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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성이 없어서 벽을 지납니다
    28화 · 2026년 9월 20일

    손이 둘이 되는 날

    스무사흘째 새벽, 소하는 우물가에 무릎을 꿇고 왼팔을 마른 흙에 붙였다. 어제와 같은 자리였다. 손끝으로 먼저 자리를 더듬어 확인하고서야 팔을 얹었다.

    수가 오지 않았다. 늘 이 자리에서 숨을 고르기도 전에 와 있던 것이 오늘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밤새 마당에는 다녀간 흔적이 없었다. 어제와 같은 어둠, 같은 냄새였다.

    소하는 손을 떼지 않은 채 다시 기다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을 넘겨도 왼팔은 그대로 비어 있었다.

    우물 턱 돌에는 어제 새긴 서른아홉이 아직 파여 있었다. 밤새 고인 이슬이 그 홈에 얇게 남아 있었고, 손끝을 얹으면 자국을 타고 옆으로 미끄러졌다. 짚으려던 자리를 몇 번이나 헛짚고서야 겨우 붙잡았다.

    동트기 전 관 마당. 해진 삼베옷을 입은 소하가 돌 우물 옆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한 손으로 마른 땅을 짚고 기다리고 있다. 우물 턱 돌 윗면에는 밤새 고인 이슬이 얇게 얹혀 희미하게 빛나고, 몇 걸음 뒤에는 검은 관복을 입은 관 사람 셋이 흐릿하게 서서 그 모습을 보고 있다.
    늘 오던 수가 오늘은 오지 않았다.

    시장 쪽에서 넘어오는 수레바퀴 소리가 담 너머로 낮게 깔렸다. 늘 그 소리가 들릴 즈음이면 왼팔은 이미 다 온 뒤였는데, 오늘은 그 소리가 다 지나도록 팔이 비어 있었다.

    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그 옆에 둘러섰다. 누군가의 입술이 움직였다. "안 줄었으면 그친 것 아닙니까." 옆 사람의 입술도 따라 움직였다. "이대로면 마흔도 다시 볼 수 있겠습니다."

    소하는 그 웃음을 등지고 앉아 관의 못을 쥐었다. 나무틀에 짧게 새겼다. "아직 모릅니다. 안 온 것은 처음입니다." 손끝을 떼고 기다리자 일곱을 세고서야 닿음이 올라왔다. 밤을 지나며 한 박자가 걷혀 있었다.

    소하는 이어서 어제 남은 흐려짐부터 손을 봤다. 기록관의 못자국을 처음부터 되짚어 나가자 스물 가까이 벌어져 있던 것이 아홉까지 돌아왔다.

    소하는 아침 내내 관 마당과 그 뒤뜰의 우물을 순서대로 짚었다. 명은 쉰넷이었지만 하루에 도는 것은 열둘이 한계였다.

    무릎을 꿇고, 짚고, 일어나 다음 우물 턱으로 걷는 동작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손바닥은 진작 마른 흙과 젖은 이끼를 번갈아 짚느라 온통 얼룩덜룩했다.

    열둘 가운데 오늘 새로 마른 곳은 없었다. 어제 갈라져 있던 흙도, 물이 그대로인 우물도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이 열둘에서는 아무 일도 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왼팔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소하는 그 빈자리를 등에 지고 마지막 우물 턱에 무릎을 꿇었다.

    무릎 아래로 젖은 흙의 냉기가 스며 올라왔다. 아침 내내 짚고 다닌 손끝은 이미 다 식어 있었다.

    우물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재는 손이 오늘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소하는 그 짐작을 새기지 않고 자기 안에만 담아 두었다. 값을 안 치르고 얻은 짐작이었다.

    소하는 걸음을 물려 왼손을 폈다. 새끼손가락 마지막 마디를 이렇게 빨리 다시 쓰는 것은 처음이었다.

    눈을 감았다. 이쪽에서 좁힐 자리는 없었다. 저쪽에서 저절로 좁아지는 사이가 아직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일이었다.

    마디 끝이 처음 닿은 곳은 아무것도 없는 자리였다. 좁아지는 것이 하나도 없어 손끝이 허공을 그대로 지났다. 첫 번은 그렇게 빈손으로 끝났다.

    소하는 손을 거두지 않고 잠시 그대로 있었다. 놓친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곧바로는 알 수 없었다.

    소하는 자리를 조금 옮겨 다시 뻗었다. 이번에는 무언가에 닿았다. 사이가 저절로 좁아지고 있었다.

    먼저 짚힌 것은 낯익은 결이었다. 여섯 해 동안 놓지 않고 있던 그 손의 박동이었다. 아침보다 사이가 더 짧아진 것도 여전했다.

    그런데 그 결 안에 다른 결이 섞여 있었다. 처음 만지는 두께였고, 먼저 온 결보다 얕게, 그 위를 덮듯이 얹혀 있었다.

    소하는 손끝을 움직이지 않고 두 결을 번갈아 짚었다. 하나는 물러설 자리를 안 주고 그대로였고, 다른 하나는 짚을 때마다 조금씩 자리를 바꿨다.

    무명의 말이 손끝을 타고 떠올랐다. 문턱을 짚은 손이 하나면 재는 것이고, 둘이면 옮기는 것이라 했다. 오늘 마디에 걸린 것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무엇을 옮기려는 것인지는 손끝만으로 잡히지 않았다. 소하는 그 물음을 붙든 채 마디에서 손을 뗐다. 알아낸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늘어난 채로 끝난 실험이었다.

    흐려짐이 먼저 왔다. 왼쪽과 오른쪽이 잠깐 자리를 바꿔 느껴졌고 무릎이 꺾였다. 아침에 돌려놓았던 것이 다시 벌어져 스물하나가 되어 있었다.

    낮이 되자 이름꾼이 우물가로 왔다. 손에는 여전히 매듭 진 줄자가 감겨 있었지만 오늘은 그것을 짚지 않았다.

    이름꾼의 입술이 움직였다. "어제 답을 받은 뒤로 하루가 지났습니다." 잠깐 사이를 두고 다시 열렸다. "당신이 어림한 수가 맞는지 오늘 확인하고 싶습니다."

    소하는 무엇을 뜻하는지 곧바로 알았다. 관의 못을 고쳐 쥐고 나무틀에 새겼다. "저를 다시 불러 보십시오."

    이름꾼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하." 팔꿈치께에서 짧게 굳는 감각이 왔다. 어깨까지 가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멎었다가 곧 풀렸다.

    풀리는 데 걸린 시간이 어제보다 짧았다. 소하는 그 짧음을 손끝으로 몇 번이고 다시 짚어 확인했다.

    새 자리에 새겼다. "두 번입니다. 어제는 세 번이었습니다." 손을 떼고 기다리자 여덟을 세고서야 닿음이 올라왔다.

    이름꾼은 그 자국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줄었습니다." 그 말은 물음이 아니었다.

    소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더 얹을 말이 없었다.

    이름꾼의 얼굴에서는 안도도 실망도 읽히지 않았다. 그저 받아든 것을 조용히 갈무리하는 얼굴이었다.

    이름꾼은 줄자를 손끝으로 가만히 쓸어내리고는 걸음을 돌렸다. 굽었던 어깨가 그제야 조금 펴지는 것이 보였다.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남은 것은 아껴 두겠습니다." 잠깐 멈췄다가 열렸다. "부를 수 있는 동안에, 정말 불러야 할 때 쓰겠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이름꾼은 우물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손에 쥔 줄자를 세는 대신 접어 소매 안에 넣는 것이 마지막으로 보였다.

    은실 세 줄이 나타난 것은 그 직후였다. 소매의 은실 세 줄이 낮볕에 옅게 빛났다.

    기록관이 아직 안 온 왼팔의 수를 그대로 보고했다. 은실 세 줄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친 것이라면 잘된 일입니다." 소하는 못을 고쳐 쥐려다 멈췄다. 아직 다 안 셌다는 말을 값을 치르고 새길 자리는 아니었다.

    은실 세 줄이 다시 입술을 열었다. "오늘 안으로 은포 우물 쉰넷을 전부 차례로 짚으십시오." 잠깐 사이를 두고 다시 열렸다. "하루에 다 도십시오."

    기록관의 손이 서판 위에서 멈췄다. 입술이 움직였다. "그건 하루에 도시던 것의 네 갑절이 넘습니다." 은실 세 줄은 그 말에 눈을 주지 않았다. "닿아 있는 자리를 다 세면, 무엇을 어디로 옮길 수 있는지도 같이 나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은실 세 줄은 몸을 돌렸다. 옮긴다는 말이 무엇을 옮기는 것인지는 아무도 되묻지 않았다. 기록관은 그 문장을 짧게 줄여 못으로 새겼다.

    소하는 그 자국 앞에 남아 손끝으로 새겨진 홈을 오래 짚었다. 낮볕에 마른 자국 가장자리가 까끌하게 손끝에 걸렸다.

    짐꾼이 어귀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더는 다가오지 않고 조용히 몸을 돌렸다. 무슨 명이 떨어졌는지는 등만 보고도 짐작한 얼굴이었다.

    소하는 몸을 일으켰다. 오늘 남은 우물이 아직 마흔둘이었고, 해가 지기 전에 그 전부를 짚으려면 지금부터 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오후 내내 소하는 우물을 돌며 사이사이 실매듭과 못자국으로 여울을 불러 보았다. 매듭을 세 번 겹쳐 묶어 우물 턱 아래로 늘어뜨리고, 손바닥으로 돌을 두드려 진동을 흘려보냈다.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여울 쪽에서 온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전에는 짧게라도 손끝으로 뭔가를 되짚어 보내왔다. 오늘은 그 짧은 것조차 없었다.

    헐린 담 너머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발바닥을 타고 왔다. 그 바람에 여울의 것이라 부를 만한 것은 섞여 있지 않았다.

    소하는 그 조용함을 좋은 쪽으로 읽으려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았지만 다잡히지 않았다.

    소하는 다시 마디에 손끝을 얹었다. 낯익은 결과 낯선 결이 아까와 같이 겹쳐 있었다. 이번에는 낯선 쪽을 오래 붙잡았다.

    그 결의 간격이 언젠가 손끝으로 읽었던 것과 닮아 있었다. 실매듭을 옮겨 읽던 그 방식, 여울이 젖은 매듭으로 셈을 건네던 그 방식과 닮은 데가 있었다.

    닮았다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았다. 소하는 그 짐작을 못에도 새기지 않고 손끝에만 남겨 두었다. 새겨서 값을 치르는 순간 짐작이 아니게 되는 것도 알고 있었다.

    흐려짐이 마디를 뗀 자리에서 다시 무너졌다. 아침에 되짚어 돌려놓았던 것보다 더 멀리 벌어져 스물여섯이 되었고, 이번에는 우물 턱이 어느 쪽인지 한참을 더듬고서야 찾았다.

    저물 무렵에야 왼팔에 수가 왔다. 하루 종일 오지 않던 것이 해가 낮아지고 나서야 자리를 잡듯 내려앉았다.

    소하는 그 수를 두 번, 세 번 다시 세었다. 매번 같은 자리에서 멎었다.

    아침부터 소하가 짐작한 것은 둘 중 하나였다. 어제와 같은 서른아홉이 그대로 오거나, 하루씩 줄어 온 것처럼 서른여덟이 오는 것이었다. 오늘 온 것은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서른일곱이었다. 하루 사이에 둘이 빠져 있었다.

    기록관이 그 수를 받아 못을 들었다. 소하는 손을 들어 그 손을 잠깐 멈추게 하고, 다시 한번 왼팔에 손끝을 얹어 확인했다. 자국은 흔들리지 않았다.

    주위에 남아 있던 관 옷 입은 이들의 입술에서는 아까 아침의 웃음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쉰넷 가운데 오늘 새로 마른 자리는 하나도 없었다. 낮부터 저물녘까지 발로 다 확인해 둔 것이었다. 그런데 수는 둘이 빠져 있었다. 재는 손이 하루 종일 다른 데 가 있었다는 짐작이 이 수 앞에서 짐작 이상의 것이 되고 있었다. 재는 일이 오늘 옮기는 일로 잠깐 바뀌어 있었다면, 그렇게 옮겨진 것도 하루 만에 둘일 수 있었다.

    소하는 그 자리에 못을 얹어 오늘 수를 새겼다. 손끝을 떼고 기다리자 아홉을 세고서야 닿음이 올라왔다.

    소하는 손끝을 뗀 뒤에도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무릎을 꿇은 채 하루를 다 보낸 다리가 저릿하게 저려 왔지만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슬은 이미 오래전에 말라 우물 턱 못자국 위에 뽀얀 먼지만 얇게 앉아 있었고, 손끝으로 훑으면 낮보다 얕아 보이던 홈이 실은 그대로라는 것을 겨우 알 수 있었다. 소하는 그 얕아 보이는 자국 위에 손끝을 얹은 채, 아침에 짐작한 두 가지와 오늘 나온 하나 사이의 차이를 무엇으로 메워야 할지 알지 못한 채로, 저물어 가는 마당에 오래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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