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진 하나
소하는 손끝으로 우물 돌을 짚고 있었다. 밤새 식은 정도를 손바닥에 새기듯 옮겨 담는 동안, 다음 우물로 넘어가는 걸음은 무릎이 저절로 맞춰 갔다.
동트기 전 마당 공기 속에 낯선 냄새가 섞여 있었다. 위쪽 흙 냄새와는 달랐다 — 밑을 처음 뒤집은 것처럼 눅눅하고 찬 냄새였다. 어디서 오는지는 아직 손에 잡히지 않았다.
소하는 그 냄새를 한쪽으로 밀어 두고 손바닥을 다시 돌 위로 옮겼다.
무릎에 감긴 헝겊은 밤새 젖었다 말랐다를 되풀이한 자리마다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소하는 그 위로 몸을 옮겨 다음 우물 앞에 다시 꿇어앉았다.
오늘 마른 우물은 여덟을 세는 동안 온기가 다 식었다.
어제 마른 우물은 손을 대자마자 이미 식어 있었다. 스물을 세어도 더 식을 것이 없었다.
물이 남은 우물은 마흔을 세어도 온도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소하는 그 세 값을 나란히 손끝에 얹어 두었다.
짚을 때마다 소하는 그 차이를 왼팔 안쪽에 대 보았다. 온기가 짙을수록 왼팔의 셈이 아직 안 움직인다는 확신이 굳어 갔다.
마당 어귀에 어머니가 서 있었다. 소하 곁으로 다가와 손목의 끈을 풀었다가 다시 매듭을 지어 주었다. 이번에는 어제보다 단단히 조였다.
소하는 그 매듭이 조여지는 결을 가만히 받았다. 손끝에 실리는 힘이 어제와 달랐다.
어머니는 손목을 놓고서야 입술을 움직였다. "저물기 전에 들어와라." 그러고는 몸을 돌려 시장 쪽으로 걸었다.
기록관이 먼저 마당에 나와 오늘 셈을 서판에 옮기고 있었다. 소하가 다가서자 그 손을 멈추고 서판을 기울여 보였다.
"오늘 아침, 서른둘입니다." 기록관의 자세는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소하는 나무틀을 옆구리에 낀 채 오늘 짚어 둔 것을 꺼내 새겼다. "닿아 있는 자리가 서른넷입니다."
기록관은 그 두 수를 서판 위에 나란히 옮겨 적었다. "서른둘과 서른넷은 다릅니다." 그 이상은 보태지 않았다.
소하는 그 차이를 알고 있었다. 어느 쪽이 틀렸는지는 아직 몰랐다.
소하는 다시 우물들을 돌며 셈을 늘려 갔다. 물이 그득한 자리, 오늘 마른 자리, 어제 마른 자리 — 온기가 남아 있다고 여긴 곳마다 손끝으로 표를 붙였다.
소하는 우물마다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붙였다가 떼기를 되풀이했다. 손끝 마디마다 우물 돌의 거친 결이 그대로 눌려 남았다.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에도 그 차이는 그대로였다. 서른둘과 서른넷 사이, 둘 어긋난 자리를 아직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다.
소하는 그 두 수를 나란히 손끝에 얹어 두고 몇 번이고 다시 비교했다. 어느 쪽도 물러서지 않았다.
소하는 그중 온기가 가장 짙던 우물 앞에 다시 앉아 왼손을 폈다. 없는 마디 쪽이었다.
오늘은 순서를 바꿔 보기로 했다. 손끝을 돌에 붙이는 대신 마디부터 세우고, 저쪽이 스스로 좁히는 결이 걸리는지부터 기다렸다.
결 하나가 걸렸다. 소하는 그 결에 온기가 짙던 우물의 표를 실어 보냈다. 아직 닿아 있는 자리인지 확인해 달라는 셈이었다.
돌아온 것은 셈이 아니었다. 결의 방향이 뒤집힌 느낌만 남았다. 방금 지나간 것을 되짚어 보내는 결이었다.
소하는 그 결을 몇 번이고 다시 짚었다. 매번 같은 방향이었다. 무언가 이미 건너간 자리에서만 나는 결이었다.
온기는 「아직 닿아 있다」가 아니라 「방금 건너갔다」의 표시였다. 소하는 도구의 뜻을 반대로 읽고 있었다.
소하는 잠시 손을 거두고 숨을 골랐다. 오래 믿어 온 방향이 통째로 뒤집힌 참이었다. 오늘 붙여 둔 표를 전부 다시 갈라야 했다.
손을 떼면서 소하는 여섯 번째 우물과 일곱 번째 우물을 헷갈렸다. 표를 다시 확인하려 손을 뻗었을 때, 그 손끝은 이미 짚은 일곱 번째를 다시 짚고 있었다.
흐려짐이 서른넷까지 올라와 있었다. 어느 쪽이 여섯 번째이고 어느 쪽이 일곱 번째인지, 표를 하나하나 세어야 다시 갈렸다.
기록관은 아까 새긴 서른넷을 그대로 서판에 남겨 두었다. "먼저 새긴 것은 지우지 않습니다." 그 옆에 소하가 고쳐 부른 서른둘을 나란히 새겼다.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둘 중 어느 쪽이 잘못 붙은 표인지는 끝내 갈리지 않았다.
소하는 뒤집힌 뜻을 확인해 보고 싶어 다시 마디를 세웠다. 이번에는 낯익은 결 쪽으로 곧장 뻗었다.
여울과 소하 둘만 아는 셈을 마디에 실어, 방금 뒤집어 읽은 뜻이 맞는지 건넸다.
돌아오는 데 유난히 오래 걸렸다. 매듭이 다른 결로, 늦게 조여져 왔다. 셈은 아니었다. "오늘 손은 괜찮으십니까."
소하는 그 물음 앞에서 손끝을 떼지 못했다. 답 대신 물음을 받은 것은 오래간만이었다.
소하는 짧게 매듭을 실어 보냈다. "오늘은 견딜 만합니다."
되돌아온 매듭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손을 떼고 몸을 일으키는데 늘 다니던 골목 어귀를 못 알아보고 반대로 돌 뻔했다. 흐려짐이 마흔 가까이 올라와 있었다.
소하는 오늘 짚은 쉰넷을 하나하나 다시 셈해 보았다. 여덟도 스물도 마흔도 아닌 자리는 없었다. 순회에 들지 않는 곳은 하나뿐이었다.
소하는 그 자리를 향해 관 뒤뜰로 걸음을 옮겼다. 처음 가는 곳이 아니었다.
못 박은 문 앞에 이르렀다. 스물다섯 자 줄을 다 풀고도 바닥에 닿지 못했던 그 우물이었다. 여울이 다시 그 줄에 매달려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았던 자리이기도 했다. 여섯 해째 여울이 있는 곳이었다.
박힌 못은 오래돼 붉게 슬어 있었고 문틀 나무는 비바람에 씻겨 결이 다 드러나 있었다.
문짝이 밖으로 슬쩍 밀려 나왔다가 도로 빨려 들어가기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백 년 전 이 우물이 마르며 밑에서 올라왔다는 그 바람이, 지금도 안에 갇혀 문을 밀어내고 있었다.
소하는 문에서 반걸음 물러나 등을 돌려 세웠다. 얼마나 물러났는지는 헤아리지 않았다. 왼손을 펴 없는 마디를 문 쪽으로 두었다.

눈을 감았다. 문이 언제 밀려 나올지는 소하가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문짝이 밀려 나오며 등 뒤의 틈이 순식간에 좁아졌다. 없는 마디가 그 좁아짐을 놓치지 않고 붙잡았다.
흐려짐이 그 자리에서 한 번 더 뛰어 쉰 가까이 닿았다. 이번에는 아무리 되짚어도 자리가 돌아오지 않았다.
틈은 잡혔는데 그 안에서는 아무 결도 올라오지 않았다. 여울이 있는 곳인데, 사람의 결이 하나도 없었다.
소하는 몸을 돌려 문 앞 돌 턱에 손바닥을 마저 얹었다. 하루 내내 짚었던 어떤 우물과도 다른 감촉이었다 — 온기도 냉기도 아니었다.
손을 떼지 않고 한참을 그대로 짚었다. 아침에 그득했던 우물도, 오늘 마른 우물도 시간이 지나면 돌의 온도가 조금씩 움직였는데, 이 돌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거기서는 흐르지 않고 있었다. 이미 다 건너간 자리라면 식을 것도 데워질 것도 남지 않은 셈이었다.
해는 아직 중천이었지만 저물기 전에 들어오라던 어머니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이 문 앞에서 시간을 얼마나 썼는지 가늠이 안 됐다.
소하는 그 자리에 표를 새기려 나무틀을 끌어당겼다. 없어진 하나를 찾았다는 것을 오늘 안에 관에 알려야 했다.
은실 세 줄이 관 뒤뜰 쪽으로 들어섰다. 소하가 짚어 둔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소하는 그 인기척에 먼저 반대쪽을 짚었다. 흐려진 셈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탓이었다.
오늘 아침에는 여섯을 세고서야 닿음이 올라왔다. 그 정도로는 못을 쥐는 데 걸리지 않았다.
소하는 나무틀을 세우고 못을 쥐었다. "없어진 하나를 찾았습니다. 이 문 안쪽입니다."
은실 세 줄은 그 자국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뒷짐을 졌다.
"관이 없어진 하나를 되찾을 수 있다고 본 적은 없습니다." 입술이 그 말만큼 천천히 움직였다. "이백 년 전에 하나가 건너간 뒤로 우리가 알아낸 것은 하나뿐입니다 — 따로 있으면 따로따로 건너갑니다."
소하는 그 말의 뒷부분까지 받아 두려 못끝을 나무에 붙인 채 두었다.
"그래서 아직 닿아 있는 자리를 한 자리로 모으려 합니다." 은실 세 줄의 손끝이 문틀의 못자국을 짚었다.
마당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삽을 든 사람 몇이 이미 모여 서 있었고, 아까부터 낯설던 냄새가 그쪽에서 짙게 번져 왔다. 소하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 모으려면 원래 자리부터 없애야 한다는 뜻이었다.
"모으는 데 필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은실 세 줄이 소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디가 아직 닿아 있는지 아는 손입니다."
소하는 새길 말을 찾지 못했다. 필요한 손이 자신이라는 것을 못으로 새기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소하는 그 말을 말리려 나무틀에 못끝을 갖다 댔다. 한 자리로 모으면 저쪽에서 한 번에 가져갈 수 있는 자리가 된다는 것부터 새길 참이었다.
못끝이 나무에 닿는 느낌을 기다렸다. 오지 않았다.
오늘 하루 쉰넷을 도느라 오른손으로 짚은 것이 그 자리에서 한꺼번에 밀려왔다.
열둘을 세고서야 닿음이 올라왔다. 그사이 마당 쪽에서 흙이 먼저 튀어 올랐다.
나무틀에는 앞머리만 패어 있었다. 뒷말은 새기지 못한 채였다.
은실 세 줄은 그 새기다 만 자국을 내려다보았다. 입술이 짧게 움직였다. "압니다."
왜 그런데도 하는지는 새기지 않았다. 소매를 도로 여미고 몸을 돌렸을 뿐이다.
은실 세 줄의 손끝은 그새 문틀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알면서도 하는 사람의 손이 그렇게 오래 같은 자리에 머무는 것을, 소하는 처음 보았다.
소하는 왼팔 안쪽을 짚어 보았다. 서른둘이었다. 모아서 없앨 자리가 서른두 곳이라면, 그 수가 닳아 0이 되는 날 은포 밑 얇은 자리는 전부 닫힌다는 것을 소하는 그제야 처음으로 셈해 보았다. 그때 저쪽에 몸이 걸쳐진 사람은 어느 쪽에도 없어진다. 왼팔이 거기 있었고 여울은 통째로 거기 있었다.
소하가 마당으로 나왔을 때, 인부 몇이 이미 우물 하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아까부터 낯설던 냄새가 그 삽 끝에서 짙게 올라오고 있었다. 처음 뒤집힌 흙의 냄새였다.
삽이 우물 턱 안으로 흙을 퍼 넣기 시작했다. 삽날이 돌 틈에 걸릴 때마다 인부들의 어깨가 크게 흔들렸고, 흙먼지가 우물 어귀로 뿌옇게 번져 나갔다.
소하는 그 우물을 알아보았다. 여섯 번째 우물이었다. 끝내 갈라내지 못한 그 표, 아직 물이 그득한 쪽이었다.
두레박줄이 흙더미 밑으로 잠겨 들어갔다. 되돌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소하는 나무틀에 새기다 만 앞머리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그 삽을 멈출 말은 남아 있지 않았다.
소하는 몸을 돌려 관 뒤뜰 쪽을 바라보았다. 오늘 셀 것은 이제 그 문 하나로 좁혀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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