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이야기 · 16화 · 초등 3~4 · 4분
조선의 해시계에는 왜 쥐와 소 그림이 새겨져 있을까?

지금도 몇몇 박물관에는 앙부일구라는 조선시대 해시계가 남아 있어요. 가마솥처럼 오목한 청동 그릇 안에 뾰족한 막대가 꽂혀 있어요.
막대의 그림자가 그릇 안쪽 눈금 위를 움직이며 시각을 알려줘요. 그런데 눈금 옆에는 쥐, 소, 호랑이 같은 동물 그림이 나란히 새겨져 있어요.
시간을 재는 기구에 왜 동물 그림이 필요했을까요? 자시, 축시라는 글자만 새겨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에요.
어떤 사람은 그저 장식이라고 짐작했어요. 궁궐 물건이니 예쁘게 꾸몄을 뿐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앙부일구는 궁궐 안에만 있지 않았어요. 혜정교와 종묘 앞처럼 사람이 많이 오가는 거리에도 놓였어요. 1434년 세종 때의 일이라고 전해져요.
세종은 앙부일구를 여러 개 만들어 궁궐 밖에 나눠 놓았다고 해요. 궁궐이 아니라 백성이 다니는 자리를 일부러 골랐어요.
그 시절 양반들은 한자를 읽고 쓸 줄 알았어요. 하지만 백성 대부분은 한자를 배우지 못했어요.
자시, 축시라는 글자를 보고도 무슨 시각인지 알기 어려웠을 거예요. 거리에 놓인 시계라면 더더욱 문제였겠지요.
그래서 시각마다 낯익은 동물을 짝지어 새겼다고 알려져 있어요. 한밤중인 자시는 쥐, 이른 새벽인 축시는 소로 나타냈어요.
낮 시간에는 말, 양, 원숭이 같은 동물이 차례로 이어졌어요. 열두 시각과 열두 동물이 하나씩 짝을 이뤘어요.
글을 몰라도 지금이 몇 시쯤인지 짐작할 수 있었어요. 익숙한 동물 그림만 보면 됐으니까요.
앙부일구에는 약점도 있었어요. 해가 없는 밤에는 그림자가 생기지 않아 시계 구실을 못 했어요.
그래서 물이 흐르는 힘으로 움직이는 자격루라는 시계를 따로 만들었어요. 자격루 안에는 작은 인형이 들어 있었어요.
정해진 시각이 되면 인형이 스스로 북과 종을 쳤어요. 사람이 매번 지켜보다 종을 치지 않아도 됐어요.
이 종소리는 도성 문을 여닫는 신호이기도 했어요. 초저녁 종소리(인정)가 울리면 성문을 닫고 통행을 막았어요.
새벽 종소리(파루)가 울려야 문이 다시 열리고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었어요. 시계 하나가 온 도성의 하루 리듬을 정했어요.
오늘날 시계에는 동물 대신 숫자만 있어요. 화장실 표지판이나 대피 안내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글자 없이 뜻을 전하는 그림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남은 조선시대 앙부일구는 몇 점 되지 않아요. 전쟁과 화재를 거치며 대부분 사라졌다고 해요.
누가 맨 처음 동물 그림을 넣자고 했는지는 기록에 없어요. 세종 자신의 생각이었을까요, 아니면 실무를 맡은 관리의 생각이었을까요?
다 읽었으면 한 문제 — 앙부일구에 동물 그림을 새긴 까닭은 무엇일까요?
정답: 글자 없이도 시각을 알아보게 하려고
한자를 모르는 백성도 익숙한 동물 그림을 보면 시각을 짐작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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