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부른 이름

새벽에 마당으로 나온 소하는 발밑이 다르다는 것을 먼저 알았다. 흙이 물기를 먹어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어제 잠들기 전까지는 마른 마당이었다.
기록관이 우물 턱 앞에 서서 자를 넣었다 뺐다 하고 있었다. 세 번째에도 같았다. "여섯 자였던 자리가 안 잡힙니다." 그가 말했다. "자를 넣으면 처음부터 물입니다."
은실 두 줄이 다가와 자를 가져가 직접 넣어봤다. 손끝이 물에 닿자 그의 얼굴에서 늘 있던 여유가 잠깐 사라졌다. 그는 자를 두 번 더 넣었다가 뺐다. 자끝에 마른 자리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어제 여섯 자였던 것이 오늘은 없다는 겁니까." 그가 기록관을 봤다.
"그렇게 적겠습니다." 기록관이 답했다. 붓을 종이에 대고 잠깐 멈췄다가 적었다. 자로 못 잰다. 오늘 처음이다.
관 사람들이 우물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누구도 우물 턱에 발을 딛지 않았다. 젖은 흙이 발을 딛는 자리마다 조금씩 내려앉았고, 밤새 마당 전체가 낮은 쪽으로 물기를 밀어 보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은실 두 줄은 자를 소매에 넣지 않고 손에 쥔 채 서 있었다. "관이 쓸모없어진다고 며칠 전에 내가 짚었다." 그가 낮게 말했다. "그게 오늘 왔다." 그는 곧 마당 밖으로 사람을 보내 다른 조를 불러오게 했다. 관 사람 몇이 젖은 흙 가장자리를 삽으로 파헤쳐 도랑을 내보려 했지만 판 자리도 곧 다시 물이 배어 나왔다.
어머니가 다가와 소하의 발을 내려다봤다. "발 젖었다. 마른 데 딛어라." 그러고는 다시 담 옆 자리로 돌아갔다. 캐묻지 않았다.
소하는 우물 턱으로 다가가 손을 마당 흙에 대봤다. 흙이 손바닥 전체로 물기를 밀어 올렸다. 어제까지는 우물 안에서만 젖는 자리였는데 오늘은 마당까지 젖어 있었다. 발바닥부터 찬 물기가 천천히 스며 올라오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소하는 그 감각을 셈으로 옮겨보려 했지만 숫자가 안 나왔다. 물기에는 자가 없었다.
마당 밖 시장은 평소처럼 열려 있었지만 관 마당 쪽으로는 아무도 물건을 들고 오지 않았다. 담 너머로 지게꾼들이 발을 멈추고 서서 이쪽을 흘끔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발을 멈추는 소리도, 다시 걷는 소리도 여느 아침보다 조심스러웠다.
늙은 짐꾼이 마당으로 들어온 건 해가 반쯤 오른 뒤였다. 걸음이 정말 느렸다. 문턱을 넘을 때 한 번, 우물 턱까지 오는 동안 두 번 멈춰 숨을 골랐다. 사흘 관에 있다 나온 사람치고 얼굴빛은 괜찮았지만 다리를 조금씩 끌었다.
그는 곧장 우물로 가지 않고 마당 흙을 먼저 봤다. 쭈그려 앉아 손가락을 눌러 넣었다. "이게 어디까지요." 관 사람 하나에게 물었다.
관 사람은 대답하지 못했다. 짐꾼은 손가락을 더 깊이 눌러 넣고 눈을 감았다. 손끝으로 흙의 결을 따라가듯 조금씩 움직이며 셈을 하는 얼굴이었다. "여기서부터 저기 담까지, 다섯 걸음. 다섯 걸음이 다 젖었소." 그가 손을 털며 일어섰다. "자가 못 재도 발은 잽니다."
소하는 그 말을 들으며 짐꾼을 봤다. 골목에서 이 사람이 처음으로 소하의 셈을 짚어준 것이 겨우 이레 전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소하가 물었다.
"사흘 있었는데 안 맞았다. 그거면 됐다." 짐꾼이 답했다. 그는 소하의 얼굴을 잠깐 보고는 더 캐묻지 않고 우물 턱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너 하는 거 보고 가겠다. 그리고 셈은 내가 짚어주겠다."
짐꾼은 밧줄에 감긴 매듭을 손끝으로 하나씩 짚어 세기 시작했다. 굳은살이 밧줄에 닿는 소리가 낮게 났다. 이름꾼이 그 손을 잠깐 보고는 자리를 조금 옮겨 앉았다.
어머니가 담 옆에서 짐꾼을 알아보고 고개를 숙였다. 짐꾼도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 다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같은 시장통에서 서로를 봐온 사람들끼리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은실 두 줄이 기록관에게 다가와 어젯밤 것을 펴 보라 했다. 기록관이 장부를 열었다. "어젯밤은 어젯밤입니다"로 시작하는 그 줄이 그대로 있었다.
"이걸 남겨두면 다음에도 이런다." 은실 두 줄이 말했다. "적는 사람마다 자기 마음대로 시각을 정하기 시작한다. 그게 규정보다 위에 서게 된다."
기록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붓을 쥔 손이 장부 위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은실 두 줄이 그 장을 뜯어 소하 앞으로 가져왔다. "손을 대라." 그가 소하의 왼손을 그 종이 위에 눌러 올렸다.
먹이 사라졌다. 종이는 그대로였고 글자만 없어졌다. "어젯밤은 어젯밤입니다"로 시작하던 줄도, 그 위에 적힌 시각도 전부 없어졌다.
기록관은 붓을 쥔 채로 서 있었다. 붓끝이 먹을 묻히지 않은 채로 마른 채 떨렸다. 그는 빈 종이를 도로 받아 접어 넣고, 다음 줄을 바로 쓰지 못했다.
은실 두 줄은 그 빈 종이를 잠깐 더 바라봤다. 이긴 얼굴은 아니었다. "네가 옳았다는 걸 아무도 못 적게 만든 것뿐이다." 그가 조용히 말하고 먼저 돌아섰다.
"지워졌다고 적겠습니다." 기록관이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그뿐입니다."
"그뿐입니까." 소하가 되물었다.
"그게 규정입니다." 기록관이 답했다. "지워진 것도 지워졌다고 적습니다. 다만 오늘은 다른 손을 빌려야 했습니다."
소하는 그 말을 들으며 왼손을 오므렸다. 이 손이 지운 것은 기록관이 밤새 지키려던 그 한 줄이었다.
내려가기 전, 기록관이 자를 소하의 턱 밑에 댔다가 광대뼈 아래까지 밀어 올렸다. "여기까지다." 어제는 목이었던 자리가 오늘은 그만큼 더 올라와 있었다.
소하는 신을 벗어 어머니 쪽에 가지런히 놓고 밧줄을 잡았다. 손바닥에 밧줄을 두 번 감고 매듭을 확인한 뒤 우물 턱에 걸터앉았다. 발밑의 흙이 여전히 젖어 있었다. 이름꾼이 반대쪽 끝을 잡았고 짐꾼은 옆에서 매듭 수를 세고 있었다. 어머니는 담 옆에 그대로 서 있었다.
눈을 감고 내려가는 동안 벽을 짚은 손끝이 처음부터 물에 잠겼다. 어제는 여섯 자를 내려가야 닿던 물기가 오늘은 우물 턱에서부터 있었다. 이제 벽에는 마른 자리와 젖은 자리를 가르는 금이 없었다. 반쯤 내려갔을 때 왼쪽 눈을 살짝 뜨고 벽을 봤는데 색이 사라져 있었다. 밝고 어두운 것만 남고 나머지는 다 같은 빛깔이었다. 목을 넘은 뒤로 생긴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눈이 이상합니다. 왼쪽만 색이 안 보입니다." 소하가 위를 향해 말했다.
"적어두겠다." 기록관의 목소리가 위에서 내려왔다. 붓 긁는 소리가 뒤따라 들렸다.
소하는 손끝으로 벽을 짚으며 조금 더 내려갔다. 발끝이 물에 잠기는 순간과 발끝이 벽에서 미끄러지는 순간을 헷갈리지 않으려고 매번 발가락을 오므려 확인했다. 밧줄이 젖어 손바닥에서 자꾸 미끄러졌다.
"밖에 사람 있습니까." 소하가 아래를 향해 물었다.
"있습니다." 여울이 답했다. "오늘은 발밑이 다릅니까."
"다릅니다. 마당까지 젖었습니다." 소하가 답했다. "그쪽은 어떻습니까."
여울은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 벽에서 배어 나온 물소리만 흘렀다. "그 손이 오늘 다르게 닿았습니다." 마침내 여울이 입을 열었다. "누르지 않고 짚었습니다. 손끝으로, 뭔가를 재는 사람처럼요."
"잰다고요." 소하가 되물었다.
"그렇게 느꼈습니다." 여울이 답했다. "저를 대고 뭔가 다른 걸 재는 느낌이었습니다. 저와 당신 사이를요."
소하는 그 말을 셈으로 옮겨봤다. 관이 미정을 내려보내 우물로 저쪽까지의 거리를 재는 것과, 저쪽이 여울을 대고 이쪽까지의 거리를 재는 것이 같은 모양이었다.
"그쪽에도 우물이 있습니까." 소하가 물었다.
여울은 이번에도 대답을 미뤘다. "모릅니다." 겨우 답했다. "다만 방금, 처음으로, 저쪽에도 누가 서 있는 것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서서 뭔가를 짚고 있는 것처럼요."
"짐꾼도 여기서 셈을 짚고 있습니다." 소하가 말했다. "관도 짚습니다. 저쪽도 짚는다면, 짚는 자리가 하나 더 있는 셈입니다."
여울은 그 말에 짧게 숨을 냈다. 웃음소리에 가까웠다. "그럼 저는 두 자리에서 동시에 재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가 답했다. "위에서 한 번, 아래에서 한 번."
소하는 그 셈을 종이에 적을 자리를 마음속으로 남겨뒀다. 아직 확인된 것은 아니었다. 확인된 것은 저쪽에도 서 있는 무엇이 있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그것이 사람인지, 손만인지, 은포에는 없는 어떤 속성인지는 여울도 소하도 몰랐다.
소하는 숨을 고르며 여울의 이름을 부를 준비를 했다. 아직 부르지 않았다.
그런데 아래에서 목소리가 먼저 왔다. 여울의 것이 아니었다. 낮고 물에 잠긴 듯 울리는 소리가 벽을 타고 올라왔다.
"소하야."
손끝이 그대로 멈췄다. 위에서 이름꾼이 밧줄을 쥔 손에 힘을 줬고 짐꾼이 매듭 세던 손을 멈췄다. 여울이 다급하게 말했다. "저 아닙니다. 저는 안 불렀습니다."
소하는 벽에 붙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손끝이 벽을 짚은 자리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지금까지는 늘 소하가 먼저 불렀고 안 뗀 손은 여울을 잡은 채로 그 거리만 정확히 되돌려줬다. 오늘은 순서가 바뀌었다. 소하가 부른 것이 아니라 불린 것이었다.

기록관이 위에서 뭐라 물었지만 소하의 귀에는 늦고 낮게 들렸다. 왼쪽 눈으로 보는 우물 벽은 색 없이 젖어 빛났고, 발밑에 남기고 온 마당 흙은 여전히 물기를 밀어 올리고 있을 것이었다. 짐꾼이 낮은 소리로 매듭 수를 다시 세기 시작했고, 이름꾼은 아무 말 없이 밧줄을 조금 당겼다가 도로 늦췄다. 소하는 자기 이름이 아래에서 먼저 들려온 그 짧은 순간을 셈으로 붙잡으려 했지만 어떤 숫자도 나오지 않았다. 여섯 해 동안 저쪽은 한 번도 먼저 부른 적이 없었고, 그래서 여울도 소하도 그 손을 그저 재는 손으로만 알고 있었다. 관 마당은 아침이 다 되도록 젖은 채로 마르지 않았고, 벽도 마당도 이제 자로는 못 재는 자리가 됐다. 짐꾼이 다시 매듭을 세는 소리를 냈고 그 소리에 맞춰 소하는 겨우 숨을 한 번 뱉었다. 이제까지는 저쪽이 짚는 손이었고 소하가 부르는 쪽이었다. 오늘 그 순서가 한 번 바뀌었다면, 다음에도 바뀔 수 있었다. 다음에 내려갈 때는 저쪽이 먼저 물어올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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