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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정 — 열일곱 번째 속성
    16 · 2026년 9월 3일

    밖에 둔 셈

    열하루째 새벽, 우물은 처음으로 관 밖이었다. 서쪽 담이 헐린 자리로 밤새 바람이 그대로 드나들었고, 마당 흙에는 그 바람이 지나간 결만 남아 있었다.

    늙은 기록관이 못을 들고 아침마다 묻는 두 가지를 물으러 왔다. 소하는 이마 자리를 손끝으로 위에서 아래로 훑어 내려가며 어디서 감각이 돌아오는지를 찾았다. 눈썹 위 손가락 하나 폭에서 손끝이 처음으로 자기 이마를 만졌다.

    "어제 자리 그대롭니다." 소하가 손을 내렸다. "오늘은 안 넘었습니다."

    기록관의 못이 돌에 닿기 전에 잠깐 멈췄다. 열하루 동안 이 자리에서 같은 대답이 나온 적이 없었다. "안 넘은 것도 넘은 것만큼 적어야 압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돌을 긁기 시작했다.

    이름꾼이 밧줄을 걷어 올리며 젖은 자리를 손으로 훑었다. 열네 번째 매듭까지 물이 올라와 있었다. 어제는 열둘이었다.

    짐꾼이 지팡이로 마당을 짚어가며 걸음을 셌다. "열일곱이오." 어제는 열넷이었고, 담이 헐린 서쪽으로 젖은 자리가 그만큼 밀고 나가 있었다.

    소하는 그 걸음 수를 들으며 왼손을 가슴께로 가져갔다. 손끝으로 셈을 하려던 참이었다. 그 순간 없는 마디 끝이 미세하게 조여드는 게 느껴졌다.

    소하는 손을 도로 내렸다. 숫자 하나가 머릿속을 지나가기만 해도 마디가 반응한다는 것을, 이제는 매번 확인하지 않아도 알았다.

    흐려짐도 오늘은 달랐다. 어젯밤 손끝으로 짚었을 때 열을 셀 동안 갔던 것이, 오늘 새벽에는 셋에서 멎었다.

    "셋입니다." 소하가 혼잣말처럼 뱉었다. 이름꾼이 밧줄에서 손을 뗐다.

    "흐려지는 동안입니다." 소하가 손끝을 접었다 폈다. "어제는 열을 셀 동안 갔는데 오늘은 셋에서 멎었습니다."

    이름꾼은 아무것도 보태지 않고 밧줄을 다시 잡았다. 매듭도 걸음도 어제보다 늘어 있었다. 줄지 않은 것은 소하 몸 하나뿐이었다.

    소하는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밧줄 끝을 만지작거렸다. 셈을 안 하려 했지만 안 하려는 것 자체가 셈이었다. 숫자를 참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늘 다음 숫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소하는 헝겊 조각을 하나 찢어 밧줄 아홉 번째 매듭에 묶었다. 숫자를 세지 않고 자리만 표시해두려는 생각이었다.

    소하는 그 헝겊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저절로 숫자를 세고 있었다. "아홉."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마디 끝이 조여들었다.

    표를 만들어놓아도 소용없었다. 헝겊을 보고 그것을 아홉이라는 수로 바꾸는 순간, 마디는 머릿속으로 셀 때와 똑같이 반응했다. 셈이 일어나는 자리는 머릿속 하나가 아니었다.

    소하는 헝겊을 풀어냈다. 다시 방법을 찾아야 했다.

    늙은 짐꾼이 지팡이를 짚고 다가와 그 헝겊 조각을 내려다봤다. 발끝으로 헝겊을 한 번 건드려보고는 소하 얼굴을 봤다. "그걸로 뭘 하려는 거요."

    "세지 않고 표만 두려고 했습니다." 소하가 풀린 헝겊을 손에 쥐었다. "그런데 표를 보면 그대로 셉니다."

    짐꾼은 지팡이 끝으로 젖은 흙을 콱 짚어 표시를 냈다. "나는 평생 무게를 수로 잰 적이 없소." 지게를 들썩여 보였다. "질 수 있나 없나, 그것만 아오."

    소하는 그 말을 몸으로 옮겨봤다. 짐꾼은 지게가 몇 근인지 모른 채로 그 지게를 지고 마당을 오갔다. 무게는 몸에 있었지 숫자에 있지 않았다.

    소하는 짐꾼의 지게 끈을 손으로 잡아 무게를 걸어봤다. "그럼 어르신은 오늘 흙이 몇 삼태기인지도 모르십니까."

    "삼태기는 세오." 짐꾼이 지팡이를 흙에서 뽑았다. "그건 손으로 옮기는 것들이라 세는 게 편하오. 하지만 무게는 안 세오. 지고 걸어보면 아오."

    소하는 그 구분을 다시 짚었다. 셈이 필요한 것과 몸으로 알면 되는 것이 나뉘어 있었다. 흐려짐도, 손 아래 자리도, 몸에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소하는 헝겊을 다시 매듭에 묶었다. 이번에는 매듭 수를 세려 하지 않고, 헝겊이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하기로 했다. 아홉 번째인지는 몰라도, 헝겊이 지나갔는지 안 지나갔는지는 알 수 있었다.

    눈으로 헝겊을 보는 순간은 여전히 위험했다. 소하는 손끝으로만 헝겊을 확인하고 눈은 감아두었다. 매듭의 개수 대신 헝겊의 감촉만 손에 남겼다.

    마당 젖은 자리 끝에도 짐꾼처럼 돌을 놓았다. 걸음 수를 세는 대신 돌이 어제보다 앞에 있는지 뒤에 있는지만 보기로 했다.

    소하는 그 돌을 두 번 옮겨보고서야 방식이 통한다는 걸 알았다. 자리가 앞으로 왔는지 뒤로 물러났는지는 눈으로 봐도 마디가 반응하지 않았다. 수를 세지 않고도 자리는 알 수 있었다.

    소하는 왼손 새끼손가락 끝을 오래 들여다봤다. 마디가 없는 그 자리는 조용했다. 오늘 처음으로, 표를 확인하고도 아무 일도 없었다.

    다만 이게 정말 흐려짐을 줄인 것인지, 오늘이 마침 그런 날이었는지는 소하도 알 수 없었다. 짐작을 셈으로 확정 짓는 순간 다시 마디가 반응할 것 같았다.

    어머니가 마당으로 들어와 소하 옆에 앉았다. 관이 물러난 마당은 이제 누구든 들어올 수 있는 자리였다.

    어머니는 실타래를 하나 꺼내 소하의 이마 앞에 갖다 댔다. 눈썹 아래에서 이마 끝까지 실을 늘였다 접었다.

    "가만있어라." 어머니가 실 끝을 손가락으로 눌러 표시했다. 숫자는 한 마디도 입에 담지 않았다.

    실이 이마 위를 두 번 오갔다. 어머니는 그 길이만큼 실을 잘라 매듭을 세 번 지었다. 소하는 그 매듭이 몇 번째인지 묻지 않았다.

    "이게 뭡니까." 소하가 실 끝을 잡아보았다. "네 이마에 남은 자리다." 어머니가 실을 소하 손목에 감아주었다. "숫자는 모른다. 내일 재서 짧아졌으면 매듭을 하나 더 짓겠다."

    소하는 그 매듭을 손끝으로 만져봤다. 마디는 조용했다. 어머니가 잰 것은 실에 남아 있었고, 소하의 몸에는 아무것도 안 남았다.

    어머니는 그 실타래를 품에 넣었다. 내일도 재겠다는 뜻이었다. 캐묻지 않던 사람이 처음으로 손에 일을 쥐고 있었다.

    헐린 담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관 사람의 걸음이 아니었다.

    짧고 고른 보폭으로, 망설임 없이 곧장 우물 쪽으로 왔다. 짙은 남색 띠를 두른 사내였다.

    "값을 부르러 왔습니다." 사내가 우물 턱에 손을 얹었다. "관 밖 우물이라 들었습니다."

    소하는 그 띠를 봤다. 계 사람이 관 마당에 걸어 들어오는 것은 열하루 동안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누구십니까."

    "길계입니다." 사내가 우물 안을 한 번 들여다봤다. "이 우물이 저쪽 물로 안 마른다는 걸 저희도 압니다. 관만 아는 게 아닙니다."

    길꾼은 우물 턱을 한 바퀴 돌아보고는 담 헐린 서쪽으로 걸었다. 걷던 자리에 없던 흙길이 조금씩 드러났다. 발을 디딜 때마다 땅이 스스로 다져지는 것 같았다.

    소하는 그 걸음을 눈으로 좇았다. 길꾼이 지나간 자리에는 원래 없던 좁은 길이 생겼다. 어제까지 풀과 돌부리가 있던 자리가 이제 평평했다.

    소하는 자기 손끝을 내려다봤다. 소하가 짚는 사이는 저쪽의 같은 자리를 이쪽에 겹쳐 넣는 것이었다. 길꾼이 딛는 자리는 이쪽에 없던 것을 새로 내는 것이었다. 둘 다 우물 쪽으로 가고 있었지만, 나란히 놓고 봐야 겨우 다르다는 게 보였다.

    길꾼이 다시 같은 길로 돌아오려다 걸음을 멈췄다. 방향을 돌려 다른 쪽으로 크게 돌아갔다. "같은 길은 두 번 못 걷습니다." 그가 지나가며 말했다. "돌아갈 때마다 새로 냅니다."

    소하는 그 말을 듣고 길꾼이 밟았던 첫 번째 길을 눈으로 찾았다. 이미 거기에는 길이 없었다. 풀이 도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소하는 우물 턱과 그 사이에 몸을 넣어 섰다. "여울은 아직 저 밑에 있습니다."

    "압니다." 길꾼이 물러서지 않고 냄새만 다시 맡았다. "사람은 관 일입니다. 저희는 물길입니다. 물길이 어디로 도는지 알면 은포의 우물 쉰넷이 전부 저희 값이 됩니다."

    길꾼은 서쪽으로 새로 낸 길 끝에 서서 흙 냄새를 맡았다. 소하도 그 옆에 서서 같은 냄새를 맡아봤다. 방금 열린 흙이라 아무 발자국도, 아무 냄새도 배지 않은 자리였다.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아서 나는, 텅 빈 냄새였다.

    길꾼은 그날 값을 부르지 않고 돌아갔다. 어느 자리에 얼마를 부를지 아직 안 정했다는 뜻이었고, 정하러 다시 온다는 뜻이기도 했다. 관 사람 누구도 그를 세우지 않았다. 그가 두 번째로 낸 길도 그가 지나간 뒤에는 풀 속으로 사라졌고, 소하는 그 자리에 돌 하나를 놓아 표를 해두었다.

    관 마당 쪽에서 은실 두 줄이 걸어왔다. 그 뒤로 관 사람 둘이 무명을 데리고 왔다. 옷깃은 여전히 왼쪽으로 여며 있었지만 흙투성이였다.

    은실 두 줄이 소하 앞에 멈춰 섰다. "저 사람한테서 두 가지를 얻었습니다." 그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저쪽에는 속성이 여덟이라는 것, 그리고 저쪽에는 문턱을 메운 전례가 없다는 것."

    소하는 무명 쪽으로 한 걸음 옮겨 서면서 그 두 번째를 손으로 짚어봤다. 문턱은 저쪽에도 있고 저쪽 사람들도 그 이름을 갖고 있다. 그런데 메운 적이 없다.

    "저쪽이 메우는 법을 모르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소하가 은실 두 줄을 마주 봤다. "메울 일이 여태 없었던 겁니다."

    은실 두 줄은 소매의 은실을 한 번 쓸어내렸다. 그것이 대답이었다. 얼굴에 웃음도 노여움도 없었고, 될 만한 것 하나를 셈에 새로 얹은 사람이 그렇듯 다음 자리를 이미 보고 있었다.

    "저쪽에서도 처음입니다." 그가 우물 턱을 내려다봤다. "이백 년 동안 이쪽만 세고 있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은실 두 줄은 무명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벌할 일이 없습니다." 그가 관 사람 둘에게 손등을 들어 보였다. "이 사람은 될 만한 걸 잰 것뿐입니다. 저와 다르지 않습니다."

    관 사람들이 무명을 놓아주었다. 무명은 옷깃을 다시 여미고 한쪽 무릎을 굽혀 앉았다. 오래 갇혀 있던 몸이 그 자세 하나로 금세 원래대로 돌아갔다.

    "갇혀 있는 동안 뭘 물었소." 무명이 소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쪽에 여덟이 있다는 것과, 문턱을 메운 적이 없다는 걸 물었습니다." 소하가 답했다.

    무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이라는 거요." 그가 흙 묻은 손을 털었다. "우리 쪽도 그렇소. 처음 있는 일 앞에서는 다들 뭘 재는 사람처럼 굴게 되오."

    해가 넘어갈 무렵, 소하는 손목에 감긴 어머니의 실매듭을 다시 만져봤다. 헝겊과 돌과 실, 세 가지 표가 몸 밖에 있었다. 마디는 하루 종일 조용했다.

    이름꾼이 열네 번째 매듭을 손끝으로 짚으며 소하 곁에 왔다. "여울을 꺼내려면 누군가는 세야 합니다." 그가 낮게 말했다. "저쪽은 재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움직입니다."

    소하는 그 말을 알고 있었다. 소하가 안 세면 소하는 안 넘는다. 그건 오늘 확인됐다. 하지만 소하가 안 세면 여울도 못 나온다는 것 역시 그만큼 분명해졌다.

    소하는 자기 몸 밖에 둔 표들을 다시 훑어봤다. 헝겊은 매듭 자리에, 돌은 마당 끝에, 실은 손목에 있었다. 전부 소하 대신 세고 있는 것들이었지만, 우물 밑으로는 아무것도 대신 내려보낼 수 없었다.

    소하가 그 자리에 서서 손을 어디에도 못 대고 있을 때, 어머니가 품에서 실타래를 도로 꺼냈다.

    어머니는 실 끝을 손가락에 감으며 소하를 마주 봤다. "내가 세마." 짧게 말하고는 실을 풀기 시작했다.

    소하는 그 말을 막으려 손을 뻗었지만 어머니는 이미 실을 우물 턱 쪽으로 늘이고 있었다. 매듭 하나를 새로 지을 자리를 찾는 손이었다. 소하는 그 손에서 실을 빼앗지 못한 채, 헐린 담 너머로 저녁 볕이 마당 젖은 자리마다 부서지며 내려앉는 것을, 그리고 그 볕 속에서 어머니의 손끝이 매듭을 하나씩 세어나가기 시작하는 것을 오래도록 바라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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