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갈래 셈
밤사이 메워진 우물 자리에는 흙더미만 남아 있었다. 다져지지 않은 겉면 위로 희끗한 서리가 얇게 앉았고, 가장자리는 무너져 흙탕물이 마당 쪽으로 가늘게 번져 있었다.
흙더미 한복판이 유독 짙게 젖어 있었다. 다른 자리보다 먼저 식은 흔적이었다. 밤을 넘기는 동안 아무 발자국도 그 위를 밟지 않았다.
무너진 가장자리를 따라 잔돌 몇 개가 흙더미 아래로 굴러 내려가 있었다. 그것들을 되밀어 올린 손은 어디에도 없었다.
소하는 동트기 전에 그 흙더미부터 찾아왔다. 바람이 낮게 불어와 먼지가 입술에 앉았다 — 위쪽 흙과도 우물 밑 냄새와도 다른, 마르고 밑동까지 구운 듯한 맛이었다.
나무틀을 옆구리에 낀 채 오른손으로 겉면을 짚었다. 겉은 말라 있었는데 손끝 밑은 아직 눅눅했다.
기록관이 서판을 기울여 보였다. "오늘 아침, 쉰셋입니다." 그 뒤로는 다른 것을 보태지 않았다.
소하는 그 수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어제까지 쉰넷이던 자리에서 하나가 빠져 있었다. 관은 메워진 자리를 그대로 지운 셈이었다.
기록관이 오늘 아침 소하의 오른손을 확인했다. 열하나를 세고서야 닿음이 올라왔다. 기록관이 그 값을 못으로 새겨 보였다. "어제보다 빠릅니다." 밤사이 한 박자가 걷힌 값이었다.
소하는 그 손을 잠깐 접었다 폈다. 어제보다 빨라진 것을 손끝으로 먼저 느꼈다.
소하는 왼팔 안쪽을 짚어 오늘 온 수를 확인했다. 위쪽을 짚자 한 값이 잡혔고 손끝을 아래로 내리자 다른 값이 잡혔다.
몇 번을 다시 짚어도 같은 자리에서는 같은 값이 나왔다. 위쪽은 서른둘, 아래쪽은 서른하나 — 여섯 해 동안 하나로 오던 줄어드는 수가 오늘 처음으로 둘로 갈라져 있었다.
소하는 그 어긋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어느 쪽이 셈에 더 가까운지는 손끝만으로는 아직 가릴 수 없었다.
소하는 흙더미 위로 다시 올라섰다. 입 안에 아직 그 맛이 남아 있었다. 오른손을 겉면 깊이 눌러 짚자 위쪽 값이 짚는 순간마다 잠깐 흔들렸다가 도로 자리를 잡았다.
소하는 흙더미에서 물러나 마당 가장자리까지 걸었다. 같은 자리를 다시 확인하니 위쪽 값은 가라앉아 있었는데 아래쪽 값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소하는 이웃한 우물로 걸음을 옮겼다. 아직 물이 그득한 자리였다. 그 턱에 손을 얹자 위쪽과 아래쪽이 처음으로 나란히 맞아떨어졌다.
어긋나는 자리는 그 흙더미뿐이었다. 다른 우물 어디에서도 두 값은 갈라지지 않았다.
무릎을 꿇었다 일어서기를 되풀이하는 동안 헝겊 아래 살갗이 다시 쓸렸다. 소하는 그 쓰라림을 뒤로 미뤄 두고 다음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위쪽은 아직 물이 닿아 있는 자리의 수였다. 아래쪽은 아직 이쪽에 서 있는 자리의 수였다. 메워진 우물만 그 둘이 하나 어긋나 있었다.
물은 아직 닿아 있는데 자리는 이미 저쪽으로 실려 가 있었다. 메우는 일은 자리를 없애는 일이 아니었다. 자리를 실어 보내는 일이었다.
관이 없애려던 것을 저쪽에 하나 더 얹어 준 셈이었다.
소하는 그 둘을 나무틀에 새겼다. "위와 아래가 다릅니다." 기록관이 그 자리에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서판에는 없던 값이었다.
여섯 해 동안 한 번도 둘로 갈리지 않던 수가, 오늘 소하의 손끝을 거쳐 관에게 처음 건너간 참이었다.
소하는 그제야 알아챘다. 어디가 아직 닿아 있는지 아는 손 — 관이 필요로 하던 그 손을, 방금 자기가 내준 것이었다.
이름꾼이 기록관 곁에 다가섰다. 소하는 곁눈으로 그 입술을 좇았다.
"동생이 있던 자리를 오늘 메운다고 알고 왔습니다."
기록관은 그 물음에 우물의 이름도 자리도 짚어 주지 않았다. 관은 어느 우물을 메우는지 미리 알리지 않았다.
소하는 그 흙더미가 어느 자리인지 알고 있었다. 여섯 번째 우물, 아직 물이 있던 자리였다. 여울이 있는 문 안쪽과는 다른 우물이었다.
이름꾼은 잘못 알고 온 것이었다. 소하는 그것을 새기지 않았다. 바로잡을 값을 아직 찾지 못했다.
소하는 흙더미 가장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왼손을 펴 없는 마디를 흙 쪽으로 두었다.
눈을 감았다. 흙더미는 소하가 스스로 좁힐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남은 것은 저쪽에서 저절로 좁아져 오는 결이 아직 있는지, 마디 끝으로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결 하나가 걸렸다. 낯익은 결은 아니었다. 여울과 나누던 박동과도 달랐다. 아무리 셈을 실어 보내도 되돌아오는 것이 없었다 — 언젠가 한 번 걸렸던 결과 같았다, 읽지 않고 나르기만 하던 손.
소하는 손을 떼고 마디를 다시 세웠다. 이번에는 셈을 실어 보내는 대신 지나가는 결의 박자만 세어 볼 참이었다.
두 번째로 걸린 결에서 박자를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 어디선가 짚은 적 있는 박자였다. 못 박은 문 앞, 시간이 흐르지 않던 그 돌의 것과 같았다.
나르는 손은 사람이 아니라 없어진 하나였다. 이백 년 전에 저쪽으로 건너간 그 자리가 지금 저쪽에 서서, 이쪽에서 건너가는 자리들을 받아 나르고 있었다.
읽지 않는 이유도 그제야 짚혔다. 그 손이 서 있는 자리에는 애초에 읽을 것이 없었다. 자리 그 자체가 서 있을 뿐이었다.
그 손이 딛고 선 것도 낯익었다. 낯익은 결 위에 낯선 결이 얕게 얹혀 오던 바로 그 자리 — 없어진 하나는 여울 위에 서 있었다.
관이 모으려는 자리와 저쪽이 실어 가는 자리가 같은 것이었다. 관은 이쪽으로 모으고 저쪽은 저쪽으로 당긴다. 관도 그 하나에게서 「따로 있으면 따로따로 건너간다」는 것 하나만 배운 셈이었다. 나머지는 소하가 오늘 처음 짚은 것이었다.
소하는 그 결을 놓지 않고 손끝에 힘을 주었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방향이었다 — 나르는 결을 붙잡아 되돌려 끌어당기는 것.
사이를 새로 좁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미 걸린 결을 당기는 일이었다.
결이 당겨졌다. 잡아끄는 손이 소하 쪽이어야 할 자리에서, 끌려 오는 몸이 거꾸로 소하였다.
몸이 흙더미 가장자리로 끌려가는 사이, 소하는 오른손을 뻗어 짚을 자리를 더듬었다. 열셋을 세고서야 닿음이 올라왔다. 손끝이 이미 지나친 자리를 다시 짚고 있었다.

잡아야 할 것을 놓친 채 몸이 한 뼘 더 끌려갔다.
발밑에서 다른 결이 밀려 올라왔다. 낯익은 결이었다. 아래에서 위로, 지금까지 한 번도 없던 방향이었다.
나르는 손이 딛고 있던 자리가 그 순간 사라졌다. 당기던 힘이 그대로 풀렸다.
소하는 흙더미 위로 도로 주저앉았다. 몸을 붙잡던 손은 더 이상 없었다.
소하는 곧바로 마디를 다시 세워 그 결에 셈을 실었다. 고맙다는 말 대신, 오늘 흙더미에서 걸린 값을 그대로 건넸다.
돌아오는 것이 없었다. 낯익은 결은 그 뒤로 다시 잡히지 않았다.
소하는 왼팔 안쪽을 다시 짚었다. 위쪽 값이 서른하나로 내려와 있었다. 아침의 어긋남이 그 사이 사라져 있었다.
한 자리가 마저 실려 갔다는 뜻이었다. 여울이 소하를 밀어 올린 그 값을, 저쪽이 그대로 가져간 셈이었다.
나르는 손은 한 방향으로만 나른다는 것, 되돌리는 길이 없다는 것을 소하는 그제야 알았다.
소하는 눈을 떴다. 이름꾼이 몇 걸음 밖에 서 있었다. 손이 옷깃 근처에서 막 내려오는 참이었다.
「소하」로 보이던 입 모양이 그대로 다물리는 것을, 소하는 그제야 보았다.
남은 두 번은 그대로였다. 소하가 셈으로 알고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은실 세 줄이 마당 가운데 섰다. 남은 팻말들을 향해 손짓했다.
소하가 그 입 모양을 붙잡았다. "오늘부로 순회는 없습니다." 그 말만 남기고 은실 세 줄이 몸을 돌리려 했다.
소하는 그 말을 손끝으로 되짚었다. 여섯 해를 돌던 걸음이 오늘로 끝나 있었다. 팻말이 뽑혀 나간 자리마다 흙만 남았다.
은실 세 줄이 다음 자리를 정하려 흙더미들 쪽으로 눈을 돌렸다. 위와 아래를 갈라 보는 손이 다시 필요한 참이었다.
소하는 나무틀 쪽으로 뻗던 손을 멈췄다. 오늘 아침 건넨 것과 같은 값을 다시 내줄 생각이 없었다.
기록관이 대신 우물 턱들을 돌아 이미 새겨 둔 못자국을 확인했다. 돌아와서는 소하가 보는 앞에 한 줄을 새겼다. "여기서도 다음 자리는 나옵니다." 날마다 돌던 순회가 남긴 자국만으로도 모자라지 않았다.
소하가 손을 거둔 것은 아무것도 막지 못했다. 이미 새겨진 것이 새로 내줄 것을 대신하고 있었다.
은실 세 줄이 소하 쪽으로 눈을 돌렸다. 소하는 그 입술을 놓치지 않았다. "오늘은 손을 안 빌려주시는 겁니까." 소하는 그 말에 아무것도 새기지 않았다.
소하가 나무틀에 새겼다. "지운 뒤에도 또 메우실 겁니까."
은실 세 줄은 그 물음에 답을 새기지 않았다.
소하는 흙더미 어귀, 흙탕물이 고인 자리로 다가갔다. 왼손을 그 물에 담갔다.
물기를 머금은 손을 들고 은실 세 줄이 들고 있던 서판 쪽으로 걸었다.
은실 세 줄이 손을 거두려다 멈췄다.
소하가 한발 빨랐다. 젖은 왼손이 서판 위, 오늘 짚어 둔 표가 있던 자리에 얹혔다.
얹혀 있던 먹만 없어졌다. 나무는 그저 나무로 남았다.
손끝에서 물기가 마르고도 한참, 그 자리만 유난히 저릿했다. 이번에도 안 빠질 것 같았다.
은실 세 줄이 빈 나무판을 손끝으로 쓸어 보았다. 놀람도 노여움도 없었다.
기록관이 우물 턱에 남은 못자국으로 눈을 돌렸다. 그것은 그대로 있었다. 서판이 비어도 다음 자리를 가리키는 데는 모자람이 없었다.
손을 내주지 않아도, 지워도 관은 메울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아래에 남은 여울은 그 사이에도 그대로였다.
그래도 소하는 그 손을 다시 물에 담갔다. 남길 수 있는 것을 하나라도 지우는 쪽을 골랐다.
기록관이 나무틀 귀퉁이에 새 글자를 새겼다. "오늘부터는 젖은 손을 먼저 확인한다." 은실 세 줄이 내린 명이었다.
소하는 그 말을 받아 두었다. 관이 소하를 보는 눈금에 오늘부로 하나가 더 얹혀 있었다.
소하는 나무틀을 마당 한켠에 내려놓았다. 못주머니도 그 옆에 나란히 두었다.
왼손에 남은 물기가 마당 흙바닥에 몇 방울 떨어졌다.
남은 자리가 마당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다음 흙더미가 어느 것이 될지는, 오늘은 아무도 새기지 않았다.
마당 한쪽의 삽날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오늘 몫의 흙은 이미 다 퍼부어진 뒤였다. 입 안에 남았던 흙 맛은 그새 옅어져 있었다.
소하는 두 손을 편 채로 마당을 가로질러 걸었다. 쥔 것도 짚은 것도 없이, 걸음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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