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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성이 없어서 벽을 지납니다
    48화 · 2026년 10월 19일

    빈 다섯

    집을 나설 때부터 목덜미가 가려웠다. 어제 마당에서 뒤집어쓴 흙가루가 밤새 땀에 엉겨 목 뒤와 팔뚝에 앉았고, 씻어 낸 데에도 아침이면 도로 올라와 있었다. 소하는 걷다 말고 오른손을 올려 긁었다.

    손이 목에 닿은 것은 긁고 한참 뒤에 왔다. 그때는 가려운 데가 이미 어깨 쪽으로 옮겨 가 있었다. 긁은 자리와 가려운 자리가 한 뼘쯤 어긋났다.

    소하는 눈으로 손을 좇아 자리를 맞추어 보았다. 보면서 긁으면 자리는 맞는데 긁었다는 것이 안 온다. 보지 않고 긁으면 긁은 것은 오는데 손이 벌써 엉뚱한 데를 지나간 뒤다. 소하는 걸으면서 그 어긋난 폭을 재어 두었다.

    왼팔 쪽은 가렵지 않았다. 가루는 거기에도 똑같이 앉았고 땀도 똑같이 뱄다. 흰 면이 끝나는 데에 어제 선 자국 자리에도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마당 문은 열린 채였다. 어제 퍼낸 흙을 광주리로 내가느라 밤에 안 닫아 둔 것이고, 문설주 밑에 흙이 쌓여 문짝이 안쪽으로만 겨우 돌았다. 담 밑에는 어제저녁에 기대 세운 자루가 그대로 있었다. 다섯이다.

    어제 날을 안 박고 선 자루 앞의 흙은 밤을 그대로 났다. 간밤 바람에 윗낯만 보송해졌고 그 밑은 손가락이 들어갈 만큼 젖어 있었다. 밟고 지나간 자국도 새로 난 것이 없었다.

    소하는 왼팔을 담에 붙이고 그 위에 오른손을 포갰다. 담이 차서 팔 안쪽이 먼저 식었고, 식은 데로는 수가 더디게 올라왔다. 팔꿈치 쪽에서 먼저 하나가 올라왔다. 어제 낮에 절반만 끊기고 미끄러져 내려와 거기서 다시 선 것이다. 손을 흰 면 쪽으로 올리자 넷이 따로따로 왔다.

    마당에 선 자루는 다섯이고 삽이 들어갈 데는 하나다. 소하는 팔에서 손을 떼었다가 도로 붙여 두 번 더 셌고 수는 같았다.

    삽 든 사람들이 담 쪽 구석을 돌면서 날을 박을 데를 고르고 있었다. 돌다가 멎고 서로 쳐다보고 또 돌았다. 고르는 데 드는 동안이 어제보다 길었다.

    기록관이 우물 턱 돌에 서판을 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소하가 가서 손등을 돌 위에 엎자 엄지가 못대가리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오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하는 누르는 수를 따라 세었다. 돌의 찬 것이 손목에 먼저 들어와 있어서 쇠가 어디쯤 왔는지는 안 왔다. 마흔셋에서 쇠가 살을 눌렀다는 것이 들어왔다.

    못끝이 어제 줄 밑으로 내려갔다. 그 칸만은 날마다 같은 데에 쌓인다. 쌓인 줄의 맨 아래와 서판 모서리 사이가 손가락 하나만큼 남아 있었다.

    삽이 담 쪽 구석으로 들어가고 퍼낸 흙이 광주리로 나가는 동안 소하는 문 옆에 서 있었다. 마지막 광주리가 나가자 사람 하나가 되돌아와 문짝을 밀기 시작했다. 밑에 쌓인 흙에 걸려 문짝은 한 뼘 가고 멎고 또 한 뼘 갔다.

    돌쩌귀가 닳아서 문짝은 밀면 미는 대로 가지 않았다. 걸릴 때마다 미는 사람이 어깨를 대고 한 번씩 쳤고, 쳐야 넘어가는 데가 몇 군데 있었다.

    소하는 문설주에 오른 손등을 얹고 얼굴은 마당 안쪽으로 돌렸다. 문짝이 걸렸다 풀리면서 손등 쪽으로 왔다.

    관 마당 문께. 작업복에 머리띠를 두른 사내가 어깨를 대고 무거운 나무 문짝을 안쪽으로 밀고 있고, 문설주 밑에는 흙이 쌓여 문짝이 걸려 있다. 문 안쪽에는 해진 옷의 맨발 아이가 문설주에 한 손을 대고 서서 얼굴을 마당 안쪽으로 돌리고 있다. 왼쪽 흙담에는 삽 여러 자루가 기대어 서 있고 그 앞에 길게 파인 자리와 퍼낸 흙더미가 있다
    문짝이 걸렸다 풀리면서 손등 쪽으로 왔다.

    들어온 것은 하나다. 흰 면 위쪽에 선 넷 가운데 담 쪽 구석에 가장 가까운 것이었다.

    소하는 그것을 아래로 내려보냈다. 내려가는 길은 어제 제가 낸 길이다. 그 길 한가운데에 어제 걸어 둔 절반이 하루 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고, 내려가던 것이 그 등에 닿아 멎었다. 비켜 갈 옆이 없었다. 길을 막고 선 것은 어제 소하가 거기까지 끌어다 놓은 바로 그것이다.

    소하는 손등에 어깨를 실었다. 어깨까지 실어도 안 가서, 머릿속에 세워 두고 있던 것을 같이 내보냈다. 내보낸 것은 길 어디에서도 멎지 않았고 돌아오지도 않았다.

    문짝이 문설주에 닿았다. 손등은 그 사이에 있었다. 미는 사람이 걸린 것을 알고 문짝을 도로 당겼고, 소하는 손을 빼서 바지에 문질렀다. 눌린 자국은 금세 펴졌다.

    소하는 손등을 뒤집어 보고 묻은 흙을 털었다. 터는 손이 손등에 닿는 것은 털고 난 뒤에 왔다. 그것 말고는 아무 데도 아프지 않았다.

    소하는 땅에 앉아 외운 것을 처음부터 세었다. 세어야 꺼내진다. 하나는 흰 면 위쪽에 선 것들의 차례, 둘은 어제저녁에 제가 만들어 서판에 올려놓은 것, 셋은 — 셋에서 끊겼다. 돌아가 다시 세어도 셋에서 또 끊겼다.

    누구 것이었는지는 안다. 여섯 해 전에 우물 밑에서 줄이 끊긴 데가 몇 자였는지, 그 수를 소하한테 세어 넘긴 사람이 누구였는지도 안다. 수만 안 왔다. 낮은 데서부터 하나씩 올라가며 짚어 보았는데, 세는 수가 길어지면 앞자리부터 흩어져서 거기서 그만두어야 했다.

    담 쪽 구석에서는 삽이 아직 돌고 있었다. 날을 박았다 뽑으면 밀린 흙이 옆으로 흘러 도로 제 구멍을 메웠다. 소하는 왼팔을 짚어 보지 않고도 그 구멍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짚지 않았다.

    문짝이 도로 열렸다. 은실 세 줄이 들어왔고 뒤에 쉰이 넘은 사내가 따라 들어왔다. 어깨에 갈색 띠를 걸쳤는데 띠가 소매보다 깨끗했다.

    손톱 밑은 검었다. 걸어 들어오면서 문설주에 손을 대고, 담에 대고, 세워 둔 자루에도 대고 지나갔다. 대는 데마다 걸음이 반 박자씩 늦었다.

    은실 세 줄이 담 쪽 구석으로 턱을 보냈다. "어제 든 데를 봐 주십시오. 오늘 삽이 선 데도 같이 보십시오."

    "흔적계는 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사내는 그 자리에 선 채로 띠를 고쳐 걸쳤다. "들어오라 하셨으니 들어왔습니다. 제가 읽는 것은 닿은 차례뿐입니다. 그 밖엣것은 못 읽습니다."

    사내가 쪼그려 앉아 어제 끊긴 자리의 흙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쓸고 나서 손가락 끝만 대고 한참 있었다. 그다음에는 세워 둔 삽날로 손을 옮겨 또 한참 있었고, 널빤지로 가서 양 끝을 번갈아 짚었다.

    소하는 그 손이 멎는 데를 세었다. 멎었다 옮기고, 멎었다 옮긴다. 손이 멎을 때마다 소하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소하도 그 옆에 쪼그려 앉아 흙에 손바닥을 댔다. 흙은 어제 사람들이 밟아 놓은 그대로 굳어 있었고, 굳은 것에서는 좁아지는 데가 없다. 손바닥 밑에서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사내가 일어서서 바지에 손바닥을 문질렀다. "어제 이 구석에 닿은 것은 여섯입니다. 삽이 넷이고 널을 든 손이 둘입니다. 먼저와 나중이 갈립니다."

    소하는 접은 손가락을 폈다. 다섯이었다. 어제 넷째 자루는 구석을 한 바퀴 돌고 와서 날을 안 박고 섰고, 흙을 안 문 것을 소하는 세지 않았다. 소하는 어제를 처음부터 다시 짚어 올라가다가 아까 끊긴 데에 또 닿아 짚던 손을 내렸다.

    사내는 말하는 동안 땅을 보고 있었다. 소하한테 온 것은 앞쪽 몇 마디뿐이고 뒤는 흙 쪽으로 떨어졌다. 받은 데까지로도 수는 갈렸다.

    사내가 다시 앉아 가운데로 갔다. 어제 삽날이 중간에서 걸렸던 데다. 손가락을 대고, 떼었다가 다시 댔다. 그다음에는 떼지 않았다.

    소하는 그 손끝이 멎은 데를 보았다. 어제 위에서 끌어다 절반까지 밀어 놓은 자리다. 흙은 그 위에 하루 동안 앉아 있었고, 사내의 손가락은 흙 밑으로는 못 내려간다.

    사내가 일어섰다. 무엇이 걸렸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까닭은 못 읽습니다."

    은실 세 줄이 흙에서 눈을 떼어 사내의 얼굴을 보았다. 한참 보고 나서 그 자리에 선 채로 턱만 내렸다. "닿은 수는 받겠습니다."

    "닿은 차례까지가 제 값입니다." 사내는 제 손톱 밑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누구 손인지까지 가면 그다음은 관이 묻습니다. 그 물음에 답하고 담 안에 남은 사람이 제 계에는 없습니다."

    사내는 문으로 걸어 나갔다. 들어올 때 손을 대고 지나간 데를 나갈 때는 짚지 않았다. 문설주에도 담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은실 세 줄은 사내가 나간 뒤에 그 자리로 걸어가 섰다. 발끝으로 흙을 눌러 보고 신을 떼었다. 흙은 눌린 모양을 잠깐 들고 있다가 도로 올라왔고, 그 사람은 거기서 더 얻은 것이 없는 걸음으로 돌 쪽으로 갔다.

    담 쪽 구석에서는 하루가 다 가도록 삽이 들었다 났다. 자루들이 차례로 들어갔고 쇳날이 끝까지 박혔다가 나왔다. 삽은 흙만 옮기고 있었다.

    저물녘에 사람들이 자루를 뽑아 담에 도로 기대 세웠다. 뽑힌 날에는 말라붙을 흙이 안 묻어 있었다. 어제 저 날들을 자루로 쳐서 털던 사람들이 오늘은 그냥 세워 놓고 손을 털었다.

    해가 기울 무렵에 소하는 목덜미를 다시 긁었다. 긁은 자리와 가려운 자리가 아침에 재 둔 것보다 벌어져 있었다. 아침에는 한 뼘이었고 지금은 어깨를 넘어갔다. 같은 데를 두 번 긁어도 두 번 다 어긋났다.

    마당 가운데의 흙더미는 아침보다 높아져 있었다. 퍼낸 데를 메우고 메운 데를 도로 파느라 흙이 마당을 한 바퀴 돌았고, 돌아온 흙은 올 때마다 더 잘게 부서져 가루로 떴다.

    기록관이 돌에서 서판을 들었다. 소하는 손등을 내밀었다. 세려고 하자 셈이 아까 끊긴 데로 미끄러져서, 소하는 세기를 놓고 엄지가 멎는 데만 눈으로 받았다. 마흔다섯에서 엄지가 멎었고, 멎은 쇠가 손등에 닿아 있는 것은 그보다 늦게 왔다.

    못끝이 서판 위를 내려가다가 어느 칸 앞에서 섰다. 끊긴 자리를 넣는 칸이다. 거기서 못은 아무것도 안 하고 올라갔다. 그 옆 칸으로 가서 다섯을 넣었다.

    기록관이 서판에서 손을 떼었다. 뗀 손은 소하 쪽으로도 은실 세 줄 쪽으로도 가지 않았다. 빈 칸은 빈 채로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었다.

    은실 세 줄이 서판 가까이 와서 칸을 눈으로 훑어 내려갔다. "오늘 든 것은 다섯이고 칸 하나가 비었습니다." 돌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내일은 저분이 센 수를 냅니다. 여섯입니다."

    소하는 서판을 보았다. 끊긴 자리를 넣는 칸만 위에서 아래까지 띄엄띄엄 비어 있고, 그 옆 칸은 날마다 수가 들어 빽빽했다. 빈 데가 길어질수록 옆 칸에 드는 수는 커진다.

    기록관은 못을 소매에 넣기 전에 날을 손바닥에 대고 긁었다. 나무 가루가 떨어졌다. 어제 떨어진 것보다 많았다. 소하는 그 가루가 쌓인 데를 보았고, 기록관은 서판을 소하 쪽으로 돌리지 않았다.

    안채 문이 닫히고 마당에서 사람이 줄자 소하는 담 밑으로 갔다.

    소하는 왼팔을 무릎에 뉘고 오른손을 포갰다. 팔꿈치 쪽은 하나다. 손을 올리자 셋이 왔다.

    소하는 손을 떼었다가 다시 포갰다. 셋이다. 또 포개도 셋이다. 어제저녁에 이 팔이 보여 준 차례대로라면 물은 맨 뒤에 남아야 한다. 오늘 삽은 자리를 하나도 안 건드렸고, 빠진 것은 물 쪽이다.

    빠진 것은 낮에 길 가운데서 걸린 그것도 아니다. 담 쪽 구석에서 가장 먼 것이고, 소하가 오늘 손을 안 댄 것이다. 소하가 민 것은 아니다.

    소하는 외운 것을 다시 세었다. 하나, 둘, 그리고 오늘 빠진 것. 세다가 거기서 멈추었다.

    실이 검지에 걸린 채로 손등에 늘어져 있었다. 소하는 줄을 집었다가 놓았다.

    소하는 일어섰다. 안채 쪽에서 자루를 안고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안고 나오는 수를 세려다가 아까 끊긴 데에 또 닿아 소하는 세던 것을 놓았다.

    문께에서는 아까 문짝을 밀던 사람이 밑에 쌓인 흙을 발로 밀어 내고 있었다. 치우고 나서 밀어 보니 문짝이 걸리는 데 없이 한 번에 돌아갔다.

    문을 지나 길로 올라서서 소하는 걸음을 늦추었다. 목덜미가 다시 가려웠다. 손을 올려 봐야 또 어긋날 것이어서 소하는 팔을 내린 채로 걸었고, 가려운 데는 걷는 동안 목에서 등으로 천천히 옮겨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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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마지막 회차입니다.

    다음 회차는 월·금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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