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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성이 없어서 벽을 지납니다
    34화 · 2026년 9월 29일

    빌린 손

    잠든 사이에도 오른손은 이불깃 위에서 획을 긋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눈을 뜨자 손가락 마디마다 삼베 올이 눌려 잔골이 져 있었고, 손톱 밑에는 이불 보풀이 뭉쳐 밀려 들어가 있었다.

    주먹을 쥐라고 손에 시켜 보았다. 손가락은 한참을 뜸 들이다가 차례로 접혔고, 소하는 그것을 눈으로 지켜본 뒤에야 쥐었다는 것을 알았다. 펴는 데는 그보다 더 오래 걸렸다.

    이불을 개려고 양손으로 끝을 맞잡았다. 왼손은 원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니 오른손이 맞추는 대로 따라갔는데, 오른손은 삼베의 거친 결이 올라오기 전에 이불을 놓아 버렸다. 이불 한쪽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벌써 일터로 나가고 방에는 식은 죽 사발만 남아 있었다. 소하는 사발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오른손이 미끄러지기 전에 왼손 쪽으로 무게를 몰아 죽을 마셨다.

    골목을 나서기 전에 왼팔 안쪽을 짚었다. 위쪽은 서른, 아래쪽도 서른이었다. 어제는 삽이 들어가며 아래쪽이 하나 내려앉았는데, 밤을 넘기고도 두 값이 저물녘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줄지 않았으니 반가워야 마땅한데 소하는 그 자리를 오래 눌러 보았다. 수가 줄지 않은 아침에는 늘 다른 무엇이 대신 값을 치르고 있었다. 오늘은 무엇이 치르는지 손끝에 잡히지 않았다.

    문간에는 어제 짐꾼이 지고 간 나무틀과 못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소하는 나무틀을 어깨에 걸고 못주머니를 허리에 찬 뒤, 오른손을 옷섶 사이에 끼워 넣고 골목 어귀를 나섰다. 손이 무엇에 걸려도 모르고 지나칠 것 같아서였다.

    관 마당에 들어서니 기록관이 먼저 나와 우물 턱 곁에 서 있었다. 소하가 왼손을 내밀자 기록관은 손끝부터 소맷단까지 젖은 데가 없는지 훑어 올라갔다.

    기록관의 눈이 광대뼈 밑 마른 상처 위에서 잠깐 멎었다.

    오른손은 소하가 스스로 확인했다. 우물 턱 돌 모서리를 엄지로 눌러 놓고 눈을 감았다. 열넷을 세고서야 닿음이 올라왔다. 밤이 걷어 간 것은 한 박자뿐이었다.

    소하는 허리에 찬 못주머니의 끈을 손끝으로 만져 보았을 뿐 풀지 않았다. 기록관의 시선이 그 주머니에 머물다가 발밑으로 내려갔다.

    담 그늘에서 은실 세 줄이 걸어 나왔다. 소매를 여미는 손끝이 어제보다 더뎠다. 소하는 그 입가를 놓치지 않으려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입 모양이 또렷하게 이어졌다. "문 안쪽 우물은 마지막 자리로 미룹니다. 빼 드리지는 않습니다." 소하는 그 입가를 끝까지 좇아 한 마디도 흘리지 않고 받았다.

    "앞의 차례는 소하가 정하십시오. 해 지기 전에 새겨서 넘기지 못하면 차례는 관이 정하고, 문 안쪽이 맨 앞에 옵니다." 말이 길어질수록 입가가 한 글자씩 끊겨 읽혔다.

    소하는 오른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왼팔 안쪽을 걷어 보이고 손가락을 차례로 접어 주먹을 쥐었다. 이 수가 다 닳으면 어떻게 되느냐는 뜻이었다.

    은실 세 줄의 눈이 소하의 주먹에서 떠나지 않았다. "서른이 다 닳는 날에는 이백 년 전 그날이 서른 곳에서 한꺼번에 옵니다. 그날 관은 문을 달았지만, 이번에는 달 문이 모자랍니다." 입가는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소하는 주먹을 풀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은실 세 줄이 소매를 다시 여미며 돌아서다가 한마디를 더 얹었다.

    "오늘 삽은 서지 않습니다. 오늘 몫은 내일에 얹고, 내일부터 사람을 더 씁니다. 하루에 셋입니다." 마지막 말은 등을 돌린 뒤여서 옆얼굴로 겨우 읽혔다.

    소하는 그 셋을 서른에 대 보았다. 열 밤이었다. 열 밤 뒤에 서른 곳이 한꺼번에 열린다는 말이 손바닥에 젖은 흙처럼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소하는 오전 내내 우물 턱마다 무릎을 꿇고 오른손을 얹었다. 물이 끊긴 자리와 아직 그득한 자리를 손끝으로 갈라 두어야 차례를 정할 수 있었다.

    담 밑 우물 턱은 볕이 닿지 않아 손바닥 밑이 눅눅했다. 소하는 그 턱에 오른손을 얹은 채 왼팔로 오는 값을 기다렸다.

    얹었다 뗄 때마다 손끝이 조금씩 두꺼워졌고 무릎을 옮기는 동안 헝겊 아래 살갗이 쓸렸다. 해가 마당 한가운데 닿을 즈음에는 손가락이 무엇에 얹혀 있는지 눈으로 봐야 알 수 있었다.

    정오 가까이 담 앞을 지나쳤다. 삽 자루들이 아침에 본 그대로 기대선 채 한 번도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삽이 서지 않은 날에는 수도 서 있었다. 그것이 짝인지 우연인지 왼팔로는 가릴 수 없었고, 가릴 길은 저쪽의 결이 오늘 미끄러지는지 서 있는지를 손목으로 받아 보는 것뿐이었다.

    정오 볕이 마당에 눕자 어귀에 어머니가 보였다. 손에 밥보자기를 들고 있었다. 소하가 다가가 그것을 받으려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손끝이 보자기 매듭에 닿기 전에 손가락이 접혔다. 보자기가 소하의 발등 위로 떨어졌다. 어머니가 허리를 굽혀 그것을 집어 소하의 왼손 위에 얹어 주었다.

    어머니의 입술은 절반쯤 읽혔다. "밥부터 먹어라." 어머니의 눈이 소하의 오른손에서 광대뼈 밑 상처로 옮겨 갔다가 도로 손으로 돌아왔다. 그 눈은 무엇도 캐묻지 않았다.

    소하는 우물 턱에 걸터앉아 왼손으로 그릇을 받치고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쥐었다. 숟가락은 입 앞에서 기울었다가 다시 올라왔다. 어머니는 곁에 서 있었다.

    그릇을 비우자 어머니가 품에서 붉은 끈을 꺼냈다. 어제 매어 준 것보다 길었고 군데군데 매듭이 미리 지어져 있었다.

    어머니의 입술이 또박또박 읽혔다. "하나면 응이다. 둘이면 아니다. 셋이면 나를 불러라." 소하는 그 세 마디를 매듭 수로 바꾸어 외웠다.

    소하는 끈 한쪽 끝을 오른쪽 손목에 두르고 어머니 앞에 손목을 내밀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조여 오는 끈이 사이가 될 것이었다. 얼마나 죌지는 어머니의 손에 달려 있었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끈을 받아 손목에 감았다. 그런데 매듭을 올리는 손가락이 자꾸 주춤거렸고, 조임은 살갗이 눌렸다는 것을 겨우 알릴 만큼만 왔다. 소하가 마음먹으면 멈출 수 있는 속도였다.

    한낮의 관 마당. 마른 흙바닥에 나무 그늘이 얼룩져 있고 담에는 삽 자루들이 기대어 서 있다. 해진 삼베옷을 입은 마른 젊은이가 낮은 우물 턱에 걸터앉아 눈을 감은 채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었고, 맞은편에 선 나이 든 여인이 그 손목에 붉은 끈을 감고 있다. 끈은 화면에서 유일하게 색이 짙은 것이고 아직 늘어져 있다.
    얼마나 죌지는 어머니의 손에 달려 있었다.

    저쪽에서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눈을 뜨자 손목에는 붉은 끈이 헐겁게 걸려 있었고 어머니의 손끝이 그 위에서 조금 떨렸다.

    소하는 왼손으로 헐거운 매듭을 두드리고 손날을 아래로 눌러 내렸다. 더 세게 매라는 뜻이었다.

    어머니는 그 손짓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입술이 절반쯤 읽혔다. "참아라." 그러고는 끈 끝을 두 손으로 잡고 몸무게를 실었다.

    끈이 살을 파고들며 죄어 왔다. 손목뼈 위 살이 끈결대로 눌려 파였고 눌린 자리 밑에서 맥이 끈에 부딪혀 뛰었다. 손끝은 피가 몰려 부풀어 오르는 듯했다.

    조임이 더 오를 데 없는 자리에서 결이 걸렸다. 저쪽의 결은 미끄러지지 않았다. 나르는 손은 딛은 자리에 뿌리를 내린 듯 서 있었고, 미는 힘도 당기는 힘도 손목으로 오지 않았다.

    소하는 그 결이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끈은 계속 죄었고 손끝은 감각을 잃어 갔다. 어머니의 손은 더 죌 곳을 찾지 못한 채 떨렸다. 결은 끝까지 서 있었다.

    어머니가 끈을 풀자 손목에 붉은 골이 두 줄 남았다. 끈을 쥐고 있던 어머니의 두 손바닥에도 같은 결의 자국이 패어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것을 내려다보지 않았다. 피가 몰렸다 빠지는 동안 소하의 오른손은 무릎 위에서 손가락 하나 접히지 않았다.

    소하는 왼팔 안쪽을 짚었다. 위쪽 서른, 아래쪽 서른. 저쪽의 손이 서 있는 동안 수도 서 있었다. 삽과 손은 같은 자리에서 같이 쉬고 있었다.

    어머니가 끈 끝을 소하의 무릎에 놓았다. "괜찮으면 하나, 아니면 둘이다. 지어 봐라." 어머니의 입술은 그 말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소하는 오른손으로 끈을 잡아 꼬았다가 놓쳤고 다시 꼬았다. 매듭 하나가 굳는 동안 그림자가 마당 흙 위로 한 뼘쯤 옮겨 갔다. 소하는 그 곁에 매듭을 하나 더 얹었다. 매듭은 둘이었다.

    어머니는 두 매듭을 손끝으로 훑었다. 입술이 짧게 읽혔다. "그래." 어머니는 밥보자기를 접고 소하의 광대뼈 밑 상처로 엄지를 뻗다가 살에 닿기 전에 거두었다.

    어머니는 그대로 몸을 돌려 어귀 밖으로 나갔다. 소하는 소맷단을 내려 손목의 붉은 골을 덮었다.

    볕이 기울면서 우물 턱마다 그림자가 길게 누웠다. 담 앞의 삽 자루는 여전히 서 있었다.

    소하는 기록관 앞에 서서 두 손을 올렸다. 보일 것은 네 가지였고 손이 한 가지씩 맡아야 했다. 기록관은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 기다렸다.

    첫째로 평평한 손바닥을 돌 위로 누르듯 내린 뒤 담 앞 우물을 가리켰다. 물이 끊긴 우물부터라는 뜻이었다.

    둘째로 두 손을 모아 물동이를 이는 시늉을 하다가 손을 펴 비웠다. 물 길어 가는 사람이 없는 우물이 그다음이라는 뜻이었다.

    셋째로 부엌 쪽을 가리키고 손을 뒤로 물려 등 뒤에 숨겼다. 부엌 우물은 맨 뒤라는 뜻이었다.

    넷째로 주먹 하나를 흙 위에 누르듯 내리고 그 곁의 다른 주먹을 천천히 가라앉혔다. 삽이 닿지 않은 곁 우물도 물길이 끊긴다는 뜻이었다.

    기록관은 네 손짓을 하나도 흘리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허리춤에서 못을 꺼내 우물 턱 돌 위에 댔다.

    돌 위에 홈이 세 줄 파였다. "물이 끊긴 우물부터. 쓰는 이 없는 우물이 그다음. 부엌 우물은 맨 뒤." 소하는 손끝으로 홈을 훑어 한 자도 어긋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못은 네 번째 줄 자리에서 멈춰 있었다. 소하가 주먹을 다시 내려 보이자 못끝이 그 자리에 짧은 글을 팠다.

    "잰 값이 없는 것은 올리지 못합니다." 글을 마친 기록관의 눈이 소하의 오른손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값이라면 소하에게 있었다. 어제 흙더미 곁 우물에서 잰 위쪽과 아래쪽이었다. 그것을 돌에 옮기는 일은 소하의 손이 할 몫이었다.

    소하는 못주머니의 끈을 풀고 못 한 자루를 꺼내 쥐었다. 못은 손가락 사이에 묵직하게 앉아 있는 듯했다. 못끝을 돌 위 빈자리에 대고 눌러 그었다.

    긋는 동안 손끝에 걸리는 것이 없었고 돌가루도 일지 않았다. 열여덟을 세고서야 닿음이 올라왔을 때 못은 이미 발 옆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소하는 빈 손끝으로 돌을 긋고 있었다.

    손끝 살갗이 돌결에 쓸려 벗겨졌다. 피가 맺힌 자리는 아물 기미 없이 벌어진 채 마르기 시작했다.

    돌 위에는 붉은 얼룩이 몇 줄 번졌을 뿐 새겨진 것은 없었다.

    기록관은 세 줄의 홈을 위에서 아래로 짚어 내려가다 붉은 얼룩을 그냥 지나쳐 돌 모서리에서 손을 뗐다. 새기지 못한 자리는 기록관에게 읽을 것이 없는 맨돌이었다.

    소하는 떨어진 못을 집으려고 허리를 굽혔다. 오른손은 못 옆 바닥을 두 번 짚고서야 못을 잡았다. 주머니에 도로 넣는 동안에도 손가락은 자기가 무엇을 쥐었는지 모르는 듯했다.

    은실 세 줄이 돌 턱 곁에 와서 홈 세 줄을 위에서 아래로 읽었다. 손끝이 셋째 줄 끝에서 멈췄다가 그 밑 맨돌은 스치지도 않고 넘어갔다. 소하는 그 입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받겠습니다. 첫 삽은 내일 새벽 담 앞 우물입니다." 말이 끝난 뒤에야 은실 세 줄의 눈이 소하의 벗겨진 손끝에 닿았다.

    담 앞 우물은 소하가 첫째로 손짓한 우물이었다. 물은 이미 끊겨 있었고, 그 곁에는 부엌 우물이 낮은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다.

    삽이 닿지 않은 곁 우물의 물길이 끊긴다는 줄은 돌 위 어디에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소하는 왼팔 안쪽을 짚었다. 저물녘에도 위쪽은 서른, 아래쪽도 서른이었다. 삽 한 번 들지 않은 하루가 그대로 지나갔고, 그 몫은 내일 셋에 얹혀 올 것이었다.

    소하는 돌 턱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세 줄 아래로는 새기지 못한 한 줄만큼의 맨돌이 비어 있었다. 담 앞 우물과 부엌 우물 사이에는 낮은 돌담 하나뿐이었고, 그 어디에도 표는 하나 붙어 있지 않았다. 새벽이면 그 사이로 첫 삽이 들어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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