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이야기 · 20화 · 초등 3~4 · 4분
종이 스물여덟 번 울리면 한양 거리를 걸어선 안 됐다

1784년 어느 겨울밤, 한양 종로 거리에 종소리가 스물여덟 번 울렸어요.
그 소리가 끝나자 거리를 걷던 사람들이 걸음을 서둘렀어요.
이 종소리는 '인정'이라고 불렸어요.
인정이 울리면 그날의 통행금지가 시작됐어요.
밤새 한양 거리를 돌아다니면 안 됐어요.
이를 어기면 순라군에게 붙잡혔어요.
순라군은 밤마다 골목을 도는 병사들이었어요.
붙잡힌 사람은 날이 밝을 때까지 옥에 갇혔어요.
다음 날 아침엔 볼기를 맞는 벌을 받기도 했어요.
그런데 인정은 왜 하필 스물여덟 번이었을까요.
하늘의 별자리를 스물여덟으로 나눈 이십팔수에서 따왔다고 전해져요.
새벽에는 다시 종이 서른세 번 울렸어요.
이 종소리는 '파루'라고 불렸고, 통행금지가 끝났다는 신호였어요.
서른세 번은 불교에서 말하는 서른세 하늘, 삼십삼천을 뜻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숫자 하나에도 하늘과 별자리의 뜻을 담았어요.
밤은 이 두 번의 종소리로만 나뉜 게 아니었어요.
하룻밤을 다섯 '경'으로, 각 경을 다시 다섯 '점'으로 나눴어요.
경이 바뀔 때는 북을, 점이 바뀔 때는 징을 쳤어요.
이 정교한 시간 체계를 지키는 일도 순라군의 몫이었어요.
붙잡힌 시간에 따라 벌의 정도도 달랐다고 전해져요.
초저녁에 걸리면 비교적 가벼운 벌을 받았어요.
새벽에 가까울수록 더 무거운 벌을 받았어요.
일부러 늦게까지 돌아다녔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해요.
통행금지라고 모두가 꼼짝 못 한 건 아니었어요.
혼인이나 초상 같은 급한 일에는 예외가 있었어요.
아픈 사람을 치료하러 가는 의원도 밤길을 다닐 수 있었어요.
관청 일로 급히 움직이는 관리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럴 땐 신분을 증명할 패나 증표를 지녀야 했어요.
패가 없으면 순라군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어요.
양반이라 해도 통행금지를 피해 가긴 어려웠어요.
실제로 밤길에 붙잡혀 곤욕을 치른 기록도 남아 있어요.
이 제도는 한양뿐 아니라 지방 고을에도 있었다고 전해져요.
종을 치던 자리는 지금의 보신각이에요.
오늘날 그 자리를 '종로'라 부르는 것도 이 종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져요.
'보신각'이라는 이름은 조선 말에야 붙여졌다고 알려져 있어요.
보신각 종은 오늘날에도 한 해의 마지막 밤에 울려요.
제야의 종 행사가 바로 그 전통을 이어받았어요.
다만 지금은 통행을 막으려고 치는 게 아니에요.
새해를 맞이하려고 사람들이 스스로 모여 종소리를 들어요.
인정과 파루를 알리던 종소리가, 형태를 바꿔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그 겨울밤 옥에 갇혔던 사람들은 대체 무슨 사정으로 거리를 걷고 있었을까요.
다 읽었으면 한 문제 — 인정이 스물여덟 번, 파루가 서른세 번 울린 까닭은 무엇이라고 전해질까요?
정답: 인정은 이십팔수(별자리), 파루는 삼십삼천(하늘)을 뜻한다고 전해진다
인정(28번)은 하늘의 별자리를 스물여덟으로 나눈 이십팔수, 파루(33번)는 불교에서 말하는 서른세 하늘인 삼십삼천을 뜻한다고 전해져요.
이 이야기가 참고한 자료
※ 이 글은 위 자료를 바탕으로 생성형 AI가 초안을 쓰고 사람이 확인해 다듬었습니다. 삽화도 AI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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