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긴 만큼

이름꾼은 밤새 우물 턱을 떠나지 않았다. 소하가 마당에 나왔을 때도 밧줄을 감은 손을 소매 속에 넣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등잔은 다 꺼져 있었고 하늘은 아직 완전히 밝지 않았다.
"밤새 두 자가 더 왔습니다." 이름꾼이 고개만 돌려 말했다. "어제저녁 아홉 자였던 자리가 지금은 일곱 자입니다. 조금 전에 다시 한 자가 왔습니다."
소하는 그 셈을 셌다. 아홉, 일곱, 여섯. 반나절에 석 자씩 오던 것이 이제는 숨 두어 번 쉬는 사이에 한 자씩 왔다.
소하는 우물 턱에 다가가 손을 우물 아가리 위에 가만히 뻗어봤다. 어제는 그 자리가 밤공기보다 조금 따뜻했는데 오늘은 손바닥 전체가 데워질 만큼 더운 김이 올라왔다. 손을 도로 거둬들이면서도 시선은 우물 안쪽 벽에 그대로 두었다. 어둠 속에서 앞선 미정들이 남긴 긁힌 자국이 김에 가려 반쯤 지워져 보였다.
기록관이 마당을 건너왔다. 자를 소하의 저고리 깃 속으로 넣고 손끝으로 목뼈 아래를 짚었다. "어제는 목 언저리였다." 자를 빼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다." 자끝이 멈춘 자리는 턱 바로 아래였다.
소하는 손으로 그 자리를 눌러봤다. 손끝의 압력은 느껴지는데 눌린 살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를 조금 위로, 아직 안 넘은 자리로 옮겨 다시 눌러보니 그제야 손끝이 시렸다. 시린 데와 안 시린 데의 경계가 자 하나 폭보다도 좁았다.
"넘으면 어떻게 됩니까." 소하가 물었다.
"모른다." 기록관이 자를 접었다. "아무도 안 적어놨다고 열흘 전에도 말했다."
은실 두 줄이 담 그늘에서 나왔다. 걸음이 여느 때보다 빨랐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가 소하 앞에 섰다. "그 벽이 여섯 자 밑으로 가면 관도 잴 수 없는 것이 된다. 그전에 끝내라."
"마지막입니까." 소하가 되물었다.
"마지막이다." 은실 두 줄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젯밤 것은 오늘 아침 것으로 적어라." 그가 기록관을 봤다. "규정 밖에 두 번 적히는 것보다 낫다."
기록관은 붓을 들지 않았다. "다르게 적겠습니다."
"다르게요?" 은실 두 줄의 눈이 좁아졌다.
"어젯밤은 어젯밤입니다. 오늘 아침은 오늘 아침입니다." 기록관의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다. "적는 사람이 시각을 바꾸면 그다음부터는 아무 시각도 못 믿습니다. 저는 있었던 대로 적습니다."
은실 두 줄은 그 말에 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소하를 보며 손짓했다. "그럼 있었던 대로 오늘 것도 만들어라. 해가 다 뜨기 전에."
은실 두 줄이 돌아서자 관 사람 하나가 다가와 낮은 소리로 뭔가 물었다. "성 밖 조는 어젯밤부터 우물 쪽으로 붙였다." 은실 두 줄이 걸음을 늦추지 않고 답했다. "밤에 지킬 자리가 여기밖에 더 있느냐." 그 말이 소하의 귀에도 닿았다. 어젯밤 절차를 밤으로 옮긴 것이 이 마당 하나만의 일이 아니었다는 뜻이었다.
문 쪽에서 발소리가 났다. 관 사람 하나가 앞을 막았다가 밀려났다. 소하의 어머니였다.
옷자락에 밤길의 흙이 묻어 있었다. 머리는 반쯤 풀렸고 신은 한쪽 끈이 끊어져 있었다. 그는 관 사람들 사이를 지나 곧장 소하에게 왔다.
"손 내밀어봐라."
소하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그 손을 잡지 않고 대신 소하의 목덜미에 손등을 댔다. 턱 아래 그 자리였다. 손등이 잠깐 멈췄다가 떨어졌다.
"차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캐묻지 않았다. 그는 자기 저고리를 벗어 소하의 어깨에 걸쳤다. "이거 입어라."
"이모 집 문간은 어떻습니까." 소하가 물었다.
"비었다. 어젯밤에 갔다." 어머니가 답했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엄지로 소하의 눈 밑을 한 번 쓸었다. 며칠 못 잔 자국이 거기 있었다. 그러고는 소하의 젖은 왼손을 오래 봤다. 만지지는 않았다.
"짐꾼도 옵니까." 소하가 물었다.
"뒤에 오고 있다. 걸음이 느리다." 어머니가 답했다. 그뿐이었다.
관 사람이 다가와 어머니를 물러서게 하려 했다. 어머니는 손을 뿌리쳤다. "건드리지 마라." 그는 담 옆으로 딱 세 걸음만 옮겨 섰다.
소하는 밧줄을 두 번 감아 쥐었다. 이름꾼이 반대쪽 끝을 잡았다. 둘 다 신을 벗었다.
"오늘은 부르고 나서 당길 겁니다." 소하가 이름꾼에게 말했다. "여울이 올라오는 만큼만 당깁니다."
이름꾼은 대답 대신 밧줄을 한 번 더 감았다.
소하는 눈을 감고 내려갔다. 발가락으로 벽을 훑었다. 어제는 아홉 자에서 벽이 젖었는데 오늘은 여섯 자에서 벌써 손끝에 물기가 잡혔다. 하루가 다 가지도 않았는데 석 자가 또 붙어 있었다. 벽에서 튄 물방울 하나가 입술에 닿았다. 얕게 쇠 맛이 났다. 우물물이라기엔 낯선 맛이었다.
"밖에 사람 있습니까." 소하가 말했다.
"있습니다." 여울의 목소리가 아래서 왔다. "오늘도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
"제 어머니가 왔습니다." 소하가 답했다. "그리고 오늘은 부르고 나서 당길 겁니다."
여울은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 벽에서 배어 나온 물소리만 아래로 흘렀다.
"부르겠습니다. 여울." 소하가 이름을 불렀다.
오른손 저림이 손목을 지나 팔꿈치를 지났다. 어제는 팔꿈치에서 멈췄는데 오늘은 어깨까지 올라왔다. 밧줄이 팽팽해지며 소하의 몸이 아래로 미끄러졌다.
위에서 이름꾼의 발이 우물 턱 돌 위에서 밀렸다. 몸이 반 걸음 앞으로 끌려갔다. 발소리 안 내던 사람이 처음으로 발을 끄는 소리를 냈다.
"당겨지십니까." 소하가 물었다.
"당겨진다." 이름꾼이 짧게 답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둘이 함께 당겼다. 밧줄이 한 자 짧아졌다. 소하는 그만큼 여울이 가까워졌다고 셈했다. 그런데 여울의 목소리는 거리가 줄지 않은 자리에서 왔다.
"물러났습니다." 여울이 말했다. "당긴 만큼 손이 물러났습니다."
소하는 손바닥이 밧줄에 긁혀 쓰라린 것을 참고 한 번 더 당겼다. 이번엔 반 자만 당겨봤다. 여울의 목소리는 또 같은 만큼 뒤에서 왔다. 세 번째로 겨우 한 뼘만 당겼는데도 똑같았다.
소하는 그 셈을 다시 확인했다. 한 자를 당겼고, 한 자가 물러났다. 반 자를 당겼고, 반 자가 물러났다. 한 뼘을 당겼고, 한 뼘이 물러났다. 손이 여울을 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 재고 있었다 — 당긴 자만큼만, 어긴 적 없이.
"언제부터 이랬습니까." 소하가 물었다.
"모릅니다." 여울이 답했다. "당신이 오기 전에는 잴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 번도 안 어겼습니까." 소하가 물었다.
"네. 한 번도 안 어겼습니다." 여울이 답했다. "저도 오늘 처음 셌습니다."
소하는 그 자리에서 멈췄다. 더 당겨도 거리가 줄지 않는다면 당기는 것에 값이 없었다. 오른쪽 어깨 저림이 그새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소하가 위를 향해 말했다. 목소리가 자기 귀에 낯설게 돌아왔다. 입을 움직인 것은 느껴지는데 소리가 반 박자 늦게, 남의 것처럼 들렸다.
올라오는 데 평소보다 오래 걸렸다. 이름꾼이 밧줄을 당기는 손에 아직 힘이 남아 있었다.
기록관이 자를 들고 다가왔다. 자끝을 목덜미에서 턱까지 그어봤다. "넘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어제 여기였던 자리가 오늘은 저기다."
"느낌이 없습니까." 기록관이 물었다.
"없습니다." 소하가 답했다. "그런데 소리가 다르게 들립니다. 제가 말하면 늦게 돌아옵니다."
기록관은 그 말을 받아 적었다. 목 넘음. 소리가 늦게 돌아옴. 그 옆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손, 당긴 만큼 물러남. 붓이 그 줄에서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흔적꾼이 소하의 왼팔을 두 손가락으로 짚었다.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 손은 여전히 손인지 사람인지 안 잡힙니다." 그가 손을 떼며 보탰다. "다만 오늘은 뭔가 재고 있는 느낌이 남아 있습니다. 저도 처음 느꼈습니다."
기록관이 그 말도 받아 적으려다 멈췄다. "느낌은 규정에 없다." 그가 말했다. "적을 말이 있으면 셈으로 다시 가져오라."

은실 두 줄이 다가와 그 줄을 봤다. "물러났다는 건 셀 수 있다는 뜻이다." 그가 덧붙였다. "관이 못 재는 게 아니다. 다르게 재는 것뿐이다."
이름꾼은 그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밧줄을 걸린 자리에 다시 걸어놓고 소매 속에서 손을 꺼내 펴봤다. 붉어진 자리가 어제보다 넓어져 있었다.
어머니는 담 옆에 그대로 서 있었다. 다가오지 않았고 부르지도 않았다. 소하가 그쪽을 보자 고개를 한 번 끄덕였을 뿐이다.
소하는 방으로 돌아와 종이를 폈다. 오늘 것을 적었다. 벽 여섯 자, 숨 두어 번 쉬는 사이에 한 자씩. 목 넘음, 소리 늦게 돌아옴. 손, 당긴 만큼 물러남 — 한 번도 안 어김. 그 밑에 한 줄을 더 적으려다 멈췄다. 그 손이 여울을 재고 있는 것이라면, 관이 소하를 재는 것과 그 손이 여울을 재는 것이 같은 일인지 다른 일인지는 셈으로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벽은 이제 여섯 자에서 더 내려가면 관도 못 재는 자리로 들어가고, 목을 넘은 자리는 아무 느낌도 없이 조용히 넓어지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손은 소하가 당기면 물러나고 소하가 멈추면 같이 멈췄다. 저쪽에서도 누군가 이쪽의 셈을 세고 있는 것 같았다.
창호지 밖에서는 어머니가 아직 담 옆에 서 있었고, 이름꾼은 우물 턱의 밧줄을 풀지 않은 채 그 곁을 지켰다. 소하는 등잔을 끄기 전에 오른쪽 어깨를 만져봤다. 저림은 가라앉지 않았고, 넘은 자리가 목에서 다음은 어디로 갈지, 다음에도 부를 수 있을지, 아무도 아직 적어놓지 않았다. 짐꾼은 아직 오지 않았다. 걸음이 느리다던 어머니의 말이 얼마나 느린 걸음인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 소하는 종이를 접어 저고리 안에 넣고서야 오늘 셈 하나를 마지막으로 되짚었다. 당긴 만큼 물러난 손은, 물러난 만큼 다시 다가올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 방향으로 셈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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