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닿은 쪽
골목 어귀에 멜대가 먼저 와 있었다. 늙은 짐꾼이 담 밑에 쭈그려 앉아 그것을 무릎 옆에 뉘어 놓았고, 발밑 흙에는 신 자국이 여러 번 겹쳐 눌려 있었다. 소하가 문을 밀고 나오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뜻이었다. 소하는 문턱에서 멈추지 않고 그리로 걸어갔다.
멜대 한쪽에는 소금 묻은 빈 광주리가, 다른 쪽에는 부엌에 들일 물동이가 걸려 있었다. 가까이 가자 광주리 쪽에서 냄새가 먼저 왔다. 소금이 마르면서 비린 것을 안에 가두어 둔 냄새였고, 아침 찬 기운에 눌려 땅에 낮게 깔렸다. 소하는 그 냄새가 어디까지 깔렸는지 보려고 몇 걸음 물러섰다가 돌아왔다.
짐꾼이 담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소하는 입가가 보이는 쪽으로 돌아서서 섰고, 느린 하오체가 또박또박 잡혔다. "관에서 오라 하오. 오래 안 보이던 사람을 다시 불렀다 하오. 어물전 들렀다 가는 길에 전하오."
짐꾼이 멜대를 어깨에 올리려고 한쪽 끝을 들었다. 소하는 반대쪽이 내려오는 자리에 손목을 받쳤다. 대가 내려오며 손목과 나무 사이가 좁아졌고, 내리는 힘도 멈추는 자리도 짐꾼의 팔에 달려 있었다. 소하는 눈을 감았다.
걸리기는 걸렸다. 그런데 온 것은 비어 있는 광주리 쪽의 결이 아니라 물동이가 가득 차서 대가 휘던 때의 결이었다. 그 물은 어제 이 대에 걸려 있던 것이다. 소하는 손목을 뺐고, 짐꾼은 소하가 거기 있었던 것도 모르고 멜대를 어깨에 얹었다.
걸리면 늘 지금 좁아지고 있는 것의 결이 왔다. 어제 것이 온 적은 없었다. 결이 빠져나간 손목이 안쪽부터 저렸고, 저린 것이 가시는 동안 그 값이 오른손 쪽으로 한 박자 넘어갔다.
소하는 왼팔 소매를 걷고 안쪽을 짚었다. 아래쪽은 스물다섯이었다. 어제 저물녘에 받은 것과 같은 수였다. 손가락이 흰 면 위를 지날 때는 아무 수도 오지 않아 그 자리를 건너뛰어 세었다.
짐꾼이 물동이를 내려놓고 가려 해서 소하가 그 손잡이를 잡으려 했다. 손가락이 오므라들기 전에 동이가 땅에 섰다. 스물일곱을 세고서야 손바닥이 질그릇에 닿은 것을 알았고, 그때 소하의 손은 이미 빈 데를 쥐고 있었다.
짐꾼은 멜대를 고쳐 메고 어물전 쪽으로 돌아섰다. "가게 물은 오늘도 내가 구하겠소. 그쪽은 관이 먼저요." 소하는 그 입가를 끝까지 좇았으나, 돌아선 뒤에 한 마디가 더 붙은 것은 등만 보고 알았고 무슨 말인지는 받지 못했다.
관 마당에는 메운 자리들이 줄지어 있었다. 흙이 턱까지 올라온 우물마다 돌이 얹혔고, 그 돌 사이로 손을 짚고 다니는 사내가 있었다. 갈색 띠가 소매보다 깨끗했고 손톱 밑이 검었다. 소하가 처음 우물에 내려가던 무렵에 그 어깨를 짚었던 사람이었다.
흔적꾼은 메운 흙에 손바닥을 얹었다가 떼고, 몇 걸음 옮겨 다시 얹었다. 자리마다 올라오는 냄새가 달랐다. 어제 덮인 데서는 젖은 흙이 숨을 내쉬듯 냄새를 올렸고, 그보다 먼저 덮인 데서는 코에 걸리는 것이 없었다. 소하는 그 사이를 오가며 냄새로만 앞뒤를 갈라 보았다.
돌에도 손을 대 보았다. 아침에 얹은 돌은 손바닥을 붙이고 여덟을 세는 동안 온기가 다 빠졌고, 어제 얹은 돌은 대자마자 식어 있어 스물을 세어도 더 식을 것이 없었다. 그보다 먼저 얹은 것들은 손바닥에 전부 같았다. 어제와 그제까지는 소하 혼자 갈렸고, 그 앞은 돌로 갈리지 않았다.
은실 세 줄이 메운 돌 옆에 서서 소매 끝을 쥐었다. 소하는 입가가 읽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끊긴 차례를 가려 주십시오. 오늘 끊을 셋은 그 차례로 고릅니다."
흔적꾼은 손을 털고 일어섰다. "못 읽는 것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그가 손바닥을 소매에 문질렀다. "헌 옷은 먼저 입은 사람과 나중 입은 사람을 가립니다. 그런데 흙과 돌은 두 번 넘게 닿으면 먼저와 나중이 겹쳐서 제 손에는 한 번으로 옵니다."
기록관의 입술은 거의 움직이지 않아 받을 것이 없었다. 대신 못끝이 서판 위를 내려가다 집 이름 셋에서 멎었고, 멎은 자리마다 작게 점이 찍혔다. 장부에 적힌 차례였다.
소하는 그 세 이름을 보았다. 돌로 갈라 둔 것과 맞지 않았다. 맞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는 관에 넘길 것이 못 되었고, 돌이 갈라 준 것은 어제와 그제까지였다.
흔적꾼이 소하 쪽으로 걸어왔다. 그는 묻지 않고 손목을 잡아 제 손바닥 쪽으로 끌어당겼다. 끌리는 동안 소하의 손등과 그의 손바닥 사이가 좁아졌고, 당기는 힘은 그의 팔이었다. 소하는 눈을 감았다.
온 것은 한 쌍이었다. 그 손이 지금 닿은 자리와 그 직전에 닿았던 자리, 둘 중 어느 쪽이 먼저 끊겼는지가 손등으로 들어왔다. 그 앞의 것은 오지 않았다. 쌍 하나가 전부였다.
손목이 풀렸을 때 손등에는 그의 엄지가 눌린 자리가 희게 났다가 붉어졌고, 가장자리가 아물어 붙지 않았다. 오른손의 닿음은 거기서 다시 한 박자 뒤로 밀렸다. 소하는 그 손을 가슴 앞에 들어 둔 채 닿는 것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흔적꾼은 제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먼저 닿은 쪽이 이 손이 아닙니다." 그가 손바닥을 뒤집었다가 도로 폈다. "저 팔이 안 읽히는 것은 압니다. 그런데 제 것이 저 손 쪽에서 나중으로 밀려 나왔습니다."
소하는 흔적꾼의 손목을 잡아 메운 돌 하나로 끌어다 얹혔다. 얹히자마자 손등으로 쌍 하나가 왔다. 그 손을 들어 다음 돌로 옮겨 얹히자 또 한 쌍이 왔고, 앞의 쌍과 겹치는 자리가 생기며 둘이 한 줄로 이어졌다.
소하는 그 손을 돌에서 돌로 옮겨 다녔다. 흔적꾼은 끌려다니면서도 손을 빼지 않았고, 얹힐 때마다 제가 어디에 손을 댔는지를 입으로 짚었다. 소하는 그 입가를 읽으며 차례를 맞췄고, 돌이 네 번째로 넘어갈 때 오른손 손가락이 저절로 오므라들어 흔적꾼의 소매를 놓쳤다.
"이 돌이 저 돌보다 먼저입니다. 저 돌은 그 뒤이고, 장부에서 맨 앞에 적힌 집은 여기 끝에 섭니다." 흔적꾼은 제 손이 지나온 자리를 차례로 가리켰다. 그 말은 소하를 거치지 않고 관 쪽으로 곧장 갔다.
기록관이 서판을 돌려 잡았다. 점 찍어 둔 이름들 위로 못끝이 올라갔다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아래 줄까지 내려갔다. 내려간 끝에서 못이 한 번 긁혔다. 장부의 차례와 돌의 차례가 어긋난 자리였고, 그것을 긁어 낸 것은 관 자신의 손이었다.
은실 세 줄은 그 긁힌 자리를 끝까지 보고 삽 든 사람들을 돌려세웠다. "오늘 몫은 하루 미룹니다. 앞에 서는 집부터 다시 적으십시오."
그다음에 그 사람의 눈이 소하의 걷은 소매 쪽으로 왔다. 흔적꾼이 먼저 입을 움직였다. "쌍을 가른 것은 제 손이 아닙니다. 저 팔입니다." 소하는 소매를 내리지 않았다. 흰 면이 빛에 드러나 있었고 그 둘레로 붉은 면이 번져 있었다.
"어제 셈한 대로입니다. 한 사람이 제 몫과 남의 몫을 혼자 보내면 가장 큰 자리는 그 사람이 선 자리입니다." 은실 세 줄은 메운 돌에서 소하의 팔로 눈을 옮겼다. "관의 날짜는 끊긴 물길로 셉니다. 저 팔에 끊긴 물길이 들어 있으면 저 팔도 물길로 셉니다."
기록관은 돌 쪽으로 가지 않았다. 못을 허리춤에 꽂고 서판을 펴서, 끊긴 물길을 적어 온 줄 끝에 한 줄을 더했다. 소하는 그 줄이 길어지는 것을 보았다. 집 이름들 아래에 제 왼팔이 놓였다.
낮이 기울도록 삽은 흙에 들어가지 않았다. 소하는 아침에 냄새로 갈라 둔 자리를 다시 돌았다. 코에 걸리는 것이 없던 자리 하나에서 젖은 흙 냄새가 새로 올라오고 있었다. 오늘 아무도 그 위에 흙을 얹지 않았고, 얹힌 돌도 아침과 같은 자리에 있었다.
해가 담 위로 내려앉을 무렵 소하는 소매를 걷어 팔을 빛 쪽으로 돌렸다. 아침에 멎던 자리에서 오늘도 셈이 멎었다. 하루가 다 가도록 빠진 데가 없는 날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이었다.
은실 세 줄은 그것을 삽을 멈춘 값으로 읽었다. 소하는 그 입가를 반쯤 받았다. "멈추니 안 빠집니다. 미룬 몫은 내일 끊고, 그다음은…" 뒷말은 고개가 돌아가며 끊겼다.
소하는 서판을 받쳐 든 기록관의 팔꿈치 밑으로 손을 넣어 그것을 받으려 했다. 기록관이 서판을 돌 위에 내려놓는 쪽이 빨랐다. 스물아홉을 세고서야 손바닥이 빈 데를 쓸고 있는 줄 알았다.
들어오는 것은 줄지 않았다. 어제 열어 둔 자리는 오늘도 그대로였고, 소하는 그 자리를 닫으려 해 보지 않았다. 닫히지 않는다는 것은 어제 여러 가지로 해 보고 알았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마당에 서판이 돌 위에 놓인 채였다. 기록관은 못만 챙겨 문 쪽으로 갔고 삽 든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흔적꾼은 띠를 고쳐 매고 담 그늘을 따라 나갔다. 소하는 메운 돌 사이에 남아 그 서판을 보았다.
두레박에는 바닥을 긁고 올라온 물이 조금 남아 있었다. 소하는 왼손을 거기 담갔다. 감각이 없어 물이 어디까지 올라왔는지는 눈으로 보아야 했고, 손목에서 물이 멎은 것을 보고 손을 들었다.
젖은 왼손 밑에서 먹은 번지지도 긁히지도 않고 그냥 없어진다. 관 서판에서 그렇게 한 적이 있고, 그때 나무는 그저 나무로 남았다. 오늘 더해진 줄도 먹이다.
소하는 젖은 손을 서판 위로 가져갔다. 손바닥과 나무 사이가 한 뼘이 안 되게 좁아졌고, 좁힌 것이 소하 자신이어서 거기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손은 더 내려가지 않았다. 물이 손목을 타고 팔꿈치 쪽으로 흘러내리는 동안에도 집 이름들 아래의 줄은 그대로 있었다.

소하는 손을 조금 더 들어 올렸다. 물이 마르면서 왼팔 안쪽에서 냄새가 올라왔다. 흰 면이 있는 자리에서는 비 그친 뒤 돌에서 나는 것 같은 것이 났고, 그 둘레에서는 그것과 섞이지 않는 냄새가 따로 났다. 소하는 젖은 손을 서판 위에 든 채 마당에 서 있었고, 펴진 손바닥 밑으로 저녁 빛이 비껴 들어왔다.
댓글 0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구글로 로그인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줄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