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노타우로스는 괴물이 아니었다 — 미궁은 미로가 아니라 궁전이었다
크레타의 미궁에 반인반우 괴물이 갇혀 있었고, 아테네는 해마다 젊은이 열넷을 제물로 보냈다. 테세우스가 그 괴물을 죽이고 실타래를 따라 빠져나왔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미궁이라는 말부터 미로가 아니다. 라비린토스는 크레타의 성물인 양날 도끼 라브리스에서 왔다는 설이 오래됐다. 크노소스 궁전의 벽과 기둥에는 이 도끼 문양이 거듭 새겨져 있다. 라비린토스는 두 날 도끼의 집, 곧 미로의 이름이 아니라 궁전의 이름이었을 수 있다.
크노소스는 방이 천 개를 넘는 다층 복합 건물이다. 계단이 층을 어긋나게 잇고 채광정이 안쪽까지 파고든다. 이런 건물을 처음 본 본토 사람에게는 들어가면 못 나오는 구조로 보였을 것이다.
괴물은 어떤가. 크노소스 벽화에는 돌진하는 황소의 뿔을 잡고 등을 넘는 젊은이들이 그려져 있다. 황소 뛰어넘기다. 실패하면 죽는다. 황소 머리 모양의 술잔과 신성한 뿔 장식도 같은 층에서 나온다. 황소 가면을 쓴 사제가 그 경기를 주관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투키디데스는 미노스가 에게해에서 함대를 거느린 최초의 왕이었다고 적었다. 바다를 쥔 쪽이 주변 도시에서 공물을 받는 건 신화가 아니라 행정이다. 그 공물에 사람이 포함됐다면, 그들은 제단이 아니라 경기장에 세워졌을 수 있다. 죽는 것은 같지만 이유가 다르다.
테세우스는 누구인가. 기원전 1450년 무렵 크노소스의 점토판 문자가 선형문자 A에서 선형문자 B로 바뀐다. 선형문자 B는 그리스어를 적은 문자다. 크레타의 행정을 그리스어 사용자들이 넘겨받았다는 뜻이다.
여기까지가 사료다. 궁전의 구조, 도끼 문양, 황소 뛰어넘기 벽화, 문자의 교체, 투키디데스의 기록. 여기서부터는 해석이다. 공물 이야기가 실제 조공 관계를 담고 있다는 것, 테세우스라는 이름이 미케네의 접수를 사람 하나로 압축한 것이라는 것. 둘 다 오래 논의된 가설이지 증명된 사실이 아니다.
확실한 것은 하나다. 괴물을 죽였다고 적은 쪽은 언제나 이긴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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