기도 했다. "이 순서는 못 읽습니다." 그가 먼저 말했다. "못 자국은 닿은 차례가 안 남습니다." 기록관은 손을 멈추지 않고 답했다. "규정에는 못 자국에 관한 조항이 없습니다." 그것으로 대화가 끝났다.
은실 두 줄이 삼태기를 더 가져오라 했다. 물러나지 않았다. 넷을 내려보낸 손으로 마지막 방법을 고른 사람의 얼굴이었다. "오늘 안에 삼태기 서른입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목소리에는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일꾼 하나가 걸음을 재던 짐꾼에게 소리쳤다. "여섯 걸음이오!" 지난번 여덟 걸음보다 줄어든 수였다. 마당 여기저기서 잠깐 안도하는 낯빛이 돌았다. 짐꾼조차 잠시 지팡이를 놓칠 뻔했다. 소하도 그걸 셌다. 둘 줄었다.
늙은 짐꾼은 웃지 않았다. 삼태기 셋을 더 붓고 나서 다시 걸음을 쟀다. "열 걸음이오." 여섯이라 했던 자리는 마른 흙이 잠깐 덮었을 뿐이었다. 그 밑에서 물은 그대로 넓어지고 있었다. 짐꾼이 지팡이로 젖은 자리를 가리켰다. "마른 흙이 위만 덮은 거요. 물은 그 밑으로 그대로 갔소."
소하는 지게를 내려놓고 손끝을 눈썹 쪽으로 가져가 짚었다. 관자놀이를 넘은 차가움이 눈썹 아래까지 와 있었다. 소하는 혼자 셌다. "둘 남았습니다." 눈썹, 그리고 이마. 그다음은 세어보지 않았다. 세면 그만큼 빨리 올 것 같았다.
소하는 눈을 감고 손끝을 우물 벽에 댔다. 사이를 찾으려 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굳은 자리 너머로 여울의 셈이 오지 않은 지 이틀째였다. 손끝이 있던 자리만 벽에 닿아 있었다. 하루치 삼태기가 다 들어갈 때까지 그 자리는 조용했다. 소하는 손을 떼지 않고 그 조용함이 언제까지인지 세어보았다.
물동이를 나르는 틈에 소하는 담 모퉁이로 빠졌다. 뒤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벽에 붙어 숨을 죽였다. 발소리가 지나갔다. 이름꾼이었다. 발소리가 안 나는 사람이 그렇게 지나가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소하는 담 그림자 안으로 몸을 더 붙이고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무명이 젖은 벽 아래 쪼그려 앉아 손끝으로 허공을 짚고 있었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옷깃은 여전히 왼쪽으로 여며 있었다. "부을수록 멀어져야 맞소." 그가 짚던 손을 거두지 않은 채 말했다. "그런데 가까워지고 있소. 우리 쪽에서 등불 심지를 끝까지 태우면 남는 냄새, 딱 그만큼." 그는 잠시 손끝을 접었다 펴며 덧붙였다. "그쪽에서는 이런 걸 문턱의 숨소리라고 부르오."
"가까워졌다고요?" 소하가 물었다. 무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로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오. 다만 어제보다는 가깝소. 그저께보다는 더." 얼마나 가까운지는 끝내 숫자로 말하지 않았다. 무명에게도 그걸 잴 자가 없는 모양이었다.
"관은 멀어질 걸로 알고 붓고 있습니다." 소하는 담에 손끝을 붙인 채 그렇게만 전했다. 무명은 대답 대신 담 너머 물웅덩이 쪽을 잠깐 보았다. "우리 쪽에서는 문턱을 막으면 두꺼워지는 줄 아오. 얇아진다고 믿는 사람은 없소."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옷깃을 다시 여몄다.
담 모퉁이 반대쪽에서 발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은실 두 줄이었다. 소하는 무명의 팔을 잡아 담 그림자 안으로 당겼다. 숨을 참았다. 발소리는 세 걸음 앞에서 멈췄다가 다시 멀어졌다. 은실 두 줄은 젖은 마당 쪽을 보고 있었을 뿐, 담 모퉁이는 보지 않았다.
소하는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무명은 이미 반대편 그림자로 사라지고 없었다. 소하는 물동이를 다시 들고 마당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하는 우물가로 돌아왔다. 이름꾼이 밧줄 매듭을 손끝으로 짚고 있었다. 열 번째 매듭 앞에서 손이 멈췄다. "이 아이가 여섯 해 전에는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름꾼이 드물게 길게 말했다. "그때는 매듭이 다 말라 있었습니다. 밧줄을 끝까지 풀면 발이 닿을 줄 알았습니다. 나는 그 옆에서 밧줄만 잡고 있었습니다." 소하는 그 말에 무엇을 되물어야 할지 몰라 그냥 고개를 숙였다.
소하는 왼손 새끼손가락, 마디가 없는 그 끝을 우물 벽에 대고 무릎을 꿇었다. 평소처럼 사이가 스스로 좁아지기를 기다렸다. 아무것도 좁아지지 않았다. 이쪽에서 부르는 방식으로는 안 됐다. 손끝을 벽에 더 눌러보았다. 각도를 바꿔보았다. 자리를 옮겨 우물 턱 안쪽 젖은 돌에도 대보았다. 벽은 그저 차가운 돌이었다.
소하는 손을 거뒀다. 마디가 있던 자리, 감각이 항상 한 박자 늦게 돌아오던 그 자리를 가만히 짚어보았다. 늦게 오는 감각을 거슬러 따라가 보았다. 마른 흙이 물에 닿아 사라지는 순간마다 그 늦은 감각이 유독 크게 흔들렸다. 저쪽에서 뭔가가 움찔움찔 좁아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사이는 소하가 여기서 만든 것이 아니었다. 흙이 사라지는 그 짧은 틈에 저쪽에서 저절로 좁아지는 사이였다. 이쪽에서는 한 번도 잡아본 적 없는 종류였다. 소하는 없는 마디로 그 사이를 짚었다. 눈을 뜨지 않았다. 눈을 뜨면 굳는다는 걸 알면서도 손끝만은 뜬 것처럼 팽팽해졌다.
손끝이 사이를 물었다. 소하의 몸이 순간 어느 쪽에 서 있는지 셈이 흐려졌다. 발이 마당을 딛고 있는지 우물 밑을 딛고 있는지 반 박자 헷갈렸다. 그 반 박자 안에서 여울의 셈이 왔다. 소하는 마른 흙 삼태기 수를 세어 그대로 건넸다. "열둘입니다. 메우고 있습니다."
돌아온 셈은 짧았다. 안 뗀 손은 그대로였다. 조여지지도, 풀리지도 않았다. 흙을 아무리 부어도 그 손에는 닿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여울이 뭔가를 더 보내려다 멈춘 느낌이 손끝에 남았다. 소하는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손끝의 감각이 다시 이쪽으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 오른손으로 짚은 자리와 왼손으로 짚은 자리가 한동안 뒤바뀌어 느껴졌다. 소하는 눈을 뜬 채로 그 뒤바뀜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소하의 무릎이 꺾였다. 이름꾼이 팔을 잡아 세웠다. 마당 저편에서 은실 두 줄이 고개를 돌리려던 참이었다. 이름꾼이 소하의 지게를 대신 짊어지며 그 앞을 가로막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름꾼이 낮게 물었다. "메워도 안 나온다고요?" "모릅니다." 소하가 고개를 저었다. "안 뗀 손이 그대로였다는 것만 압니다." 이름꾼은 한참 매듭만 짚었다. "그 아이는 대답을 미루는 버릇이 있습니다. 모른다고 할 때가 오히려 뭔가를 아는 때입니다. 나는 그 버릇을 열 해 넘게 지켜봤습니다. 관에 들어온 것도 그 버릇을 가까이서 보려던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소하 쪽을 보지 않고 덧붙였다. "그럼 밧줄은 내가 다시 내리겠습니다." 규정에 없는 말이었다.
소하는 셈을 다시 짚어보았다. 다섯과 여섯 사이에서 굳으며 남은 마디, 그 마디가 저쪽에서 사이의 한쪽을 소하 자신으로 만들고 있었다. 저쪽이 부른 것은 소하를 데려가려는 게 아니라 소하의 몸 한 조각을 저쪽에 세워두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쪽 손목도, 팔꿈치도, 언젠가는 같은 방식으로 쓰일 자리가 될 수 있었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셈이었다.
늙은 기록관은 여전히 우물 턱 돌에 못을 대고 있었다. 은실 두 줄이 지나가다 그 못자국을 내려다보았다. 잠깐 멈춰 섰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음 삼태기를 가리켰다. 못자국은 그대로 남았다.
이름꾼은 그날 밤 우물가를 떠나지 않았다. 밧줄을 손에서 놓지 않은 채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규정에 없는 자리였다.
해가 넘어갈 때까지 흙과 돌이 우물로 들어갔고 우물은 조금도 메워지지 않았다. 짐꾼의 걸음은 저녁에 다시 열 걸음으로 늘어 있었고 밧줄은 열 번째 매듭까지 젖어 있었다. 아침의 여섯 걸음은 아무 데도 남지 않았다. 소하는 눈썹 아래까지 온 차가움을 손끝으로 다시 짚으며, 저쪽에서 좁아지던 그 사이가 마른 흙이 사라질 때만 생기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언제나 거기 있었는지를 아직 몰랐다. 이마까지는 이제 한 걸음이었고, 이마를 넘으면 무엇이 없어지는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혹시 저쪽에서 재는 자도 오늘 이 흙 붓는 소리를 듣고 있을지, 소하는 그것까지는 아직 셀 수 없었다. 그리고 없는 마디가 오늘처럼 저쪽의 사이를 짚어낼 때마다, 저쪽 어딘가에서도 똑같이 소하 쪽을 짚어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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