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는 순서
새벽빛이 마당 전체를 덮기도 전에, 소하는 우물 턱 앞에 서서 왼쪽 팔뚝 안쪽을 손끝으로 눌러 보고 있었다. 간밤부터 그 자리에서 울려 오던 셈은 아직 그대로였다 — 마흔하나.
소하는 그 수를 놓치지 않으려고 몸을 돌려 오른손으로 젖은 흙 위에 곧바로 그었다. 마흔, 하나. 이마를 넘어선 차가움은 그날 아침에도 그대로여서 더 잴 자리가 없었고, 소하는 그 위에 손바닥을 한 번 얹어 보고 손을 내렸다.
다 긋고 나서 몇 걸음 물러나 마당을 가로질러 걸어 보았다. 걸음을 세는 것도 오늘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였고, 스물여덟 걸음째에 발바닥이 젖은 자리에 닿았다. 어제는 스물여섯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물가에 걸린 밧줄을 손으로 훑어 매듭을 세었다. 스물을 지나 스물하나에서 젖은 자리가 끝났고, 어제보다 하나 늘어난 만큼 손끝에 걸리는 축축한 감촉도 하나 더 남아 있었다.
흙에 그은 자국을 다시 확인하려는데, 방금 지나온 왼손이 그 위를 스쳤고 획 두 개가 뭉개져 흙만 남아 있었다. 그 흙 위에 얹혀 있던 것은 먹이 아니라 물기였으니, 손이 눌러 뭉갠 것이지 다른 무엇이 빼앗아 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소하는 방금까지 분명했던 그 수가 머릿속에서도 함께 흐려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팔 안쪽에서는 계속 무언가가 울리고 있었는데, 그 울림을 받는 동안에는 방금 받은 셈이 이쪽에 남지를 않았다. 저쪽 것을 듣는 동안 이쪽 것이 빠져나가는 셈이었다. 소하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손가락으로 다시 마흔하나를 짚어 보려 했지만, 손끝에 남은 것은 방금 뭉갠 흙자국뿐이었다.
어머니가 부엌 앞에서 실매듭을 손끝으로 짚어 보이며 입술을 절반쯤 움직였다. 밥부터 먹으라는 뜻이었다. 소하는 어머니 손에 묶인 매듭을 오른손으로 다시 세어 보았는데, 세는 순간 그 수가 팔 안쪽으로 넘어가 버렸고 손을 놓았을 땐 몇 개였는지가 이미 없었다. 어머니는 캐묻지 않고 매듭을 도로 손목에 감았다.
그 자리에 있던 기록관이 소하의 손목을 잡아 우물 턱 돌 쪽으로 이끌었다. 돌에 새겨진 못자국 위로 손끝을 가져가자,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수가 그 홈을 따라 고스란히 되짚어졌다. 마흔하나.
기록관은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오른손으로 그 옆에 새 자국을 하나 더 내며 손끝으로 읽게 했다. 새긴 것은 안 지워집니다.
먹은 지워지고 못자국은 남는다는 것을 소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른손으로 쓰고 왼손으로 잊고 손끝으로 되찾는 하루가 오늘부터 매일 돌아온다는 것은 오늘 아침에야 몸으로 알았다. 소하는 그 홈 하나하나를 두 번씩 눌러 손끝에 익혀 두었다.
기록관은 걸음 수로 재던 울림의 거리를 더는 새기지 않았다. 팔 안쪽에 자리를 잡은 울림은 몇 걸음을 걸어도 멀어지지 않았으니, 거리로 잴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소하는 그 항목이 있던 자리를 손바닥으로 한 번 쓸어 보고 손을 뗐다.
대신 돌 맨 위 줄에 새 항목 하나가 새겨졌다. 줄어드는 수, 마흔하나.
늙은 짐꾼이 지팡이를 짚고 마당으로 들어선 것은 해가 담 위로 완전히 올라온 뒤였다. 지팡이 끝이 젖은 흙을 두 번 짧게, 한 번 길게 찍었고, 소하는 그 진동을 발바닥으로 받아 고개를 들었다.
짐꾼의 벌어진 입이 천천히 시장 쪽을 가리켰다. 소하는 그 입 모양을 하나하나 따라 읽었다. 우물 하나가, 밤새, 말랐소.
은포에서 우물이 마르는 것을 본 사람이 시장에 하나도 없었다고, 늙은 짐꾼은 지팡이를 두 번 더 굴려 전했다. 삼태기를 지고 나르던 사람들까지 지게를 내려놓고 그 우물 앞에 몰려섰고, 물지게꾼 몇은 다른 우물로 물을 옮겨 나르느라 같은 길을 세 바퀴째 돌고 있다고, 짐꾼은 지팡이 끝으로 둥근 테를 그려 보였다.
소하는 왼팔 안쪽을 다시 눌러 보았다. 방금까지 마흔하나였던 그 자리가 이번에는 마흔이라고 울리고 있었다.
우물이 마른 시각과 팔 안쪽의 수가 하나 줄어든 시각은 같았다. 한 가지 일이 두 군데에서 따로 나타난 것이었다.
소하는 우물 턱을 짚고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팔 안쪽의 수가 세는 것은 은포의 우물 가운데 아직 저쪽과 닿아 있는 것의 수였다. 쉰넷 가운데 마흔, 이미 열넷이 그 닿음을 잃은 뒤였다.
줄어드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소하의 왼팔은 저쪽에 선 채로 남아 있었고, 닿는 자리가 하나씩 없어질 때 그 팔이 어디에 서게 되는지는 아무 데도 적혀 있지 않았다. 소하는 오른손으로 왼쪽 팔뚝을 위에서 아래로 두 번 훑어 내렸다. 눌리는 모양은 눈에 보이는데 눌렸다는 느낌은 여전히 오지 않았다.
그때 우물 안쪽에서 마른 바람이 한 줄기 올라왔다. 흙냄새도 물냄새도 없이 코 안쪽을 긁고 지나가는, 아무 냄새도 없는 바람이었다. 소하는 우물 턱에 얼굴을 더 가까이 대고 그 바람을 한 번 더 맞아 보았다.

은실 두 줄이 그 바람 쪽으로 코를 벌름거리다가 뒤로 물러섰다. 무슨 냄새를 맡아도 늘 넷이 함께 따라오던 사람이었는데, 이번에는 아무것도 따라오지 않았다. 은실 두 줄은 그 자리에 선 채로 몇 번이고 다시 코를 들이켰고, 그때마다 어깨가 조금씩 내려갔다.
여울은 마당 한쪽에 앉아 밤사이 마른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훑고 있었다. 젖은 채로 엉겨 있던 것이 하루 만에 서로 들러붙어 판처럼 굳어 있었고, 소하가 그 위로 손바닥을 대자 마른 갈대가 부딪는 것 같은 잔떨림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여울의 눈이 담장 너머로 향했다. 여섯 해 전에는 없던 자리에 표 없는 사람들 몇이 서 있었고, 헐린 담 틈으로 관 마당이 그대로 들여다보였다. 여울이 자리에서 일어나 관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입술이 움직였다. 알려야 합니다.
소하는 두 걸음 만에 따라붙어 여울의 소매를 붙잡았다. 여울이 아는 관은 여섯 해 전의 관이었고, 그 관은 이제 이 마당에 없었다. 소하는 오른손으로 젖은 흙에 담이 헐린 자리를 그어 보였고, 그 선 바깥에 우물을 하나 찍었다.
여울이 그 그림 앞에 무릎을 굽히고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소하 쪽을 돌아보며 오른손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나가기 시작했다. 여섯 해 동안 세어 온 것을 놓기 전에 누군가에게 넘겨야 한다는 것을, 그 손이 먼저 알고 있었다.
소하는 그 손가락을 눈으로 따라가면서도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여울의 셈을 읽는 순간 그것이 고스란히 왼팔로 넘어간다는 것을, 오늘 아침 어머니의 매듭에서 이미 겪었기 때문이다.
여울의 손가락이 접혔다 펴지기를 멈추지 않았다. 접힐 때마다 손끝이 가늘게 떨렸고, 그 떨림은 여섯 해를 혼자 붙들고 있던 손의 것이었다. 소하는 그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손끝의 움직임을 하나씩 짚어 나갔다.
접힌 손가락 수를 따라가는 동안 발밑이 기울었다. 왼쪽과 오른쪽이 뒤바뀐 것처럼 느껴졌고 무릎이 꺾이려 해서, 소하는 우물 턱을 짚고 버텨야 했다. 흐려짐은 서른둘에서 멈췄고, 여울의 손가락도 그 자리에서 함께 멈췄다.
여울은 접었던 손을 펴서 소하의 손등 위에 가만히 얹었다. 세지 마십시오. 여울의 입술이 그렇게 움직였고, 이번에는 소하를 향한 말이었다. 소하는 그 손 밑에서 오른손을 빼내 젖은 흙에 두 글자를 적었다. 스물, 하나. 여울이 그 수를 읽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밧줄에 남은 젖은 매듭의 수였고, 여울이 여섯 해 만에 처음으로 받은 이쪽의 셈이었다.
이름꾼이 다가와 동생의 어깨를 감싸 앉혔다. 여울은 관 쪽을 한 번 더 돌아보았지만, 더는 걸음을 떼지 않았다. 이름꾼은 동생의 마른 머리카락 한 가닥을 손끝으로 넘겨 주었고, 그 손끝에도 판처럼 굳은 결이 걸려 한동안 멈췄다.
기록관이 그 옆에서 못을 쥐고 돌 앞에 앉았다. 소하는 새겨지는 홈을 손끝으로 따라 읽었다. 여섯째 미정, 관 기록에 죽은 것으로 적힘. 오늘 마당에 앉아 있음. 기록관의 못은 거기서 멈췄고, 그다음 줄은 비어 있었다.
소하가 오른손으로 흙에 물음을 적었다. 어느 쪽을 지웁니까. 기록관은 못을 내려놓고 소하의 손끝을 방금 새긴 두 줄 위에 나란히 얹어 놓았다. 지우는 일은 관이 하는 일 가운데 없다는 뜻이었다. 두 줄을 다 남겨 둔 채로 관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그 돌 위에 아직 새겨져 있지 않았다.
소하는 오후 늦게 무명을 찾아갔다. 무명은 담 아래 그늘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고 있었다. 소하가 오른손으로 마른 흙에 마흔하나와 마흔을 나란히 적고, 그 아래 왼팔을 그려 보였다.
무명이 그 두 수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쪽엔 건널 때마다 발밑 널이 한 장씩 걷히는 다리가 있었소. 건너는 사람이 몇이든 널은 줄기만 하고 다시 놓이지는 않소. 그 남은 널을 세는 사람이 따로 있었고, 그 수를 걷히는 수라 불렀소.
소하가 흙에 한 글자를 더 적었다. 늘어난 적은. 무명이 고개를 저었다. 한 번도 없었소.
말을 마친 뒤에도 무명의 손은 바닥 한 자리를 계속 문지르고 있었다. 전에는 마당에 고인 자리마다 저쪽 하늘이 얇게 비쳐 올라오곤 했는데, 그날은 아무리 문질러도 그 빛이 올라오지 않았다. 문지르던 손이 결국 마른 흙만 한 줌 쥐고 펴지지 않았다.
소하는 그 쥔 손을 한 번 내려다보고, 자기 왼팔을 그려 둔 자리 옆에 아무것도 더 적지 않고 일어섰다. 닿는 자리가 줄면 무명이 돌아갈 자리도 함께 줄어든다는 것을 흙에 적어 보일 필요는 없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사흘 뒤 적는 날을 위한 단이 차려지고 있었다. 놋그릇 하나, 마른 나뭇가지를 묶은 단 하나, 물을 채운 사발 하나가 순서대로 올라갔다.
은실 세 줄이 손짓으로 그 순서를 짚어 나갔다. 물사발은 맨 나중에 올리라는 손짓이었다. 기록관이 그 옆에서 지시가 떨어질 때마다 돌 위에 한 줄씩 새겼고, 소하는 그 진동을 손바닥으로 받으며 단 쪽을 보고 있었다.
소하는 뒤쪽 그늘에 앉아 그 단이 차려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놋그릇이 올라갈 때 무릎 위에 얹어 둔 오른손을 가만히 오므렸다 폈다. 마른 나뭇가지 단이 올라갈 때 한 번 더 오므렸다. 물사발이 올라가는 것을 볼 때는 손을 편 채로 두었다.
쉰넷을 다시 재려면 소하 하나로는 모자란다는 것을, 은실 세 줄은 그 단을 차리는 손짓만으로 마당 전체에 말하고 있었다. 사흘 뒤 저 단 앞에는 아홉 살 아이들이 설 것이었다.
기록관이 마당의 젖은 걸음 수와 밧줄의 젖은 매듭 수를 새로 새겼다. 스물여덟 걸음, 스물한 매듭. 소하는 그 두 줄을 손끝으로 확인하고, 그 아래 줄어드는 수가 아직 마흔인 것도 함께 확인했다.
저녁이 되어서야 기록관이 관에서 가져온 오래된 기록 뭉치를 우물가 돌 위에 펼쳐 놓았다. 소하는 그 종이에는 손을 대지 않고 두 걸음 물러나 서 있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던 기록관의 손이 멈추더니, 돌 아래쪽에 새 줄을 새기기 시작했다. 은포 우물 가운데 마름으로 적힌 것이 이미 열넷이었고, 그 첫 번째는 여섯 해 전 여울이 우물에 들어간 날 적혀 있었다.
소하는 손끝을 그 못자국 위로 가져갔다. 열넷과 마흔은 쉰넷 안에서 정확히 맞물렸다. 여울이 내려간 날부터 은포의 우물은 하나씩 저쪽에서 손을 놓고 있었고, 그것을 여섯 해 동안 아무도 세지 않았다.
마당 저편에서는 놋그릇에 물이 채워지고 있었다. 소하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 첫 번째 홈에서 마지막 홈까지 손바닥 전체로 덮어 눌렀다. 돌은 저녁 볕을 받아 아직 미지근했다.
그 손을 그대로 둔 채, 소하는 왼팔 안쪽에서 다음 하나가 언제 줄어드는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손바닥 아래의 열넷은 그동안 한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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