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이 여자가 된 그 장면은 원래 없었다 — 단군신화가 적힌 진짜 시점
쑥과 마늘을 먹고 백 일을 견딘 곰이 여자가 되었다. 못 견딘 호랑이는 동굴을 뛰쳐나갔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아는 장면이다.
이 장면이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은 1281년 무렵 일연이 쓴 『삼국유사』다. 고려가 원의 간섭을 받던 때다. 단군이 나라를 세웠다는 기원전 2333년으로부터 3천6백 년이 지난 뒤의 기록이다.
6년 뒤에 나온 책에는 곰이 없다
1287년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도 단군을 다룬다. 그런데 여기엔 곰도 호랑이도 동굴도 없다. 환웅이 손녀에게 약을 먹여 사람의 몸을 갖게 하고, 그 손녀가 단수신과 혼인해 단군을 낳는다. 같은 시대 같은 나라인데 시조가 태어나는 장면이 통째로 다르다.
그 앞의 140년은 조용하다
1145년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단군의 건국 서사가 없다. 평양을 설명하면서 본래 선인 왕검이 살던 곳이라고 한 줄 스칠 뿐이다. 일연이 근거로 든 『위서』에도, 지금 전하는 판본에는 그 대목이 없다.
곰과 호랑이를 부족으로 읽는 눈
동북아시아에는 곰을 신으로 모신 사람들이 길게 살았다. 아이누의 이오만테가 그렇다. 그래서 20세기 이래 여러 연구자가 이 장면을 집단의 이야기로 읽었다. 곰을 섬긴 쪽은 환웅 세력과 결합해 남았고, 호랑이를 섬긴 쪽은 밀려났다는 것이다. 이 눈으로 보면 백 일은 시련이 아니라 편입의 조건이 된다.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해석인가
기록은 여기까지다. 『삼국유사』와 『제왕운기』가 서로 다른 두 판본을 남겼다는 것, 『삼국사기』가 건국 서사에 침묵한다는 것, 인용된 『위서』에 그 기사가 없다는 것.
해석은 그다음이다. 곰과 호랑이가 부족이라는 것은 문헌이 아니라 연구자가 읽어 낸 것이다. 요령 우하량에서 곰 아래턱뼈와 곰 소조가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기원전 3천5백 년 무렵의 유적이고, 단군과 잇는 문헌은 없다. 마늘로 옮기는 그 글자가 마늘인지 달래인지도 논쟁 중이다.
그러니 이 신화는 승자가 다시 쓴 기록이 아닐지도 모른다. 원의 간섭을 받던 두 사람이 6년 사이에 각자 다른 시조를 적었다면, 이건 이긴 쪽의 기록이 아니라 지고 있던 쪽이 급히 세운 기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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