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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자의 신화
    16화 · 2026년 10월 22일

    미다스의 무덤에 금은 없었다 — 황금손과 금이 된 딸이 붙은 순서

    동화보다 먼저 있던 왕

    기원전 8세기 말 아시리아 왕 사르곤 2세의 연대기에는 '무시키의 왕 미타'가 여러 번 나온다. 아나톨리아에서 아시리아와 국경을 다투던 왕으로, 기원전 709년 무렵에는 사르곤에게 사절을 보냈다고 적혀 있다. 그리스 쪽도 이 왕을 안다. 헤로도토스는 『역사』 1권에서 프리기아의 왕, 고르디아스의 아들 미다스가 재판할 때 앉던 왕좌를 델포이에 바쳤다고 적었다.

    봉분 속에는 청동뿐이었다

    1957년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로드니 영 발굴팀이 프리기아의 수도 고르디온에서 높이 50미터가 넘는 봉분, 흔히 미다스 고분이라 부르는 MM 고분을 열었다. 흙과 돌 아래 통나무로 짠 방에 60대 남자의 뼈가 누워 있었고, 나무 가구와 청동 그릇, 청동 옷핀이 방을 채우고 있었다. 도굴된 흔적은 없었는데 금과 은은 한 점도 나오지 않았다. 1999년 패트릭 맥거번 연구팀은 그릇에 남은 찌꺼기에서 포도주·보리술·꿀술을 섞은 음료와 양고기 스튜의 흔적을 찾아 장례 연회의 메뉴를 되살렸다.

    황금손은 수백 년 뒤에, 딸은 이천오백 년 뒤에

    만지는 것마다 금이 되어 굶어 죽었다는 미다스 우화는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1권에서 처음 확인된다. 실레노스를 돌려준 대가로 디오니소스에게 소원을 얻고, 팍톨로스 강에서 몸을 씻어 그 능력을 벗었다는 줄거리는 서기 8년 무렵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11권이 완성했다. 그런데 오비디우스에도 딸은 없다. 딸이 금으로 굳는 장면은 1851년 너새니얼 호손이 아이들을 위해 고쳐 쓴 『소년 소녀를 위한 신기한 책』의 「황금 손」에서 처음 나온다.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해석인가

    확인되는 것은 이렇다. 사르곤 2세 연대기의 미타, 헤로도토스가 적은 델포이의 왕좌, MM 고분의 내용물과 금·은이 없었다는 사실, 그리고 무덤 통나무를 나이테로 재어 기원전 740년 무렵 벤 나무라는 결과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오비디우스, 호손의 글도 남아 있다.

    해석은 그다음이다. 아시리아의 미타와 그리스의 미다스를 같은 사람으로 보는 것은 이름·시기·지역이 겹치는 데서 나온 통설이지 둘을 잇는 문서가 있는 것은 아니다. MM 고분의 주인을 미다스의 선왕으로 보는 것도 나이테 연대와 전해지는 재위 연대를 맞춰 본 추정이다. 금이 없는 무덤이 그의 가난을 뜻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순서는 분명하다. 실존한 왕이 먼저 있었고, 탐욕의 우화는 수백 년 뒤에, 금이 된 딸은 이천오백 년 뒤에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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