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속성이 없어서 벽을 지납니다
    26화 · 2026년 9월 17일

    내려보내는 날

    우물가는 오늘 유난히 이른 사람들로 붐볐다. 관 옷을 입은 이들이 아직 어두운 마당에서 밧줄과 도르래를 손보고 있었다. 소하는 그 낯선 발소리들을 먼저 손끝으로 느꼈다.

    스무하루째 새벽이었다. 소하는 우물가에 무릎을 꿇고 왼팔을 마른 흙에 붙였다. 오른손 끝을 흙에서 떼어 늦음부터 먼저 재는 것이 매일 첫 순서였다. 손끝을 뗀 자리에서 닿았다는 느낌이 다섯을 세고서야 올라왔다. 밤사이 여섯에서 한 박자가 걷혀 있었다.

    그런데 왼팔에는 아직 아무 수도 오지 않았다. 대신 기록관이 먼저 몸을 굽히고 있었다. 어제 새긴 자국 옆에 벌써 새 못자국이 파여 있었고, 기록관의 손은 이미 못을 내려놓은 뒤였다.

    늘 왼팔이 먼저였다. 수가 오고 나서야 기록관이 그것을 옮겨 새겼다. 오늘은 자국이 먼저 나 있었고, 소하의 팔에는 그 뒤로도 한참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순서가 뒤집힌 것은 스무하루 만에 처음이었다.

    소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손끝의 온기가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 이미 정해진 채로 오늘이 시작되고 있었다.

    기록관의 입술이 소하 쪽으로 향했다. "서른아홉입니다." 소하는 그 자국을 손끝으로 짚어 보았다. 왼팔에 남아 있는 수는 여전히 서른여덟이었다. 하나가 비어 있었다.

    소하는 눈을 감고 그 못자국 위에 손끝을 얹었다. 자국은 멈춰 있었다. 좁아지는 것이 없었다. 새겨진 것은 이미 굳어 다시 좁혀질 자리가 아니었다. 손을 떼고서야 늦음이 더 자란 것을 알았다. 여섯을 넘기고서야 닿았다는 느낌이 올라왔다. 멈춘 것을 짚은 값이었다.

    소하는 몸을 일으켜 우물 턱으로 다가갔다. 두레박 대신 걸린 굵은 밧줄이 도르래에 감겨 아직 삐걱이며 돌고 있었다. 오늘을 위해 누군가 손을 보고 있었고, 밧줄과 나무틀 사이 그 좁은 틈만이 아직 움직이고 있었다.

    소하는 그 틈에 손가락을 끼워 넣고 다시 눈을 감았다. 도르래를 조이던 손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돌렸고, 감겨 오는 밧줄과 소하의 손등 사이가 저 혼자 좁아져 왔다. 빠르기를 정하는 것은 소하가 아니었다. 오늘 우물에 남은 수가 손끝에 얹혔다. 서른여덟이었다. 어제와 같은 수였다.

    기록관의 못자국과 하나가 어긋나 있었다. 늘지 않은 수였다. 소하는 흙에 짧게 눌러 적었다. "서른여덟입니다. 오늘 것은 아직 안 늘었습니다." 손끝을 떼고 일곱을 셀 때까지 기다렸다. 늦음은 그새 하나가 더 자라 있었다.

    은실 세 줄이 우물가에 나타난 것은 해가 채 오르기도 전이었다. 소매의 은실 세 줄이 이른 빛에 옅게 빛났다. 걸음에는 어제보다 더 소리가 없었다.

    관 옷을 입은 이들 몇이 뒤따라와 우물 턱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섰다.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기록관이 오늘 자국을 내밀었다. 은실 세 줄의 입술이 움직였다. "서른아홉이면 하루 더 늘었다는 뜻입니다." 잠깐 사이를 두고 다시 열렸다. "오늘 안으로 여울을 내려보냅니다."

    소하는 흙에 적은 것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서른여덟입니다. 오늘 것은 아직 안 늘었습니다." 은실 세 줄은 그 글자를 오래 보지 않았다.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자국이 먼저 났습니다. 손끝은 그다음입니다."

    기록관의 손이 서판 위에서 멈췄다. 입술이 움직였다. "자국은 오늘 내려보낼 것을 셈에 넣어 새긴 겁니다. 명을 받아 제 손으로 그렇게 적었습니다." 잠깐 멈췄다가 다시 열렸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을 먼저 적었습니다." 은실 세 줄 쪽으로는 눈을 주지 않았다.

    "손으로 짚은 것은 증거로 삼지 않습니다." 기록관은 그 말을 다시 옮겼다. 그러고는 못을 고쳐 쥐었다. "그런데 오늘 자국은 손끝보다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셈에 넣었으니까요."

    기록관이 우물 턱 돌 위에 새 줄을 새겼다. "오늘부로 이 손끝이 잰 것을 증거로 삼는다." 못끝이 돌을 파고드는 소리가 서판에 붓이 닿는 소리보다 오래 남았다. 지워질 자리가 아니었다.

    은실 세 줄의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그 문구는 나중에 다투셔도 됩니다." 걸음을 우물 쪽으로 옮겼다. "명은 이미 내렸습니다. 오늘 안으로 내려보냅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름꾼이 우물가로 온 것은 그 직후였다. 어깨에 띠가 없는 것도, 앉고 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 것도 여전했다. 걸음이 평소보다 느렸다. 입술이 먼저 움직였다. "답을 받아야겠습니다."

    소하는 흙 대신 우물 턱 나무틀로 손을 옮겼다. 거기 헐겁게 박혀 있던 낡은 못을 뽑아 쥐었다. 날이 이미 휘어 있었다.

    나무틀은 오래되어 결이 거칠었다. 못끝이 지날 때마다 마른 나무 부스러기가 손등 위로 떨어졌다.

    나무에 처음 획을 그었다. 못이 결을 타고 옆으로 미끄러졌고, 자국은 얕고 흐릿하게 남았다. 손을 뗀 채 기다려도 닿았다는 느낌이 오지 않았다.

    이름꾼이 그 흐릿한 자국을 들여다보았다. 입술이 움직였다. "무엇을 쓰려던 겁니까." 소하는 옆자리를 다시 골랐지만 휘어진 못은 또 미끄러졌다. 그다음 자국도 알아볼 수 없었다.

    기록관이 다가와 자기 못을 내밀었다. 방금 돌에 새 줄을 새긴 그 못이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이건 관의 것입니다. 미정이 쥐는 건 규정에 없습니다." 그러고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다만 오늘부로 손끝을 증거로 삼기로 했으니, 이 못도 그 뒤를 따르게 하겠습니다."

    소하는 그 못을 받아 쥐었다. 손잡이 끝에서 옅은 녹내가 올라왔다. 흙에서도 삼줄에서도 맡아본 적 없는 냄새였다. 손바닥에 그 서늘한 무게가 오래 남았다.

    나무 위에 다시 눌러 새겼다. 이번에는 자국이 깊고 또렷하게 파였다. 손을 떼고 기다리자 일곱을 세고서야 닿음이 올라왔다. 늦음은 더 자랐지만 자국은 분명했다.

    소하가 새긴 것은 짧았다. "미정입니다." 이름꾼은 그 글자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손끝으로 자국의 깊이를 다시 확인하듯 짚었다.

    이름꾼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건 답이 안 됩니다." 잠깐 멈췄다가 다시 열렸다. "육 년 전에도 그 애는 미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는 당신을 불러 세웠습니다."

    소하는 그 말에 손을 멈췄다. 그날 자신이 불려 걸렸던 것이 먼저 떠올랐다. 새 자리를 골라 눌러 새겼다. "저를 불러 보십시오."

    이름꾼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하." 어깨가 먼저 굳었다. 그 굳음이 등을 타고 내려가려다 허리께에서 풀렸다.

    손끝까지는 오지 않았다. 그날처럼 다리가 얼어붙지도, 걸음이 멈추지도 않았다. 소하는 풀린 어깨를 몇 번 움직여 보고서야 그것이 다 풀렸다는 것을 알았다.

    이름꾼의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여울을 부를 때와는 다릅니다." 잠깐 사이를 두고 다시 열렸다. "여울에게는 아예 오지 않았는데, 당신에게는 어깨까지 왔습니다."

    소하는 새 자리에 짧게 새겼다. "여울은 저보다 오래 저쪽에 서 있었습니다." 이름꾼은 그 글자에서 손끝을 떼지 않았다.

    이름꾼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럼 당신도," 말은 거기서 멈췄다. 다시 열렸다. "몇 번을 더 하시면, 저도 당신을 못 부르게 되는 겁니까." 소하는 손을 흙으로도 나무로도 가져가지 않았다.

    답을 적으면 그만큼 값을 치러야 했다. 소하는 손을 거두었다. 오늘 그 손으로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이름꾼은 한참을 그대로 서 있다가 은실 세 줄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입술이 움직였다. "오늘 밧줄이 나가는 길이는 제가 재겠습니다." 은실 세 줄의 대답은 짧았다. "그리 하십시오."

    이름꾼은 관 사람에게서 매듭 진 줄자를 받아 쥐고 우물 턱 옆에 섰다. 손끝에는 아직 방금 읽은 글자가 남아 있는 것처럼 힘이 들어가 있었다. 부를 수 없는 이름 대신 잴 수 있는 길이를 골라 쥔 손이었다.

    해가 오르자 관 사람들이 두레박을 걷고 굵은 밧줄을 새로 걸었다. 여울이 우물 턱 앞에 섰다. 발밑에는 어제 마른 두레박줄이 아직 걸쳐진 채였다.

    소하는 밧줄 쪽으로 다가섰다. 자기 허리에 그 줄을 대신 감으려 손을 뻗었다.

    관 사람이 그 손을 막았다. 입술이 움직였다. "이 줄은 저 애 몫입니다." 은실 세 줄도 고개를 돌렸다. "손끝이 잰 것은 저 애에게서 옵니다. 다른 사람을 내려보내면 아무것도 안 잡힙니다."

    소하는 뻗었던 손을 거두지 못했다. 밧줄을 놓친 손끝이 허공에서 잠깐 머물렀다. 관 사람이 그 팔을 완전히 밀어낸 뒤에야 소하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대신 서겠다고 나선 것이 막힌 것은 처음이었다.

    이른 아침 관 마당의 돌 우물가. 해진 삼베옷을 입은 소하가 몸을 낮춘 채 오른팔을 우물 턱에 감긴 굵은 밧줄 쪽으로 뻗고 있고, 검은 관복을 입은 관 사람이 팔을 뻗어 그 손을 막아서고 있다. 우물 저편에서는 여울의 허리에 밧줄이 감기는 중이고, 뒤쪽에 선 관 사람 셋은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보고 있다.
    대신 서겠다고 나선 것이 막힌 것은 처음이었다.

    여울의 입술이 소하 쪽으로 움직였다. "괜찮습니다." 그 한마디뿐이었다.

    소하는 그 말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되물을 말이 없었다.

    소하는 새 못을 쥐고 나무틀 위에 짧게 새겼다. "제가 위에 있습니다." 여울은 그 자국을 손끝으로 한 번 쓸어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았다.

    밧줄이 여울의 허리에 감겼다. 관 사람들이 차례로 자리를 잡았다. 이름꾼이 밧줄 옆에 서서 매듭마다 손끝으로 길이를 세기 시작했다. 소하는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밧줄이 우물 턱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여울의 몸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소하는 오른손을 우물 턱 돌에 얹었다. 눈은 감지 않았다. 오늘은 좁힐 것이 없었다. 그저 듣는 자리였다.

    관 사람들은 밧줄이 풀려나가는 소리 앞에서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침묵만은 소하도 등으로 느낄 수 있었다.

    돌을 타고 오는 떨림이 손바닥으로 올라왔다. 밧줄이 조금씩 풀려나가는 진동이었다. 일정한 박자였고,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여울의 머리가 우물 턱 아래로 사라졌다. 밧줄을 쥔 손끝에서 떨림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이름꾼의 손끝도 매듭을 차례로 넘기며 같은 박자로 움직였다. 두 사람의 셈이 나란히 흘러가고 있었다.

    한참을 내려가던 떨림이 문득 멈췄다. 소하는 손끝에 힘을 주고 기다렸다. 밧줄은 더 풀리지 않았고, 대신 아주 짧게, 아래에서 위로 당기는 힘이 올라왔다.

    이름꾼이 매듭 세던 손을 멈추고 소하 쪽을 보았다. 입술이 움직였다. "무슨 일입니까." 소하는 대답 대신 흐려진 순서부터 되짚었다. 오늘 새긴 못자국을 손끝으로 하나씩 짚어 나가자 스물에 머물러 있던 것이 열둘까지 맑게 돌아왔다.

    떨림은 다시 오지 않았다. 소하는 밧줄을 쥔 손을 놓지 않았다. 방금 온 그 한 번의 당김이 여울의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 하나만은 손끝으로 분명히 셀 수 있었다. 아래에서는 아직 아무것도 다시 올라오지 않고 있었고, 소하는 그 아무것도 아닌 자리에 손을 얹은 채 다음 것을 기다렸다.

    0

    댓글 0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구글로 로그인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줄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