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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자의 신화
    15화 · 2026년 10월 20일

    투탕카멘의 저주는 무덤보다 먼저 있었다 — 소설의 줄거리를 신문이 입혔다

    무덤이 열리고 후원자가 죽었다

    1922년 11월 하워드 카터가 왕가의 계곡에서 투탕카멘의 무덤을 찾았고, 이듬해 2월 봉인된 매장실이 열렸다. 발굴을 후원한 카나번 경은 1923년 4월 5일 카이로에서 죽었다. 모기에 물린 상처가 면도 중에 덧나 생긴 패혈증과 폐렴이었다. 파라오의 저주라는 말은 이 죽음과 함께 퍼졌다.

    저주를 쓴 것은 신문이었다

    카나번은 1923년 1월 발굴 독점 보도권을 런던 『타임스』에 팔았다. 다른 신문들은 현장 기사를 받지 못했고, 그 빈자리를 저주 이야기가 채웠다. 카나번이 죽기 몇 주 전 소설가 마리 코렐리는 봉인된 무덤에 함부로 들어가는 자에게 무서운 벌이 따른다는 글을 신문에 실었고, 죽음 뒤에는 아서 코넌 도일이 고대 사제의 저주일 수 있다고 말해 기사가 커졌다. 침입자를 저주하는 비문이 무덤에서 나왔다는 보도도 돌았지만, 카터의 발굴 보고서 『투탕카멘의 무덤』에는 그런 글이 없다.

    저주는 무덤보다 먼저였다

    미라가 사람을 해친다는 이야기는 이 무덤보다 오래됐다. 1827년 제인 라우든의 소설 『미라!』가 되살아난 미라를 그렸고, 1869년 루이자 메이 올컷은 단편 「피라미드에서 길을 잃다, 또는 미라의 저주」를 발표했다. 신문은 반세기 넘게 묵은 소설의 줄거리를 실제 무덤에 입힌 셈이다.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해석인가

    확인되는 것은 이렇다. 카나번의 사망 날짜와 경위, 『타임스』와의 독점 계약, 코렐리와 코넌 도일의 발언, 그리고 카터가 1939년까지 살았다는 것. 2002년 마크 넬슨이 『영국의학저널』에 낸 연구는 무덤이 열릴 때 이집트에 있던 서양인 25명을 추적해 무덤에 들어간 사람과 아닌 사람의 수명에 의미 있는 차이가 없다고 보고했다.

    해석은 그다음이다. 독점 계약에서 밀려난 신문들이 의도적으로 저주를 키웠다는 것은 보도의 흐름에서 나온 해석이지 편집자의 고백이 남은 것은 아니다. 무덤 속 곰팡이가 카나번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설도 검증된 적이 없다. 순서만은 분명하다. 저주는 무덤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소설에서 먼저 나왔고, 1923년 신문이 그것을 투탕카멘에게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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