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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성이 없어서 벽을 지납니다
    46화 · 2026년 10월 15일

    늦어진 만큼

    마당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반쯤 파인 자리에서 물을 퍼내고 있었다. 밤 사이 차오른 것을 바가지로 떠서 마당 끝까지 들고 가 버리는데, 버리고 돌아오는 동안 퍼낸 만큼이 도로 올라와 있었다. 삽은 어제 세워 둔 담에 그대로 기대어 있었고 날에 붙은 흙이 말라서 들떠 있었다.

    기록관이 서판을 들고 그쪽을 지나 소하 앞으로 왔다. 소매에서 못이 나왔다. 소하는 그 입이 보이는 쪽으로 돌아 섰다. "잽니다. 어제 들어간 규정입니다."

    소하는 눈을 감고 오른 손등을 내밀었다. 쇠가 어디쯤 내려와 있는지 보지 않으려고 고개까지 옆으로 돌렸다. 못끝은 살에 안 닿는 거리에서 멎었다가 떨어졌고, 멎었다 떨어지는 동안에 들어온 것이 없었다.

    쇠가 멎는 자리와 손등 사이에 남는 데는 손가락 반 마디쯤 된다. 그만큼이 남아 있는 동안이 소하한테는 없는 동안이다. 쇠는 내려오기를 그만둔 뒤에야 손에 든다.

    기록관이 못을 고쳐 쥐고 이번에는 살에 대었다. 대는 순간 쇠가 손등에서 더운 것을 먼저 가져갔다. 가져가고는 재는 동안 가져간 만큼을 도로 내놓아서, 못끝 밑이 살보다 조금 더운 데가 되었다.

    기록관이 턱을 크게 놀려 수를 세어 보였다. 소하는 그 턱에 맞춰 같이 셌다. 서른일곱에서 쇠가 손등에 얹혀 있다는 것이 들어왔고 거기서 소하가 고개를 들었다. 못끝이 서판으로 가서 어제 낸 칸 아래에 그 수를 넣었다.

    획이 멎고 기록관이 서판 두 짝을 모으려고 양쪽에 손을 댔다. 소하는 먼저 눈을 감았다. 감은 채로 왼손 검지를 더듬어 접히는 데에 밀어 넣었고, 그 손은 멈추지 않고 두 짝을 그대로 모았다.

    관 마당 아침. 검은 관복의 기록관이 두 짝으로 된 나무 서판을 두 손으로 모아 쥐고 서 있고, 그 곁에 해진 옷의 작은 소하가 왼손을 서판의 좁아지는 사이로 밀어 넣은 채 눈을 감고 얼굴을 서판 반대쪽으로 돌리고 있다. 뒤쪽 흙담에는 삽 한 자루가 기대어 세워져 있고 그 아래 반쯤 파인 자리에 물이 고여 있다
    접는 속도를 쥔 손이 남의 것이라 갈리지 않고 통째로 왔다.

    들어온 것은 갈리지 않았다. 어제 구덩이에서 제 손을 천천히 내릴 때는 앞엣것이 먼저 서고 뒤엣것이 뒤에 섰는데, 오늘은 접는 속도를 쥔 손이 남의 것이라 통째로 왔다. 무게만 있고 안이 없는 덩이였다.

    그 덩이는 가벼웠다. 담 밑에 어깨를 대고 선 것들이 묶여서 저쪽 셈에 한 자리 몫으로 세어지던 그 무게다. 그렇게 세어지는 것은 차례를 지키지 않고 한꺼번에 간다.

    소하는 손가락을 뺐다. 빠져나오는 동안 모아진 모서리가 마디를 눌렀다. 손을 다 빼고 바지에 문지르고 나서 그 자리가 하얗게 올라왔다.

    소하는 담 그늘로 물러나 왼팔 안쪽에 오른 손등을 붙이고 어깨 무게까지 실었다. 손가락 끝으로는 이제 아무것도 안 올라온다. 이 팔이 세는 것은 은포의 우물 쉰넷이다. 팔꿈치 쪽은 그 가운데 아직 이쪽에 서 있는 자리를 세고, 흰 면 위쪽은 아직 물이 닿아 있는 자리를 센다.

    아래에서 둘이 올라왔다. 낱낱이 떨어져 서지 않고 서로 붙어서 한 덩이로 밀려 올라왔다. 위쪽은 뒤로 미뤘다. 어제도 그제도 거기서는 같은 수가 와서 짚어 봐야 아는 것이 없었다.

    어젯밤에 소하는 상을 물리고 담까지 갔다. 마당은 비어 있었고 아무 데도 안 꺼졌고 밤새 그대로였다. 소하가 어제 센 것은 오늘 밤에 한꺼번에 온다는 것이었는데, 떠 있던 여덟은 어제 저녁 소하가 팔에 손을 얹고 있는 동안 이미 갔다. 때를 하루 늦게 잡았다. 남은 둘 가운데 하나는 어제 바닥에 붙은 채로 가장자리만 들려 있던 그것이다.

    언젠가 은실 세 줄은 서른이 다 닳는 날에는 이백 년 전 그날이 서른 곳에서 한꺼번에 온다고 했다. 이백 년 전 그 여름에 우물 하나가 말랐고 그 밑에서 바람이 올라왔고, 관은 그 우물을 메우지 않고 문을 달았다. 그 말을 들을 때 아래는 서른이었다.

    소하는 팔에서 손을 떼고 마당을 보았다. 물을 퍼내던 사람들이 바가지를 놓고 담 쪽으로 몰려가 있었다. 은실 세 줄이 우물 턱 돌 앞에 서서 제가 새긴 줄에 손가락을 얹고 있었다.

    "다시 센 수가 섰습니다." 손가락이 줄을 짚은 자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사흘을 쉬었다고 밀린 것을 한꺼번에 받지는 않겠습니다. 사흘 쉰 것은 제가 집니다. 자리는 돌에 든 새 수로 고릅니다."

    삽이 담에서 떨어져 나왔다. 말라붙어 들떠 있던 흙이 그때 날에서 떨어졌다. 삽은 둘이었고 담 쪽 구석에 어깨를 댄 것들의 양쪽 가장자리로 하나씩 들어갔다. 쇳날이 흙을 밀어내는 동안 소하는 두 자리를 다 보고 섰다.

    소하는 삽 쪽으로 가지 않았다. 가서 설 자리는 어제까지 다 써 버렸고, 오늘 소하에게 남은 것은 서판에 난 제 칸 하나다.

    그 칸은 어제 기록관이 날마다 적겠다고 해서 열렸다. 다른 수는 날마다 날짜 칸을 따라 흩어지는데 소하 칸만은 같은 자리에 나란히 쌓이고, 쌓인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사람은 그것을 적는 손말고 없다. 소하가 수를 실어 보낼 수 있는 데가 거기 말고 없다.

    늦어짐은 밤마다 하나씩 걷히고 낮에 오른손을 쓰는 만큼 붙는다. 어제 낮에 붙은 것은 셋이었다. 오늘 다섯이 붙게 하면 아침 수와 저녁 수 사이가 어제 벌어진 것보다 둘 넓어진다. 둘을 더 붙이면 걷히는 데 닷새가 걸리고 아래에는 둘이 섰으니 소하에게 닷새가 없다. 소하는 그것까지 세고 나서 돌로 갔다.

    손을 어디까지 쓸지는 들기 전에 정했다. 다섯이 붙을 때까지 쓰고 거기서 그만둔다.

    돌을 들어 우물 쪽으로 옮겼다. 옮길 데가 정해져 있는 돌이 아니었다. 다 옮겨 놓고 돌아와 옮긴 것을 제자리로 도로 날랐다. 돌 모서리가 손가락 뿌리에 걸릴 때마다 걸렸다는 것이 다음 돌을 집은 뒤에 올라왔고, 올라오는 데 걸리는 길이가 나를수록 멀어졌다.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길었다. 길어 올린 물은 아무 데도 안 쓰고 우물에 도로 부었다. 줄을 감는 동안 오른 손목이 뻑뻑해졌고, 감다가 손이 줄을 놓쳐 두레박이 밑까지 떨어졌다. 줄이 손바닥 한가운데를 훑고 나갔다.

    소하는 손을 펴 보았다. 살이 길게 벗겨져 있었다. 피는 안 맺혔고 벗겨진 데로 속이 비쳤는데, 그 속이 서판의 못자국 속과 같은 빛이었다. 벗겨진 자리는 아물지 않고 가장자리부터 말라 들어갔다.

    소하는 줄을 다시 감았다. 이번에는 쥐는 힘이 손바닥 가운데서 빠져나가 줄이 자꾸 미끄러졌다. 오른손으로는 줄을 걸치기만 하고 왼손으로 받쳐 감았고, 그 뒤로 이 손은 무엇을 쥐어도 쥔 데가 가운데를 비켜 갔다.

    삽 든 사람이 두레박 쪽을 보다가 옆 사람에게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소하에게 오지 않았다. 소하는 몸을 그쪽으로 돌려 보이는 자리에서 줄을 감았고, 바로잡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침에 못끝 밑이 더웠던 데가 돌을 나르는 동안까지 남아 있다가 해가 마당 가운데로 올라왔을 때 손등 온도로 돌아갔다. 소하는 그것으로 반나절을 쟀다. 아침 재던 때와 지금을 대 보니 셋이 붙어 있었다. 여기서 그만두면 저녁에 적히는 수가 어제 벌어진 만큼만 벌어진다.

    소하는 마당 끝의 마른 흙으로 가서 손톱으로 긁어 모았다. 모은 것을 손바닥으로 쓸어 흩고 또 모았다. 손톱 밑이 까매지고 손가락 끝이 갈라졌는데 쓰린 것은 올라오지 않았다. 긁는 손이 제 것 같지 않게 멀어졌고, 멀어지는 만큼 저녁에 서판에 들어갈 수가 커진다.

    해가 담 위로 내려올 때 기록관이 서판을 들고 왔다. 소하는 손등을 내밀었다. "저녁 몫을 잽니다."

    못끝이 살에 내려앉았다. 아침에는 쇠가 먼저 가져갔는데 이번에는 가져갈 것이 적었다. 하루를 쓴 손등이 식어 있어서 쇠와 살이 비슷한 데서 만났고, 만나고 나서도 어느 쪽이 더운지 갈리지 않았다.

    기록관이 다시 턱을 놀렸다. 소하도 같이 셌다. 마흔둘에서 쇠가 얹혀 있다는 것이 들어왔다. 못끝이 아침 수 아래로 내려가 그 수를 넣었다.

    은실 세 줄이 돌 앞에서 걸어와 서판 위로 몸을 기울였다. 소하는 그 얼굴이 돌아오는 쪽으로 몸을 틀어 입을 받았다. "아침 것보다 큽니다."

    "내일 몫을 넷으로 올리십시오." 그 사람은 서판에서 눈을 떼지 않고 삽 쪽에 턱만 보냈다. "저 손도 넣으십시오."

    소하는 손등을 거두었다. 거두는 동안 그 손이 어디쯤 가 있는지는 눈으로 좇아야 했다.

    기록관이 서판을 덮지 않고 두 쪽을 나란히 펴 놓았다. 어제 칸과 오늘 아침 수와 오늘 저녁 수가 한자리에 보였다. 못끝이 날짜 칸으로도 미정 칸으로도 가지 않고 아침 수와 저녁 수 사이의 빈 데로 내려갔다.

    획이 났다. 그 옆에 또 났다. 못끝이 올라가고 그 사람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서판 두 짝이 모아졌다.

    소하는 눈을 감고 모아지는 데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무엇인가 들어오기는 했다. 그런데 그것이 저쪽에서 처음 오는 것인지 아침에 제가 흘려보낸 것이 뒤늦게 되돌아온 것인지 가려지지 않았다. 아침까지는 그 둘이 갈라서 들렸다.

    소하는 손가락을 빼고 서판이 안채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집에 들어서자 상이 차려져 있었다. 소하는 앉기 전에 손을 씻었다. 손톱 밑의 흙은 잘 안 빠졌고, 벗겨진 자리는 물이 들어가도 닫히지 않고 가장자리만 하얗게 들떴다.

    소하는 손을 수건에 문질러 말리고 왼팔을 짚었다. 처음에는 위아래가 섞여 한 줄로 올라왔다. 떼었다가 다시 붙이고 나서야 두 쪽이 갈렸다. 아래는 아침 그대로 둘이었고, 흰 면 위쪽에는 다섯이 섰다. 아래 둘은 세는 동안 줄지 않았고 위쪽 다섯은 낱낱이 갈려서 차례로 왔다.

    소하는 위에서 센 다섯을 하나씩 외워 두고 아래로 내려가 같은 자리를 찾아보았다. 여태 이 대조는 아래에서 찾던 자리가 위에 아직 남아 있는 쪽으로 어긋났다. 물이 먼저 꺾이고 자리가 반나절에서 하루 뒤에 따라오는 것이 여섯 해 동안의 차례였다.

    오늘은 거꾸로였다. 아래에서 이미 빠진 자리가 위에는 그대로 서 있었고, 몇 번을 다시 내려가도 같았다. 자리가 먼저 끊기고 물은 뒤에 남는다. 관이 돌에 쌓고 있는 수는 지킬 자리가 이미 없어진 물의 수다.

    서른이 다 닳으면 서른 곳에서 한꺼번에 온다고 한 사람은 그 서른을 물로 셌다. 오늘 물은 다섯이고 자리는 둘이다. 소하는 팔에서 손을 떼고 그 둘을 외웠다.

    어머니가 소하의 손가락에 걸린 실을 끌어다 제 무릎에 폈다. 맨 끝의 고리는 어제 낮에 혼자 지어 놓은 것이고 매듭이 그 앞엣것보다 단단하다. 어머니는 그 고리를 손가락으로 짚어 보이고 소하를 보았다. 캐묻지는 않았다.

    소하는 고리를 만져만 보고 손을 내렸다. 걸 자리를 정하면 그날로 그 뜻밖에 못 된다. 소하는 실을 소매 안쪽으로 밀어 넣고 숟가락을 들었다.

    "다 먹고 자라." 어머니가 등잔 심지를 돋우고 상 건너편에 앉았다.

    담 너머 마당에서는 삽 둘이 낮에 끊은 자리에 꽂힌 채로 밤을 났다. 끊긴 두 자리는 속이 드러나 있었고 그 사이에 남은 것들은 어깨를 댄 그대로였다. 접힌 서판은 기록관의 옆구리에 들려 안채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두 수 사이에 난 획은 날짜 칸에도 미정 칸에도 들어 있지 않았고, 관의 어느 줄도 그것을 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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