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친 한 칸
밧줄의 떨림이 다시 온 것은 한참 뒤였다. 풀려나가는 박자는 아까와 다르지 않았다. 소하는 그 박자에서 더는 낯선 것을 찾지 않고 손끝의 힘만 풀었다.
밧줄은 그대로 오래 풀려나갔다. 우물 턱 돌을 짚은 손바닥으로 흐름이 조금씩 잦아드는 것이 전해졌다. 흐름이 마침내 멎었을 때 남은 무게는 당겨지지도 처지지도 않았다. 바닥에 닿았다는 뜻이었다.
이름꾼의 입술이 움직였다. "닿았습니다." 소하는 그 말을 짚고서야 오른손을 우물 턱에서 내려놓았다.
한참 뒤 밧줄이 빈 채로 도로 올라왔다. 아래에서 여울이 제 손으로 풀어 낸 것이었다. 관 사람들은 그것을 도르래에 감아 두고 하나둘 자리를 떴다. 여섯 해 전에도 밧줄은 이렇게 혼자 올라왔을 것이었다.
소하는 웅크린 채 손바닥의 온기가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날 저녁까지 아래에서는 아무 셈도 올라오지 않았다. 소하는 그것을 나쁜 신호로 읽지 않았다. 처음 내려간 날은 늘 그랬다.
어머니는 그날 마당에 나오지 않았다. 짐꾼도 어귀에서 걸음을 멈추고 더 다가오지 않았다. 괜히 가까이 서지 않는 것이 그가 오래전에 배운 처신이었다.
소하는 관 사람들의 발소리가 멀어진 뒤에도 우물 턱을 짚은 채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
스무이틀째 새벽, 소하는 여느 때처럼 우물가에 무릎을 꿇었다. 오른손 끝을 흙에서 떼어 늦음부터 재는 것이 매일 첫 순서였다. 밤사이 한 박자가 걷혀 있었다. 여섯을 세고서야 닿음이 올라왔다.
왼팔에 수가 온 것은 그다음이었다. 서른아홉이었다. 소하는 손가락을 접어 두 번 더 세었다. 두 번 다 같은 자리에서 멎었다.
기록관은 어제 새긴 자국 앞에 서 있었다. 거기에도 서른아홉이 파여 있었다. 어제 아침 그 자국은 아직 오지 않은 하강을 미리 넣어 새긴 것이었고, 오늘 소하의 팔이 낸 수가 거기에 그대로 가서 앉았다.
은실 세 줄의 입술이 움직였다. "관이 하루 먼저 셌습니다." 기록관은 못을 쥔 채 아무것도 새기지 않았다.
소하는 그 자국 옆에 손끝을 얹었다. 어제 저 수가 틀렸다고 센 것도 이 손이었다. 오늘 맞다고 세는 것도 같은 손이었다. 손은 어제와 오늘 사이에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는데 자국은 하루 만에 옳은 것이 되어 있었다.
이름꾼이 다가온 것은 그때였다. 밤새 마당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눈 밑이 그늘져 있었고, 손에는 어제 걷어 올린 밧줄에서 풀어 낸 매듭 진 줄자가 감겨 있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서른한 매듭입니다."
소하는 그 줄자를 손끝으로 짚어 보았다. 밤이슬을 먹은 삼올이 부풀어 매듭마다 도톰했다. 누르면 손끝이 쑥 들어갔다가, 떼고 나면 눌린 자리가 천천히 되살아나 올라왔다.
매듭을 처음부터 짚어 세었다. 서른하나였다. 어제 내려가는 내내 손바닥으로 헤아려 둔 수는 서른이었다. 하나가 비어 있었다.
다시 세어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수가 나왔다. 이름꾼의 매듭도, 소하의 셈도 서로 물러나지 않았다.
소하는 줄자를 무릎 위에 펴 놓고 처음부터 도로 짚었다. 이번에는 매듭마다 손끝을 오래 얹어 두었다. 부푼 삼올이 눌렸다가 되살아나는 사이가 매듭마다 조금씩 달랐고, 어디서 어긋나는지는 그 차이로도 잡히지 않았다.

어제 그 밧줄을 짚고 있던 것은 손바닥이었다. 오늘 짚는 것은 손끝이었다. 같은 줄인데 세는 자리가 달랐고, 소하는 어느 쪽을 더 믿어야 하는지 스스로도 정하지 못했다.
기록관이 두 수를 받아 적으려다 못을 고쳐 쥐었다. 서판 위에서 손이 멈춰 있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둘 다 오늘 새로 잰 것입니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 저는 아직 정할 수 없습니다."
은실 세 줄이 걸음을 멈췄다. 입술이 움직였다. "매듭이 맞을 겁니다. 손으로 지나가는 것을 하나씩 짚은 쪽이니까요." 소하 쪽으로는 눈을 주지 않았다.
이름꾼은 줄자를 손에서 놓지 않은 채 입술을 뗐다. "제가 잰 것이 틀렸다는 겁니까." 날은 없었지만 손끝은 매듭 하나를 몇 번이고 눌러 확인하고 있었다.
소하는 고개를 저었다. 자기 셈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말은 아직 새기지 않았다. 어느 쪽이 맞는지 몸으로 내려가 확인할 길은 이미 막혀 있었다.
소하는 왼팔에 손을 얹었다. 어제 헤아린 서른을 그대로 그쪽으로 밀어 넣었다.
보낸 것은 늘 한 박자 늦게라도 무언가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소하는 팔을 무릎 위에 얹은 채 오래 기다렸다. 볕이 마당을 반쯤 건너갈 동안 왼팔은 비어 있었다.
기다림이 길어지자 손끝에 남은 것은 보냈다는 사실뿐이었다. 무엇을 보냈는지도, 어디에 닿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값만 나가고 답은 오지 않았다.
소하는 그것을 접었다. 왼팔은 자리에게 묻는 길이었다. 사람이 쥐고 있는 수를 가르려면 다른 데를 짚어야 했다.
소하는 우물 턱에서 두 걸음 물러나 왼손을 폈다. 새끼손가락 마지막 마디를 이렇게 오래 두고 쓰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눈을 감았다. 이쪽에서 좁힐 자리는 없었다. 저쪽에서 저절로 좁아지는 사이를 찾는 일이었고, 그 크기는 소하가 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디 끝에 처음 닿은 것은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좁혀지는 것이 없어 손끝이 허공을 그대로 지났다. 첫 번은 그렇게 놓쳤다.
다시 뻗은 마디 끝이 무언가에 닿았다. 사이가 스스로 좁아지고 있었다. 소하는 그 자리에 손끝을 얹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 온 것은 박동이었다. 셈보다 먼저 왔고, 일정한 사이를 두고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여울의 손끝에서 오던 것과는 결이 달랐다.
소하는 그 박동을 오래 붙잡고 있다가 문득 알아챘다. 처음 만지는 결이 아니었다. 왼팔로 울림이 오던 자리에서 나던 것과 같은 결이었다.
여섯 해 동안 저 아래에서 한 사람을 놓지 않고 있던 손이었다. 그 손이 이미 붙잡은 것 위에 무엇을 더 얹으려는 것인지는, 손끝으로도 아직 잡히지 않았다.
마디를 타고 온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지금 그 자리에 닿아 있는 것의 깊이가 손끝에 짧게 얹혔다. 매듭으로 치면 서른하나였다.
소하는 그제야 자기 셈에서 어디가 빈지를 알았다. 어제 당김이 올라온 그 순간, 손바닥이 잠깐 놓친 자리가 있었다. 이름꾼이 틀린 것이 아니라 소하가 그 한 칸을 놓친 것이었다.
마디에서 손을 떼자 흐려짐이 먼저 왔다. 왼쪽과 오른쪽이 잠깐 뒤바뀐 것처럼 느껴졌고 무릎이 꺾였다. 어제 열둘까지 맑아져 있던 것이 다시 스물 가까이로 벌어졌다.
눈을 뜨고도 우물 턱이 어느 쪽인지 잠깐 가늠이 안 됐다. 소하는 손끝으로 돌의 결을 더듬어 방향을 되찾았다.
기록관이 다가와 어깨를 짚어 자리를 잡아 주었다. 소하는 그 손을 짚고 앉은 뒤 관의 못을 다시 쥐었다.
나무틀에 짧게 새겼다. "제가 하나를 놓쳤습니다. 서른하나가 맞습니다." 손을 떼고 기다리니 일곱을 세고서야 닿음이 올라왔다.
이름꾼은 그 자국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입술은 다물린 채였다. 줄자를 쥔 손에서 힘이 조금 풀려나가는 것이 보였다.
은실 세 줄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럼 이제부터는 매듭이 먼저입니까." 소하는 고개를 저었다. 새 자리를 골라 짧게 새겼다. "둘 다 잽니다. 오늘은 제가 놓쳤습니다."
은실 세 줄은 그 자국을 오래 보지 않았다. 걸음을 우물 쪽으로 옮겼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기록관의 입술이 마지막으로 움직였다. "그럼 오늘 깊이는 어느 수로 새길까요." 소하는 못 끝으로 답했다. "서른하나입니다. 마디가 잰 것이 그렇습니다."
기록관은 그 수를 우물 턱 돌에 새겼다. 그 옆에 다른 줄을 더 새기려다 멈췄다. 무엇이 어제 그 당김을 보냈는지는 아직 새길 말이 없었다.
마당에 남은 것은 소하와 이름꾼, 그리고 볕에 마르기 시작한 줄자뿐이었다. 삼올이 조여들어 이제는 매듭을 눌러도 손끝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담 밖에 무명이 서 있었다.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소하는 담까지 걸어가 못 끝으로 담 밑 흙을 긁었다. "아래에 있는 손이 오늘 움직였습니다."
무명은 그 자국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입술이 움직였다. "그쪽에서는 문턱을 짚은 손을 세오. 하나면 재는 것이고, 둘이면 옮기는 것이오." 잠깐 사이를 두고 다시 열렸다. "재는 일과 옮기는 일은 손이 하는 일이 다르오."
소하는 담벼락에 손끝을 붙인 채 그 말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여섯 해 동안 아래에 있던 손은 하나였다. 오늘 마디에 온 박동도 하나였다. 그러면 오늘 것은 아직 재는 쪽이었다.
무명은 더 말하지 않고 담을 따라 걸어갔다. 그가 밟은 자리마다 마른 흙이 폭 꺼졌다가 도로 올라오는 것이 소하의 발바닥으로 전해졌다.
해가 낮게 걸릴 무렵 이름꾼이 다시 다가왔다. 손에는 여전히 줄자가 있었지만 오늘은 그것을 세지 않고 있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어제 물었던 것을 오늘 다시 묻겠습니다." 잠깐 사이를 두고 다시 움직였다. "몇 번을 더 하시면, 저도 당신을 못 부르게 되는 겁니까."
소하는 이번에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답을 적으면 그만큼 값을 치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미룰 수는 없었다.
먼저 새긴 것은 짧았다. "모릅니다."
그다음에 새긴 것은 수였다. "어림하면 세 번입니다." 어떻게 어림했는지는 새기지 않았다. 새기지 않은 자리가 곧 아낀 값이었다.
손을 떼고 기다리자 여덟을 세고서야 닿음이 올라왔다. 오늘 가장 늦게 온 셈이었다.
이름꾼은 두 자국을 나란히 손끝으로 짚었다. 그러고는 줄자를 손에 감아쥐고 우물 턱 옆에 도로 섰다. 부를 수 없게 되기까지 남은 수를 받아 든 사람의 자세는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소하는 그 손이 오늘 하루 줄자를 다시 세지 않기로 한 것을 그 자세만으로 알았다.
저물 무렵 소하는 마디에 다시 손끝을 얹었다. 박동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부풀었다가 가라앉기까지의 사이를 처음부터 세어 보았다.
아침에 센 것보다 사이가 짧아져 있었다.
여울에게서는 하루가 다 가도록 아무 셈도 올라오지 않았다. 마른 줄자의 매듭은 이제 눌러도 되살아나지 않고 눌린 자국이 그대로 남았다. 소하는 그 위에 손끝을 얹은 채, 다음 박동까지의 사이를 다시 세며 저무는 마당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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