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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성이 없어서 벽을 지납니다
    24화 · 2026년 9월 17일

    반씩

    해가 뜨기 전 우물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하는 우물 턱에 무릎을 대고 앉아 밤새 이슬을 먹은 돌이끼를 손끝으로 눌러 보았다. 이끼는 물을 잔뜩 먹어 부풀어 있었고, 누르면 손톱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가 힘을 빼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밑에서 돌의 서늘함이 한 박자 늦게 올라왔다.

    소하는 그 늦음부터 셌다. 어제는 한 박자보다 조금 더였고 오늘 아침 것은 두 박자였다. 하룻밤 사이에 한 박자가 붙은 셈이었다.

    기록관은 이미 못을 쥐고 서 있었다. 못 끝이 돌을 파고드는 흔들림이 무릎을 타고 올라왔고, 소하는 그 흔들림의 수로 몇 글자를 새기는지 헤아렸다. 새벽 대조는 어제 기록관이 직접 새겨 둔 규정이었다.

    소하는 왼팔을 우물 안쪽 벽에 붙였다. 감각은 없었지만 셈이 오는 자리는 거기였다.

    해 뜨기 전 우물가. 소하가 우물 턱에 무릎을 대고 눈을 감은 채 오른손을 물가에 대고 있고, 왼팔은 힘없이 턱에 걸쳐져 있다. 뒤에서 늙은 기록관이 허리를 굽혀 못으로 돌에 자국을 새기고 있다. 우물 턱 돌에는 이슬 먹은 이끼가 끼었고 하늘은 아직 검푸르다.
    새벽 대조. 왼팔로 온 수와 못자국이 같았고, 그 수가 어제와도 같았다.

    기록관이 못을 거두자 소하는 왼팔로 받은 것과 새 자국을 나란히 놓았다. 자국에는 "서른일곱"이 있었고 왼팔로 온 것도 같았다. 어제 자국은 서른여덟이었으니, 어제 비어 있던 한 칸을 관이 오늘 메운 것이었다.

    소하는 손을 떼지 않고 두 자국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갔다. 소하 쪽 어제가 서른일곱이었으니 오늘은 서른여섯이어야 했다. 우물 하나가 마르면 하나가 줄었고, 여섯 해 동안 그 수는 한 번도 늘지 않았고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오늘 처음으로 멈춰 있었다.

    기록관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하는 앞머리를 놓치고 중간부터 받았다. "…줄지 않은 날은 이백 년 기록에 없습니다." 다음 말은 입술이 다물리는 바람에 끊겼다.

    그 뒤로 기록관은 한참을 서 있다가 못을 다시 꺼내 자국을 더 냈다. 소하가 짚어 보니 어제와 같다는 사실뿐이었고, 그것이 오늘 새로 적을 일의 전부였다.

    관 옷을 입은 사람 몇이 자국을 보러 와서 오래 서 있었고, 그들 가운데 누군가 돌아서면서 웃는 것을 소하는 보았다. 멈춘 것을 그친 것으로 읽는 얼굴이었다.

    소하는 그 얼굴들을 등지고 앉아 젖은 흙에 오른손으로 한 줄을 적었다. "오늘은 어디서 줄었습니까."

    글자를 다 쓰고 손끝을 떼자 닿았다는 느낌이 두 박자 뒤에 올라왔다. 아침에 잰 값 그대로였다. 아직은 그대로였다.

    은실 세 줄이 내린 명은 쉰넷 전부를 다시 짚고 매일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소하는 그 명대로 하되 순서를 자기가 정했다. 어제 손으로 갈라 둔 우물부터 짚기로 했다. 물은 그대로 있는데 짚으면 늦게 밀려 올라오던 자리들이었다.

    첫 우물 물가에 오른손을 대고 눈을 감았다. 좁아지는 것이 왔고, 손끝에 얹히기까지 두 박자였다. 소하는 그 수를 손가락으로 접어 두었다.

    옆 우물도 같았다. 소하는 손을 거두었다 다시 대기를 되풀이하며 물결이 올라오는 자리를 바꿔 짚어 보았다. 물가에서 짚으나 벽 쪽에서 짚으나 늦음은 같았다.

    다음 우물에서 소하는 왼손을 대 보았다. 좁아지는 것이 오긴 왔는데 손을 통과해 그대로 빠져나갔다. 붙잡을 자리가 없는 손이었다. 이마를 돌에 대 보았을 때도 좁아지는 것을 세기는 세었지만 세는 사이에 앞의 것을 놓쳤다.

    소하는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이끼가 마르면서 손끝에 실처럼 말려 붙어 있었고, 그것을 옷에 문질러 떼면서 소하는 오늘 알아내야 할 것을 다시 정했다. 줄지 않은 몫이 어디로 갔는지였다.

    여울이 마당 끝에서 걸어왔고 소하는 손짓으로 옆자리를 가리켰다. 여울의 입술이 움직였다. "같이 잽니다." 어제 젖은 흙에 적었던 것과 같은 말이었다.

    소하는 다음 우물 앞에 여울을 앉히고, 여울이 손을 물에 담그는 동안 오른손으로 짚었다. 좁아짐이 컸다. 어제까지 짚어 온 어느 우물보다 컸고, 손끝에 얹히는 데 세 박자가 걸렸다.

    여울이 손을 물에서 뺐다. 소하는 같은 우물을 다시 짚었다. 좁아짐이 아침 것으로 돌아왔다.

    소하는 여울에게 담그게 했다 빼게 했다 하면서 우물을 옮겨 가며 같은 것을 되풀이했다. 담그면 커졌고 빼면 돌아왔다. 어느 우물에서나 같았다.

    여울은 그것이 무엇을 재는 것인지 묻지 않았다. 묻는 대신 손을 담갔다 뺐다 하는 일을 소하가 시키는 대로 계속했고, 담글 때마다 얼굴에서 무거운 것이 조금씩 벗겨졌다. 혼자 세어 온 사람의 얼굴에서 그것이 벗겨지는 것을 소하는 옆에서 보고 있었다.

    소하는 짚은 우물을 손가락으로 꼽아 나갔다. 일곱에서 앞자리가 뭉개졌다. 열은 가던 셈이 오늘은 일곱에서 흩어졌다.

    소하는 우물 턱으로 손을 옮겨 기록관의 못자국을 처음부터 짚었다. 순서가 돌아오자 흩어진 앞자리도 따라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야 보였다. 좁아짐이 컸던 우물은 전부 여울이 손을 담그고 있던 동안 짚은 것이었다.

    저쪽은 오늘 우물에서 가져가지 않았다. 여울 쪽에서 가져갔다.

    여울이 반씩이라 믿고 흘려보낸 것은 건너갈 때 두 배가 되었고, 오늘은 그 두 배가 우물 하나 몫을 대신 채운 것이었다. 그래서 수가 멈췄다. 관은 그것을 그친 것으로 읽었다.

    소하는 알고 있었고 아직 아무에게도 쓰지 않았다.

    소하가 그날 짚던 우물 앞에서 손을 못 떼고 있을 때 그늘 밖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은실 두 줄이었다. 표를 잃은 뒤로 마당 그늘 끝에 발끝만 걸치고 있던 사람이 어제 처음 우물 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오늘은 그 걸음이 여기까지 왔다.

    은실 두 줄은 아무 말 없이 소하 옆에 앉았다. 옷자락에서 향이 끼쳤다. 늘 나던 향인데 오늘은 그 밑에 젖은 삼 냄새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은실 두 줄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하는 놓치지 않았다. "하나는 유이였습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입술이 다시 벌어졌다. "넷째로 내려간 아이입니다. 열둘이었습니다."

    소하는 짚던 손을 뗄 수 없어 그 말을 그대로 받으며 앉아 있었다. 우물에서 올라오는 좁아짐은 여전히 손끝에 걸려 있었고, 손을 떼면 그 자리에서 끊긴 채 다시 짚어야 했다.

    은실 두 줄은 우물 안쪽으로 눈을 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그 애가 내려가기 전에 저한테 물었습니다. 얼마나 치르느냐고."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반씩이라고 했습니다."

    소하는 그제야 손을 뗐다.

    "넷한테 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은실 두 줄의 입술은 거기서 더 느려지지도 빨라지지도 않았다. "그때는 그게 틀린 말인지 몰랐습니다. 지금도 다 알지는 못합니다."

    소하는 젖은 흙에 오른손으로 적었다. "여울도 그 말을 들었습니까." 은실 두 줄이 그 글자를 오래 내려다보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데 시간이 걸렸다.

    반씩이라는 말은 관이 먼저 아이들에게 건넨 것이었다. 여울은 그 말을 우물 밑에서 손가락으로 세어 왔다.

    은실 두 줄이 일어섰다. 몸을 돌리기 전에 입술이 한 번 더 움직였다. "저는 아끼지 않습니다. 아껴서 남는 게 아니니까." 그러고는 마당 쪽으로 걸어갔고, 향이 걸음보다 늦게 흩어졌다.

    소하는 그 등을 보다가 손끝을 다시 흙에 대었다. 닿았다는 느낌이 세 박자 뒤에 왔고, 아침보다 한 박자가 더 붙어 있었다.

    열두 번째 우물에서 소하는 손을 뗐다.

    명 받은 것의 절반도 못 간 자리였다. 소하는 손을 무릎에 얹고 손끝이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세 박자가 되었다면 다음은 넷이었고, 넷이 되면 흙에 글자를 쓰는 일이 짚는 일보다 느려질 것이었다.

    기록관이 다가왔다. 그림자가 발소리보다 먼저 돌 위로 왔다.

    기록관의 입술이 움직였다. "명은 쉰넷입니다."

    소하는 젖은 흙으로 손을 옮겨 적었다. "오늘은 열둘까지입니다."

    기록관은 그 글자를 오래 보았다. 다시 움직인 입술을 소하는 두 마디 걸러 한 마디씩 받았다. "…손으로 짚은 것은 증거로 삼지 않습니다." 규정은 어제와 같았다.

    소하는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증거로 안 삼으시면 오늘 수는 어디서 나옵니까."

    기록관의 손이 서판 위에서 한 번 멈췄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멈춘 자리가 소하의 눈에 들어왔고, 소하는 그 멈춤이 오늘 받은 어떤 말보다 길다는 것을 알았다.

    기록관은 답을 쓰지 않았다. 대신 우물 턱으로 가서 못을 꺼냈다. 소하가 그 자국을 짚었다. "오늘 열둘." 그 아래 한 줄이 더 있었다. "나머지는 적지 못함."

    관이 이백 년 동안 눈으로 세어 온 수가 오늘 그 자리에서 끊겼고, 그 뒤를 이어 쓸 손은 소하의 오른손뿐이었다. 그 손은 쓸 때마다 늦어졌다.

    소하는 그 자리에 앉아 자기가 적어 놓은 글자가 마르는 것을 손끝으로 지켜보았다. 마르면서 흙이 갈라졌고 먼저 쓴 글자의 아래턱이 조금 무너졌다.

    우물 반대편에서 옷깃을 왼쪽으로 여민 사람이 걸어왔다. 소하는 그 매무새를 보고 손끝의 셈을 잠깐 놓았다.

    무명은 소하 옆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입술이 크게 움직여 받기 쉬웠다. "물은 그대로인데 밟으면 꺼지는 자리를 오늘 짚었소."

    소하는 흙에 적었다. "그쪽에도 있습니까."

    "있소." 무명의 입술이 잠깐 다물렸다가 다시 열렸다. "그런데 이름이 없소. 세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름을 붙일 일도 없었던 게요." 그러고는 우물 쪽으로 턱을 조금 기울였다. "그쪽은 오늘 세는 사람이 생겨서 이름이 생긴 게고."

    소하는 그 말 아래에 물음을 적었다. "오늘 하나가 안 줄었습니다."

    무명이 그 글자를 읽고 한동안 마당 쪽을 보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입술이 짧게 움직였다. "안 걷힌 날은 없소."

    소하는 손끝을 글자 위에 얹은 채 기다렸다.

    "여기서 안 걷혔으면 다른 데서 걷힌 게요." 무명은 옷깃을 한 번 고쳐 여미었다. "우리 쪽 다리도 그렇소. 널이 오늘 한 장 그대로 있으면, 나는 그날 다른 널을 밟은 게요."

    소하는 그 말을 받아 적지 않았다. 아침부터 손끝으로 짚어 온 것이 그 한 줄이었다.

    무명이 일어서면서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보탰다. "걷히는 수가 늘어난 적은 한 번도 없소. 여섯 해를 세어 봤소." 그러고는 우물을 등지고 걸어갔다.

    여울이 돌아온 것은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

    얼굴에서 무거운 것이 아침보다 더 벗겨져 있었다. 하루치를 다 흘려보내고 난 얼굴이었고, 소하는 그 얼굴이 두 사람 몫을 다 치른 얼굴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울이 옆에 앉아 손가락으로 허공을 세기 시작했고, 소하는 그 손가락을 눈으로 좇다가 중간에서 놓쳤다.

    소하는 오른손을 젖은 흙으로 가져갔다. 손끝이 흙에 닿기 전부터 이미 무거웠다.

    소하는 길게 적었다. "반씩이 아닙니다. 흘려보내면 저쪽으로 두 배가 건너갑니다. 오늘 우물이 안 줄어든 것은 그 두 배가 우물 몫을 대신 채웠기 때문입니다."

    다 쓰고 손끝을 뗐다. 닿았다는 느낌이 네 박자 뒤에 올라왔다. 쓴 글자만큼 손이 늦어진 것이었고, 아침에 잰 값에서 두 박자가 붙어 있었다.

    여울은 그 글자 위에 손을 얹고 오래 있었다. 손가락이 글자를 따라 한 줄 한 줄 지나갔고 마지막 줄에서 멈췄다.

    여울의 입술이 움직였다. "여섯 해 동안 제가 두 배로 보내고 있었던 겁니까." 소하는 고개를 저었다. 여울이 흘려보내기 시작한 것은 어제였다.

    여울은 그 손짓을 보고도 얼굴을 바꾸지 않았다. 다시 입술이 움직였다. "언니한테는 적지 마십시오."

    소하가 다음을 쓰려고 손을 들었을 때 여울이 먼저 일어섰다.

    여울의 입술이 한 번 더 움직였고 이번 것은 또렷했다. "그러면 반씩을 그만두겠습니다." 잠깐 멈췄다가 다시 벌어졌다. "제가 다 보내겠습니다."

    소하는 그 뜻을 바로 알았다. 여울 혼자 다 보내면 소하는 한 수도 안 치르고, 건너가는 것은 여울 몫만큼의 두 배가 된다. 소하가 바로잡으려고 쓴 글자가 여울을 그쪽으로 한 걸음 더 밀어 놓았다.

    소하는 손을 흙으로 가져가 첫 획을 눌렀다. 닿았다는 느낌은 오지 않았다. 네 박자를 세었고, 다섯을 세었다.

    그 사이 여울은 두레박줄을 손에 감고 우물 턱 너머로 몸을 반쯤 기울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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