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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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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역사 이야기 · 18화 · 초등 3~4 · 4분

    장인들이 믿지 않은 나무 기계가 돌을 번쩍 들어 올렸다

    AI 생성 삽화

    정조는 1794년, 수원에 화성이라는 새 성을 짓기로 했어요. 아버지를 추모하는 뜻도 담겼다고 알려져 있어요.

    성벽에 쓸 돌 하나가 수백 근이 넘었어요. 가장 큰 돌은 무게가 만 근이 넘었다고 전해져요.

    이런 돌을 하나씩 들어 성벽 자리에 올려야 했어요. 그동안은 밧줄로 돌을 묶어 사람 여럿이 끌어 올렸어요.

    큰 돌 하나에 수십 명이 매달렸어요. 힘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렸어요.

    다치는 일꾼도 적지 않았어요. 젊은 학자 정약용은 이 방법이 너무 더디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사람 힘을 덜 들이고 돌을 드는 방법을 궁리했어요. 도르래 여러 개와 나무 기둥을 조합한 기계를 설계했어요.

    이름을 거중기라 붙였어요. 도르래를 하나만 쓰면 힘이 크게 줄지 않아요.

    여러 개를 겹쳐 쓰면 아주 작은 힘으로도 돌을 들 수 있어요. 방향도 바꿔 줬어요.

    위로 당기지 않고 옆에서 당겨도 돌이 위로 올라갔어요.

    공사장 장인들은 나무와 밧줄로 만든 기계를 보고 고개를 저었어요. "사람 힘이 제일이다"라며 믿지 않았어요.

    기둥 몇 개로 무거운 돌을 든다는 말을 다들 허풍이라 여겼어요.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어요.

    정약용은 중국에서 들여온 책 「기기도설」을 참고했어요. 도르래 개수를 늘리며 설계를 여러 번 고쳤다고 알려져 있어요.

    첫 시연 날, 장인들은 팔짱을 끼고 멀찍이 서서 지켜보기만 했어요.

    거중기가 삐걱대며 돌을 천천히 들어 올리자 장인들의 표정이 굳었어요.

    원래 큰 돌 하나를 들려면 수십 명이 필요했어요. 거중기를 쓰자 훨씬 적은 사람으로도 충분했다고 전해져요.

    밧줄만으로는 하루 종일 걸릴 돌을, 거중기는 훨씬 짧은 시간에 들어 올렸어요.

    경복궁을 지을 때는 수십 명이 큰 돌 하나에 매달려 끌었다고 전해져요. 화성 공사는 이 점이 달랐어요.

    화성 공사에는 거중기 여러 대가 함께 쓰였어요. 돌 옮기는 시간과 일꾼 수가 크게 줄었어요.

    정조가 직접 공사장에 나와 거중기를 살펴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져요. 만족하며 정약용을 칭찬했다고 해요.

    정조 때 남긴 「화성성역의궤」에는 거중기 덕분에 비용을 아꼈다는 기록이 있어요.

    화성은 애초 십 년 넘게 걸릴 것으로 예상됐어요. 그런데 이 년여 만에 다 지어졌다고 알려져 있어요.

    거중기를 믿지 않던 장인들도 나중에는 다루는 법을 배우려 줄을 섰다고 전해져요.

    오늘날 공사장의 크레인도 도르래로 힘의 방향을 바꾸는 같은 원리를 쓰고 있어요.

    정약용은 훗날 목민심서 같은 책도 남긴 실학자로 널리 알려졌어요.

    정약용이 설계도를 몇 번이나 고쳐 그렸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아요.

    다 읽었으면 한 문제 — 거중기가 작은 힘으로도 무거운 돌을 들 수 있었던 원리는 무엇이었나요?

    정답: 도르래를 여러 개 겹쳐서 힘의 방향과 크기를 바꿨다

    거중기는 도르래를 여러 개 겹쳐서 작은 힘으로도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고, 힘의 방향도 바꿀 수 있게 설계됐어요. 밧줄 굵기나 돌 크기를 바꾼 것이 아니에요.

    이 이야기가 참고한 자료

    ※ 이 글은 위 자료를 바탕으로 생성형 AI가 초안을 쓰고 사람이 확인해 다듬었습니다. 삽화도 AI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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