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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정 — 열일곱 번째 속성
    13 · 2026년 8월 24일

    굳은 자리

    "소하야."

    목소리는 여울의 것이 아니었다. 낮고 물에 잠겨 있었고, 소하가 부르기도 전에 먼저 왔다. 손끝에 대고 있던 사이가 그 말과 함께 좁아지는 대신 당겼다. 벽 저편에서 무언가 끌어당기는 힘이 손끝을 타고 곧장 손목까지 올라왔다.

    소하는 눈을 감은 채 셈부터 했다. "하나." 손목이 벽 안쪽으로 넘어갔다. "둘." 팔꿈치 안쪽까지 딸려 들어갔다. 물기가 팔뚝을 타고 올라오며 차가움과는 다른 종류의 서늘함을 남겼다. "셋." 어깨가 벽에 붙었다.

    당김은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세 번으로 나뉘어 왔다. 당기고, 잠깐 멎고, 다시 당겼다. 소하는 그 간격을 셈에 넣으려 했지만 셋을 세는 사이에 넷째 당김이 왔고, 그때는 이미 어깨가 벽에 눌린 뒤였다.

    여섯 해 동안 저쪽이 먼저 부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소하는 지금 다시 짚어 볼 틈이 없었다. 몸이 넘어가는 속도가 손으로 멈출 수 있는 속도를 이미 넘어서고 있었다. 눈을 뜨면 그 자리에서 크기가 굳는다. 소하는 숨을 한 번 삼키고 눈을 떴다.

    오른쪽 눈으로는 벽과 손목 사이의 틈이 손가락 다섯 마디만큼 보였다. 왼쪽 눈으로는 같은 자리가 밝고 어두운 것으로만 나뉘어, 다섯 마디인지 여섯 마디인지 가늠이 서지 않았다. 늘 두 눈으로 겹쳐 재던 폭을 이제 한쪽 눈으로만 읽어야 했고, 그 사실을 소하는 지금 처음으로 몸으로 알았다.

    평소에는 오른쪽과 왼쪽이 서로의 자리를 메워 하나의 폭을 만들어 왔다. 한쪽이 밝음과 어둠만으로 대강을 잡는 동안 다른 쪽이 마디 수를 정확히 세워 왔다는 것을, 소하는 그 폭을 반으로 잃고 나서야 알았다.

    소하는 오른쪽 눈이 읽은 쪽을 따르기로 했다. "다섯." 소리 내어 말하며 그 크기를 정했다.

    사이는 다섯에서 멎지 않았다. 다섯과 여섯 사이 어디쯤에서 멎었고, 그 어중간한 자리에 왼손 새끼손가락 마지막 마디가 걸렸다. 굳음은 순식간이었다. 손목까지 넘어와 있던 몸은 도로 빠져나왔지만, 새끼손가락 마지막 마디만 그 자리에 남아 벽 저편을 향한 채 되돌아오지 않았다.

    눌러도 아프지 않았다. 오른쪽 눈으로 보면 다른 손가락과 같은 살빛이었는데, 왼쪽 눈으로 보면 그 마디만 유독 어두웠다. 소하는 그 손가락을 두 번 접었다 펴 보았다. 감각은 있는데 마디 하나만큼 늦게 왔다.

    나머지 손가락들도 하나씩 접어 확인했다. 넷은 제때 왔고 하나만 늦었다. 소하는 그 순서를 속으로 다시 한번 짚었다. 넷, 그리고 하나.

    소하는 손끝으로 여울까지의 사이를 다시 짚어 보았다. 우물에 내려온 뒤로 늘 잡히던 셈이었는데, 이번에는 손끝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모릅니다." 소하는 혼자 중얼거리고 손을 거뒀다. 얼마나 되는지, 가까운지 먼지조차 지금은 알 수 없었다.

    밧줄이 위에서 흔들렸다. 누군가 소하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몸이 우물 벽을 따라 올라가는 동안에도 소하는 왼손을 가슴 쪽에 붙인 채 새끼손가락 끝의 늦은 감각만 계속 확인했다.

    마당은 이제 하늘을 담고 있었다. 고인 물이 아침 볕을 그대로 받아 사람들 발밑에 자기 얼굴을 띄웠고, 걸을 때마다 다들 자기 얼굴을 밟았다. 오른쪽 눈으로 보면 그 얼굴에 옅은 볕이 붉게 돌았지만, 소하의 왼쪽 눈에는 그냥 더 밝은 흙과 다르지 않았다. 발밑에 뜬 게 얼굴인지 흙인지, 소하는 반쪽 눈으로는 가릴 수 없었다.

    관 사람들은 발밑을 보지 않으려 고개를 들고 걸었다. 그래도 물이 고인 자리를 피해 걷다 보면 결국 누군가의 얼굴 위로 발이 갔다. 아무도 그 일을 입에 담지 않았다.

    어머니는 담 옆 세 걸음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 자리도 이미 발등까지 젖어 있었다. "마른 데 딛어라." 소하는 대답 대신 마당을 둘러보았다. 마른 자리를 찾는 눈이 오히려 더 바빠졌을 뿐, 찾지 못했다.

    어머니는 젖은 발끝을 한 번 내려다보고도 그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세 걸음이라는 자리를 정한 뒤로 한 번도 옮긴 적이 없는 걸음이었다.

    늙은 짐꾼이 담장 쪽으로 몇 걸음 옮기며 손가락으로 흙을 짚었다. "여덟 걸음이 젖었소." 지난번보다 세 걸음이 늘어난 셈이었다. 짐꾼은 다리를 끌며 두 걸음을 더 걸어 보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았다. 앉은 자리마저 발밑이 축축했다.

    이름꾼은 우물 턱에 붙어 밧줄을 걷어 올리고 있었다. 매듭 여섯까지는 늘 말라 있던 밧줄인데, 이번에는 아홉 번째 매듭까지 젖어 올라와 있었다. 이름꾼이 밧줄을 들어 보이며 소하 쪽을 돌아보았다. "매듭 아홉입니다."

    소하가 왼손을 들어 보였다. "다섯과 여섯 사이입니다." 새끼손가락 끝만 유독 창백했다. 이름꾼이 그 손을 잠깐 들여다보았다. "다섯과 여섯 사이요?" 소하는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손을 접었다. 발소리 없이 다가온 이름꾼이 그 손끝을 한 번 더 눈으로 훑고는 밧줄을 도로 감았다.

    은실 두 줄이 관 마당 쪽에서 걸어왔다. 소매의 은실 두 줄이 젖은 볕에 옅게 빛났다. "더 못 잽니다." 목소리는 여느 때와 같았다. "그래서 메우겠습니다."

    늙은 기록관이 처음으로 걸음을 멈췄다. "이백 년 전 규정에는 메우지 말라고 적혀 있습니다. 메우면 잴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다. 은실 두 줄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 메웁니다. 재는 걸 그만두려고요."

    "언제부터입니까." 소하가 물었다. "오늘 새벽입니다." 은실 두 줄이 마당을 한 번 둘러보았다. "마당까지 온 걸 보고 정했습니다."

    소하가 손을 다시 폈다. "메운다고요." 은실 두 줄이 그 말에 처음으로 소하 쪽을 보았다. 소하는 물러나지 않았다. "얼굴이 다 덮이면, 그다음은 무엇입니까."

    은실 두 줄이 걸음을 멈췄다. 손등으로 콧등을 스쳤다. 넷을 우물로 내려보낸 손이었다. "넷 중 둘은 얼굴이 다 덮이고도 살았습니다." 잠시 뒤에 덧붙였다. "그다음 없어진 건 이쪽에서 부르는 소리였습니다. 저쪽은 여전히 부를 수 있었고요."

    마당에 잠깐 물소리만 남았다. 짐꾼이 젖은 흙에서 발을 떼는 소리, 밧줄이 우물 턱에 스치는 소리였다. 짐꾼도 이름꾼도 놀라지 않았다. 둘 다 오래전부터 이날이 올 것을 알고 있던 얼굴이었다.

    "메우면 여울은 못 나옵니다." "그렇겠지요." 은실 두 줄은 그 말만 남기고 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끼는 기색이 없었다. 소하는 그 등을 보며 손가락 마디의 늦게 온 감각을 다시 접었다 폈다.

    은실 두 줄이 돌아선 뒤, 늙은 기록관이 우물 턱 돌 앞에 몸을 굽혔다. 소매에서 못을 꺼내 돌에 금을 긋기 시작했다. 못끝이 지날 때마다 돌가루가 얇게 떨어졌다. 손은 떨리지 않았다. 붓으로 한 자를 적을 때보다 못으로 한 획을 긋는 데 훨씬 오래 걸렸다.

    "무엇을 적으십니까." 소하가 물었다. "메운다고 적습니다." 기록관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지워진 것도 지워졌다고 적은 손이, 이번엔 지워지지 않을 것을 적습니다."

    소하의 젖은 왼손이 그 금 위를 스쳤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손끝에 남은 건 돌가루뿐이었다. 소하는 손을 거두고 우물 안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이름꾼이 밧줄을 흔들며 우물 안쪽으로 소리쳤다. "들립니까." 물소리만 크게 울려 올라왔다. 소하도 우물 턱에 손을 짚고 사이를 찾았지만, 방금 굳은 자리가 아직 눌려 있어 손끝이 아무것도 읽지 못했다. 한 번 쓴 손은 바로 다시 쓸 수 없었다. 소하는 손을 짚은 채로 조금 더 기다려 보았다. 손끝은 여전히 조용했다.

    소하는 우물 턱에 귀를 대 보았다. 물이 돌벽을 때리는 소리만 반복해서 올라왔고, 그 사이 어디에도 여울의 셈은 섞여 있지 않았다.

    소하는 손을 거두고 관자놀이를 짚었다. 차가움이 광대뼈 아래를 넘어 왼쪽 관자놀이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그 언저리에서부터, 왼쪽에서 나는 소리가 오른쪽에서 나는 것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짐꾼이 왼쪽에서 부르는데도 소하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왼쪽으로 돌렸다. 두 번 돌리고서야 짐꾼을 찾았다.

    "자가 못 재도 발은 잽니다." 짐꾼이 흙 위에 앉은 채 말했다. 소하는 그 옆에 쭈그려 앉아 젖은 흙에 손가락을 짚어 보았다. 흙은 손가락 마디 하나가 들어갈 만큼 물렀다. 어제보다 물러진 흙이었다.

    담 모퉁이에 누군가 쭈그려 있었다. 무명이었다. 왼쪽으로 여민 옷깃이 젖어 있었고, 한쪽 무릎을 세운 채 마당 쪽 물을 보고 있었다. 소하를 보자 먼저 입을 열었다. "가까워졌소."

    "무엇이 말입니까." 소하가 물었다. 무명은 손끝으로 물웅덩이에 뜬 하늘을 가리켰다. "저게 우리 쪽 하늘이오. 우리 쪽에선 이걸 두 번째 문턱이라고 부르오. 이만큼 가까워진 적은 없었소."

    소하는 그 웅덩이를 오른쪽 눈으로 들여다보았다. 하늘이 담겨 있었다. 왼쪽 눈으로 같은 자리를 보면 그냥 밝은 물이었다. 소하는 두 눈으로 본 것을 맞춰 보려다가, 이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을 뿐이었다.

    "관이 이걸 메우려 합니다." 소하가 말했다. 무명은 잠깐 말이 없다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 쪽에서는 문턱을 메운 적이 없소. 메운다고 가까운 게 멀어지지는 않소." 그러고는 자기 무릎을 한 번 더 세워 앉았다.

    "그럼 무엇이 멀어지게 합니까." 소하가 물었다. 무명은 옷깃을 한 번 여미며 대답했다. "우리 쪽에서는 아무도 그걸 알아낸 적이 없소. 알아냈다면 나도 여섯 해 전에 돌아갔을 것이오."

    무명은 담장 밖에서 마당 안쪽을 넘겨다보며 물이 얼마나 찼는지 가늠하는 눈이었다. 관이 자기를 모른다는 것을 알아서 담을 넘어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발은 이미 담 밑동까지 젖은 흙을 밟고 있었다. 소하는 그 눈을, 늙은 짐꾼이 마당 흙을 짚던 눈과 나란히 놓고 보았다. 재는 눈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었고, 그 눈이 재는 것은 마당이 아니라 저쪽 하늘이 여기까지 온 거리였다.

    담장 안쪽에서는 기록관의 못이 여전히 돌을 긁고 있었고, 담장 밖에서는 무명이 자기 세계가 가까워진 거리를 가늠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선 소하만이 양쪽 다 손끝으로 잰 적이 있었다. 소하는 왼손 새끼손가락 끝의, 늦게 오는 감각을 다시 한 번 접었다 펴며 그 눈을 오래 마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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