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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성이 없어서 벽을 지납니다
    25화 · 2026년 9월 17일

    다 보내는 사람

    소하의 손끝은 흙 위에서 다섯을 넘기고도 닿지 않았다. 그사이 두레박줄이 팽팽해지는 것이 발바닥으로 먼저 왔다. 줄이 우물 턱 돌을 긁으며 미끄러져 내려가는 떨림이었다.

    소하는 뜨려던 눈을 도로 감았다. 좁아지는 사이를 눈으로 보면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다는 것을, 몸이 눈꺼풀부터 먼저 알았다.

    손을 뻗어 두레박줄을 그대로 붙잡았다. 밤새 말라 뻣뻣해진 삼줄이 손바닥의 굳은살을 긁고 지나갔고, 풀린 올 하나가 살에 박혀 빠지지 않았다.

    여울의 무게가 줄을 타고 그대로 소하의 팔로 넘어왔다. 몸이 우물 쪽으로 끌려가면서 가슴과 돌 턱 사이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줄이 소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좁아짐은 소하가 고른 빠르기가 아니었다. 여울이 넘어가려는 무게만큼, 여울이 만든 속도로 좁아지고 있었다. 소하는 그 속도를 따라갈 뿐 스스로 다가서지 않았다.

    손끝에 무언가 얹히는 감각이 왔다. 저쪽의 서늘한 기운이 가슴과 돌 사이에 끼어들었고, 그 자리가 그대로 막혔다. 여울의 몸은 더 넘어가지 못했다.

    밤의 우물가. 소하가 젖은 돌바닥에 무릎을 대고 눈을 감은 채 두 손으로 두레박줄을 붙잡아 몸이 우물 턱 쪽으로 끌려가고 있고, 우물 턱 너머에서 여울이 줄에 매달려 몸을 기울이고 있다. 줄은 낡은 삼줄이라 올이 풀려 일어서 있다.
    손이 늦어 글자로는 못 막았다. 남은 것은 몸이었다.

    소하는 몸을 뒤로 젖히며 줄을 당겼다. 여울이 우물 턱 안쪽으로 끌려 올라오는 동안 삼줄이 당겨질 때마다 살을 긋는 것이 뒤늦게 느껴졌다.

    두 사람은 그대로 젖은 돌바닥에 주저앉았다. 소하는 손바닥을 펴 보았다. 굳은살 사이로 파고든 삼올이 아직 그 자리에 박혀 있었다.

    방금 짚은 사이가 몇 번째였는지 손가락으로 꼽으려 했다. 어제는 일곱에서 앞자리가 뭉개졌는데, 오늘은 손가락을 다 펴기도 전에 순서가 사라졌다.

    기록관이 다가와 못을 꺼냈다. 소하는 그 못자국을 처음부터 되짚었다. 하나, 둘, 셋 — 자국을 손끝으로 훑고서야 무너진 순서가 조금씩 돌아왔다. 되짚어 보니 흐려짐은 스물 가까이 되돌아가 있었다.

    여울이 우물 턱에 걸터앉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젖은 손끝이 떨렸고, 고개가 소하 쪽으로 돌아갔다. 입술이 움직였다. "제가," 말은 거기서 끊겼다. 다음 말은 고개가 마당 쪽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놓쳤다.

    소하는 손을 흙으로 가져가려다 멈췄다. 오른손 손끝에는 아직 아무 감각도 돌아오지 않았고, 지금 뭔가 적어도 닿는 데 몇 박자가 걸릴지 알 수 없었다.

    두레박줄은 우물 턱에 그대로 걸쳐진 채 마르고 있었다. 밤새 물기를 놓친 삼 가닥이 벌써 뻣뻣하게 일어서 있었다.

    우물가는 밤이 새는 동안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 채였다. 소하는 무릎을 세우고 앉아 어제와 같은 자리에 왼팔을 붙였다. 기록관이 못을 쥐고 그 옆에 섰다.

    왼팔로 온 수와 못자국이 같았다. "서른여덟." 어제보다 하나 늘어 있었다.

    소하는 그 자국 옆 젖은 흙에 한 획을 그어 손끝의 늦음부터 재었다. 밤을 지나는 동안 한 박자가 걷혀 네 박자로 돌아와 있었다. 걷히는 것은 밤뿐이었고, 낮에는 쓰는 만큼 도로 붙었다.

    소하는 그 수를 몇 번이고 손끝으로 다시 짚었다. 오랫동안 줄기만 하던 것이 오늘은 반대로 갔다. 어제 멈췄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일이었다.

    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자국 주위에 모여들었다. 누군가의 입술이 크게 움직였다. "닿음이 돌아왔다고 보는 모양입니다." 옆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 옆 사람의 입술도 움직였다. "내일도 이 자리에서 재면 되겠습니다." 잠깐 사이를 두고 다시 벌어졌다. "이러다 마흔도 넘겠습니다." 소하가 놓친 웃음의 뒷말이었다.

    기록관의 입술이 소하 쪽으로 향했다. "무엇이 늘었는지 압니까." 소하는 흙에 적었다. "모릅니다.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소하는 그 웃음을 등지고 앉아 마른 흙을 손끝으로 눌렀다. 뒤쪽 발소리의 떨림이 한동안 가벼운 간격으로 오갔다.

    소하는 그날 아침부터 우물을 순서대로 다시 짚었다. 오늘 새로 닿은 자리가 어디인지부터 찾아야 했다.

    골목 안쪽 마른 우물 앞에서 손끝이 멈췄다. 물이 마른 지 오래된 자리였고, 바닥은 갈라진 흙뿐이었다.

    소하는 그 마른 바닥에 무릎을 대고 손을 짚은 뒤 눈을 감았다. 좁아지는 것이 왔다. 물 한 방울 없는 자리에서 온 것이었다.

    소하는 몇 번이나 손을 떼었다 다시 대었다. 물이 없는데 닿음이 있었다. 물이 있는데 닿음이 없던 우물과는 거꾸로 된 자리였다.

    갈라진 흙바닥에서 마른 먼지가 손끝에 묻어났다.

    소하는 짚은 자리를 손가락으로 꼽으려다 멈췄다. 어제 무너진 순서가 아직 돌아와 있지 않았다. 기록관의 못자국으로 자리를 옮겨 처음부터 되짚어야 했고, 하나씩 짚어 나가서야 순서가 겨우 붙었다.

    순서를 되찾은 뒤에야 소하는 오늘 새로 닿은 자리를 다시 세었다. 마른 우물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다른 마른 우물에서도 같은 것이 왔다.

    소하는 여울을 불러 옆에 앉혔다. 마른 우물 앞에서 한 번 짚은 뒤 흙에 적었다. "조금 더 물러서 보십시오." 손끝을 떼자 닿았다는 느낌이 네 박자 뒤에 올라왔다. 여울의 입술이 움직였다. "어디까지 갑니까." 소하는 손끝으로 마당 끝을 가리켰다.

    여울이 마당 저편으로 물러설수록 손끝의 좁아짐이 흐려졌다. 거의 잡히지 않는 데까지 물러났을 때 소하는 손을 뗐다.

    여울을 다시 가까이 불렀다. 가까워질수록 좁아짐이 다시 짙어졌다. 마른 우물 자체보다 여울과의 거리가 훨씬 크게 움직이고 있었다.

    소하는 무릎을 꿇은 채로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저쪽에서 온 것은 우물이 늘어난 게 아니라 여울에게서 온 것이었다. 마른 우물은 그저 여울과 가까운 자리였을 뿐이었다.

    여울은 그것이 무엇을 재는 실험인지 묻지 않았다. 소하가 손짓하는 대로 물러났다 다가왔다를 되풀이했고, 그때마다 얼굴에서 표정이 조금씩 지워졌다. 그러다 한 번, 입술이 짧게 움직였다. "이만하면 됩니까."

    소하는 그 얼굴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손을 거두었다. 알아낸 것을 어디에 적어야 할지, 적으면 무슨 값을 치러야 할지는 아직 정하지 못한 채였다.

    해가 중천을 넘었을 때 은실 두 줄이 우물 쪽으로 걸어왔다. 걸음이 어제보다 빨랐다.

    은실 두 줄이 소하 옆에 앉았다. 아무 말 없이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입술을 뗐다.

    입술이 움직였다. 소하는 놓치지 않았다. "셋째는 단이였습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입술이 다시 벌어졌다. "열넷이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였다.

    은실 두 줄은 우물 쪽으로 눈을 주지 않은 채 한마디를 더 얹었다. "단이는 반씩이라는 말을 듣고 웃었습니다." 잠깐 뜸을 들이고 다시 열렸다. "제가 반을 치르면 나머지 반은 누가 치르느냐고 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벌어졌다. "저는 그 자리에서 답하지 못했고, 지금도 답을 못 합니다."

    변명도 사과도 없었다. 은실 두 줄은 그 이름 하나만 내려놓고 일어섰고, 걸음이 마당 쪽으로 멀어졌다.

    소하는 그 뒷모습이 마당 모퉁이를 돌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여울의 입술이 뒤늦게 움직였다. "저도 처음 듣습니다."

    은실 세 줄이 우물가에 나타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소매의 은실 세 줄이 저무는 빛에 옅게 빛났다.

    기록관이 오늘 새긴 자국을 들어 보였다. 은실 세 줄의 입술이 움직였다. "서른여덟이면 늘어난 겁니다." 잠깐 멈췄다가 다시 열렸다. "닿음이 돌아오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벌어졌다. "이백 년 만에 처음 보는 숫자입니다."

    기록관의 입술도 뒤이어 움직였다. "셈은 손끝의 것이고 기록은 관의 것입니다. 손으로 짚은 것은 증거로 삼지 않습니다." 규정은 어제와 같은 말이었다. 그러고는 한마디를 더 얹었다. "다만 이 손끝을 규정에 넣을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기록관의 손이 서판 위에서 잠깐 멈췄다. 입술이 짧게 움직였다. "오늘 것도 규정 밖의 셈입니다." 그 멈춤을 소하는 놓치지 않고 보았다.

    은실 세 줄이 다시 입술을 열었다. "내일 여울을 우물 밑으로 내려보냅니다." 잠깐 멈췄다가 다시 열렸다. "재는 것을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소하는 그 말을 두 번 읽어야 했다.

    "재적된 자는 처음부터 다시 잽니다." 기록관이 그 말을 받아 못으로 새겼다. 두 번째 미정으로 적힌 이름이 오늘 그 자리에서 명분이 되고 있었다.

    소하는 흙에 급히 적었다. "늘어난 수는 우물에서 온 게 아닙니다. 여울에게서 온 겁니다." 손끝을 떼자 닿았다는 느낌이 다섯 박자 뒤에 올라왔다.

    은실 세 줄은 그 글자를 오래 보지 않고 몸을 돌렸다. 입술이 짧게 움직였다. "명분은 이미 있습니다." 여울은 오늘 다시 적힌 두 번째 미정이었다.

    소하는 다섯 박자가 지난 자리에 손끝을 얹은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글자는 마르기 시작했고, 아무도 그 위로 다시 눈을 주지 않았다.

    밤이 되기 전, 이름꾼이 우물가로 왔다. 어깨에 띠가 없는 것도, 앉는 소리가 나지 않는 것도 여전했다. 이름꾼의 입술이 먼저 움직였다. "안색이 왜 그렇습니까." 소하는 대답 대신 손을 흙으로 가져갔다.

    여울의 말이 아직 손끝에 남아 있었다. "언니한테는 적지 마십시오."

    적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첫 글자를 눌렀다. 손끝이 아직 흙에 닿아 있는데 다음 획이 눌렸다. 앞 글자의 마지막 느낌이 돌아오기도 전에 다음 글자가 그 위에 얹혔다.

    두 글자가 한 자리에 겹쳤다. 소하는 손을 떼지 않고 다음 글자를 이어 눌렀고, 겹친 자리 위로 세 번째 획이 또 얹혔다.

    팔이 떨리기 시작했다. 손끝의 무게가 갈수록 손목으로, 팔꿈치로 옮겨 갔고 소하는 그 자리를 흙에서 떼지 못한 채 버텼다.

    이름꾼이 그 흙바닥을 들여다보았다. 획들이 서로를 밟고 있어 어디까지가 한 글자인지 갈라지지 않았다. 입술이 움직였다. "이게 무슨 글자입니까."

    소하는 손을 완전히 떼고 기다렸다. 닿았다는 느낌이 오지 않은 채로 하나, 둘, 셋, 넷, 다섯을 넘겼다. 여섯에서야 늦게 올라왔다.

    다섯을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짚는 손보다 쓰는 손이 이제 더 느렸다.

    이름꾼은 겹친 글자를 몇 번이고 손끝으로 짚어가며 읽었다. 입술이 조금씩 움직이다 멈췄다. "여울이," 다음은 이름꾼 자신이 뒷말을 삼켰다.

    소하는 겹친 자리 옆에 새 흙을 골라 다시 적었다. "우물 턱에서 몸을 기울였습니다. 제가 막았습니다." 손끝을 떼자 이번에도 여섯을 넘기고서야 닿았다.

    이름꾼의 얼굴에서 핏기가 걷혔다. 손이 소하의 어깨를 짚었다가 곧 거두어졌다.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됐습니다." 그러고는 더 묻지 않았다.

    소하는 손바닥을 폈다. 밤새 마른 두레박줄에 쓸린 자리마다 붉은 줄이 나 있었고, 흙이 말라붙은 획들 옆에서 그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름꾼은 몸을 돌려 여울을 찾았다. 여울은 우물 반대편, 마당 가장자리에 앉아 자기 손끝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름꾼의 입술이 크게 벌어졌다. "여울아." 소하는 그 이름을 입 모양으로만 읽었다.

    여울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몸도 그대로였다.

    이름꾼이 다시 불렀다. "여울아." 두 번째도 같았다. 여울의 어깨는 굳지 않았고, 걸음도 멈추지 않았다.

    세 번째로 부를 때 이름꾼은 손까지 뻗었다. 붙잡히는 것은 이름이 걸린 다음에 오는 일이었는데, 그 앞의 것부터 오지 않고 있었다.

    이름꾼의 뻗었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소하를 돌아보는 얼굴 위로 방금까지 없던 것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손을 거두는 대신, 이름꾼은 자기 손바닥을 오래도록 내려다보았다.

    한참 만에 고개를 든 이름꾼의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동생이 정말 미정입니까." 소하는 그 물음에 아직 답을 적지 못했다.

    소하는 손을 다시 흙으로 가져갔다. 뻣뻣하게 마른 삼줄이 저녁 바람에 우물 턱을 긁는 떨림이 손바닥 밑으로 올라오고 있었고, 소하는 그 간격을 세면서 여섯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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