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몫
관 사람들이 구덩이 위에 널빤지를 걸치고 있었다. 한끝을 마른 땅에 얹고 다른 끝을 파낸 자리 가장자리에 걸쳐, 퍼낸 흙을 담아 날라 갈 길을 놓는 참이었다. 널은 가운데가 이미 휘어 있어서, 사람이 올라서면 휜 데가 더 내려갔다가 발을 떼면 도로 올라왔다.
어제 꽂아 둔 채로 밤을 난 삽을 사람들이 뽑아 냈다. 뽑힌 데마다 구멍이 남았고, 날에 말라붙은 흙은 자루로 쳐서 털었다. 털고 나서 마당 가운데 세운 삽은 넷이다. 자루마다 사람이 붙었고, 붙은 사람들은 담 쪽 구석을 보고 서 있었다.
소하는 담 밑 마른 데에 쪼그려 앉아 왼팔 소매를 걷었다. 오른 손등을 팔 안쪽에 엎어 놓고 가슴으로 밀어 눌렀다. 위아래가 한 줄로 섞여 올라왔다.
소하는 손등을 떼었다가 팔꿈치 쪽에만 도로 엎었다. 눌러서 올라오는 것을 세고, 손등을 들어 흰 면 위쪽으로 옮겨 다시 엎었다. 한 자리씩 따로 엎어야 수가 갈려서 왔다.
팔꿈치 쪽은 둘이다. 흰 면 위쪽은 다섯이다. 은포의 우물 쉰넷 가운데 아직 물이 닿아 있는 것이 다섯이고, 그 다섯 가운데 자리까지 이쪽에 서 있는 것이 둘이다. 삽이 끊는 것은 뒤엣것이다.
소하는 손등을 떼고 이번에는 팔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다시 엎었다. 피가 손끝으로 몰려도 수는 그대로였다. 마당에 선 삽은 넷인데 끊을 자리는 둘이다.
어제저녁에 서판에 오른 수는 자리를 센 것이 아니라 소하의 손이 얼마나 늦었는지를 센 것이었다. 관은 그 수가 어제 아침 것보다 큰 것을 보고 몫을 올렸다. 늦은 손에서는 자리가 나오지 않는다.
기록관이 널빤지를 돌아왔다. 서판은 펴져 있었고 못은 벌써 쥐어져 있었다. "손을 내십시오. 날마다 적는 줄입니다."
소하는 소매를 내리고 오른 손등을 내밀었다. 기록관이 엄지로 못대가리를 눌러 수를 보였다. 누를 때마다 쥔 손목이 조금씩 흔들렸고, 소하는 그 흔들림을 눈으로 따라가며 세었다. 마흔하나에서 손등이 쇠에 닿았다는 것이 왔다.
소하가 고개를 들자 엄지가 멎었다. 기록관은 다른 칸을 거치지 않고 곧장 소하 칸으로 가서 어제 줄 밑에 오늘 줄을 세웠다. 그 칸만은 날마다 같은 데에 쌓이고, 쌓인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사람은 적는 손 하나다.
은실 세 줄이 우물 턱 돌 앞에서 걸어 나왔다. 그저께 소매에 넣은 흙 뭉치가 그대로 들어 있어 한쪽 소매 끝이 처져 있었다. 돌 앞에 서서 아래 줄에 손가락을 얹었다.
"오늘 몫은 넷입니다." 줄 위의 손가락이 한 뼘 내려갔다. "어제 올린 것은 제가 올렸습니다. 모자라면 제가 집니다."
소하는 삽과 삽 사이로 들어가 섰다. 왼손 엄지와 검지를 붙여 고리를 짓고, 그 고리를 들어 보인 다음 손가락을 떼었다. 다시 짓고 다시 떼었다. 둘까지 짓고 그다음은 짓지 않았다.
은실 세 줄은 그 손이 멎을 때까지 보고 돌아섰다. "저 손끝은 참고입니다. 참고는 몫을 고치지 않습니다."
삽들이 담 쪽 구석으로 들어갔다. 쇳날이 흙을 밀기 시작했고, 밀린 흙은 널빤지 위로 올라왔다. 소하는 널 옆에 서서 흙이 얹히는 데를 보고 있었다.
해가 마당 가운데로 올라왔을 때 담 밖 길에 어머니가 와 섰다. 담이 어깨까지밖에 안 와서 보퉁이를 올려놓는 손이 먼저 넘어왔다. 소하는 담 안쪽으로 가 섰다.
어머니가 보퉁이를 풀어 안쪽으로 밀어 놓았다. 식은 밥이고 위에 마른 삼베가 덮여 있었다. "앉아서 먹어라."
소하는 소매 안쪽에서 실을 꺼내 끝의 고리를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어머니가 그저께 낮에 혼자 지어 놓은 것이고 거기만 매듭이 겹쳐 감겨 있다. 걸면 그날로 그 뜻밖에 못 된다는 것은 어제 알았다.
소하는 널빤지 쪽을 보고 나서 그 고리를 왼손 검지에 걸었다. 걸기 전에 뜻을 정했다. 정하고 나니 고치는 길이 없어졌고, 무엇으로 정했는지는 어머니 쪽에서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고리가 걸리는 것을 보고 실 끝을 제 손가락에서 풀었다. 캐묻지 않았다. "해 지기 전에 와라."
소하는 밥을 절반만 먹고 일어섰다. 다 먹으면 몸이 무거워진다. 아래가 다 끊기면 짚을 데가 없어지고, 짚을 데가 없으면 위에 선 것들이 언제 꺼지는지 아무도 모른다. 오늘 소하가 세어야 하는 것은 발바닥으로 올라오는 무게다.
널빤지 두 끝에는 벌써 흙이 쌓여 있었다. 사람들은 구덩이에서 퍼낸 것을 널의 양 끝에 부려 두었다가 광주리로 옮겨 담았다. 가운데는 비워 두었다. 밟고 지나다녀야 해서다.
소하는 그 가운데에 올라서서 발꿈치만 널에 대고 앞쪽 발바닥을 띄웠다. 양 끝에 흙이 얹힐 때마다 널의 가운데가 들렸다. 들린 널이 띄워 둔 발바닥 쪽으로 올라왔다. 얼마나 올라올지는 흙을 부리는 손이 정했고 소하는 그것을 막을 자리에 있지 않았다.

광주리를 든 사람이 흙을 통째로 쏟았다. 널이 단번에 꺾이면서 사이가 닫혔다. 소하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결이 들어오지 않았다.
들어온 것은 무게뿐이었다. 널이 받은 흙의 무게가 발꿈치를 타고 정강이까지 올라왔다. 안에 든 것은 그 뒤에 와야 하는데 오지 않았다. 닫히는 데 걸린 동안이 소하가 받는 데 걸리는 동안보다 짧았다. 그런데 무게는 늦지 않았다. 늦어짐을 안 타는 것이 소하 몸에 아직 있다는 뜻이다.
소하는 널에서 내려와 퍼 올리는 쪽 끝으로 자리를 옮겼다. 삽으로 한 삽씩 얹는 데는 쏟는 데보다 느리다. 흙이 한 삽 얹히면 널이 손가락 마디만큼 들렸다가 멎고, 다음 삽이 올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소하는 다시 발꿈치만 대고 섰다. 눈을 감고 앞쪽 발바닥을 띄운 채 기다렸다. 삽이 얹히고 널이 올라오는 동안에 결이 들어왔고, 앞엣것이 먼저 서고 뒤엣것이 뒤에 섰다.
소하는 흰 면 위쪽에 선 다섯을 차례로 짚어 나갔다. 어제저녁에 하나씩 외워 둔 것들이다. 그 가운데 어제 끊긴 자리의 물이 맨 끝에 있었다. 붙어 있던 자리가 간 지 하루밖에 안 돼서 아직 어디에 서야 할지 못 정하고 있었다.
소하는 그것을 팔꿈치 쪽으로 밀었다. 저절로 내려오는 것이 없다는 것은 어제 알았다. 위쪽은 아래쪽을 따라 내려오지 않는다. 미는 만큼만 갔고 손을 늦추면 도로 올라갔다.
미는 데 쓰는 것도 짚는 손이다. 오른 손등을 왼팔에 엎어 붙인 채로 밀어야 해서 그 손은 쉬는 동안이 없었다. 손등 밑에서 뼈가 눌리는 것이 오다가 뒤로 처졌고, 처진 만큼을 소하는 더 눌러서 메웠다.
흰 면이 끝나는 데에서 그것이 걸렸다. 더 밀어도 안 가고 놓으면 올라간다. 소하는 널이 올라오는 동안 내내 밀었고, 검지에 걸린 매듭이 손가락 뿌리에 박히도록 왼손을 말아 쥐었다. 널이 멎자 밀 것이 없어졌다.
밀던 것은 절반까지 와서 그 자리에 얹혔다. 위로 도로 올라가지 않았고 팔꿈치 쪽까지도 오지 않았다.
얹힌 것의 무게가 팔 안쪽에 남았다. 널에서 올라오던 무게는 발바닥에서 끝났는데 이것은 안 끝났다. 소하는 널에서 내려왔다. 발바닥이 땅에 닿는 것은 제때 왔고, 널을 짚고 내려선 오른손은 한참 뒤에 왔다.
왼팔 흰 면이 끝나는 데에 손톱만 한 자국이 서 있었다. 눌러도 희어지지 않고 가장자리부터 말라 들어갔다. 소하가 그 자국을 손가락으로 덮으니 팔 안쪽에 얹힌 무게가 손가락까지 올라왔다.
담 쪽 구석에서 삽이 내려갔다. 소하는 널 옆에 서서 받았다. 팔꿈치 쪽에서 선 것이 꺼졌다. 꺼진 데는 속이 드러났고, 드러난 자리에 이쪽도 저쪽도 없었다.
다음 삽이 그 옆으로 들어갔다. 팔꿈치 쪽에 섰던 둘이 거기서 다 갔다. 남은 것은 소하가 낮에 걸어 놓은 절반뿐이었다.
셋째 삽이 든 데가 그 절반이었다. 날이 흙을 밀고 들어가다가 끝까지 안 갔다. 중간에 걸렸고, 삽을 든 사람이 발로 날 어깨를 밟아 눌렀는데도 더 안 갔다. 뽑아 보니 날에 흙이 절반만 묻어 나왔다.
소하 팔 안쪽에서도 절반만 꺼졌다. 꺼지지 않은 쪽이 팔꿈치 쪽으로 미끄러져 내려와 거기서 다시 섰다.
넷째 삽을 든 사람이 담 쪽 구석을 한 바퀴 돌고 와서 자루를 세웠다. 날을 박을 데가 없었다.
소하는 왼쪽 눈을 감고 그 앞의 흙을 보았다. 검고 기름지게 번들거렸다. 발로 누르니 발 모양대로 눌렸다가 도로 올라왔고, 밑에서 받치는 것이 있는 흙이 그렇게 앉는다. 쥐면 뭉쳐질 흙이었고, 그 위에 삽이 서 있기만 했다.
담 그림자가 마당을 절반쯤 덮었을 때 기록관이 서판을 들고 다시 왔다. 소하는 이번에는 세지 않고 못끝만 보았다. 엄지가 못대가리를 누르는 동안 못끝이 살 위에서 조금씩 미끄러졌고, 미끄러진 데가 하얗게 남았다.
마흔넷에서 쇠가 얹혔다는 것이 올라왔다. 기록관이 못을 세워 소하 칸으로 가져갔다. 아침 줄 밑에 저녁 줄이 섰고, 두 줄 사이가 어제 벌어진 것보다 좁았다.
소하는 그 손으로 고리를 지었다. 엄지와 검지를 붙이고, 흰 면 위쪽을 가리키는 데까지 들어 올리고, 거기서 팔꿈치 쪽으로 내려 보여야 했다. 올리는 동작이 끝나기 전에 내리는 동작이 들어갔다. 손가락이 떨어진 데와 붙은 데가 한자리에 겹쳤다.
소하는 손을 내리고 왼손 검지를 들어 보였다. 실매듭이 손가락 뿌리에 박아 놓은 자국까지 같이 올라갔다.
은실 세 줄이 그 손가락을 보다가 서판으로 눈을 옮겼다. "읽을 것이 없습니다."
기록관이 못끝으로 서판 아래쪽을 짚었다. "오늘 든 삽은 넷이고 끊긴 자리는 셋입니다. 빈 삽은 몫에 들지 않습니다. 규정에 있습니다."
은실 세 줄은 돌 쪽으로 가지 않고 서판 앞에 그대로 섰다. "돌에 든 수보다 자리가 많습니다. 내일은 다섯으로 올리십시오."
그 사람이 소매에서 흙 뭉치를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쥐었던 모양대로 굳어 손금이 박혀 있었다. "넷은 제가 줄을 쥐어 본 수입니다. 그때는 마지막 하나가 밑에 안 닿았습니다. 오늘은 닿았습니다."
기록관은 서판을 접지 않았다. 못을 쥔 채로 아침에 넣은 자리와 방금 넣은 자리를 번갈아 짚었다. 그러고는 두 자리 가운데의 아무것도 안 든 데에 못끝을 내려놓았다.
못끝이 거기서 움직였다. 어제 난 것들 옆이고 길이가 그만큼이다. 못이 소매로 들어가는 동안 그 사람은 소하 쪽을 보지 않았다. 소하는 그것을 보았고, 아무도 묻지 않았다.
소하는 담 밑으로 가서 왼팔에 손등을 엎었다. 팔꿈치 쪽에 하나가 섰다. 낮에 끌어내려 절반만 끊긴 그것이다. 흰 면 위쪽은 넷이었다.
아침에 물이 닿아 있던 것은 다섯이었다. 줄어든 하나는 저쪽으로 간 것이 아니고, 소하가 자리로 도로 세워 삽 앞에 내준 것이다. 관이 오늘 적은 수는 넷 가운데 셋이고, 그 셋 가운데 하나가 그것이다.
소하는 그 하나를 어디에 적어 둘지 더듬다가 그만두었다. 못은 관이 거둬 갔고 젖은 흙은 이 손으로 안 써진다. 외워야 하는 수가 하나 늘었다.
서판에 거짓으로 오른 수가 여태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전 것은 관이 흙을 부어 만들었다. 오늘 것은 소하가 만들었다.
서른이 다 닳는 날에는 이백 년 전 그 여름이 서른 곳에서 한꺼번에 온다고 한 사람은 은실 세 줄이다. 그 서른은 물로 센 수였고 오늘 넷이 남았다.
소하가 마당을 나설 때 넷째 삽은 흙에 날을 안 박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담 밑에서는 관 사람 둘이 내일 쓸 것을 꺼내 기대어 세우는 참이었다. 다섯 자루가 담을 따라 나란히 섰고, 소하 팔 안쪽에 선 것은 하나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마지막 회차입니다.
다음 회차는 월·금에 올라옵니다.
댓글 0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구글로 로그인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줄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