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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성이 없어서 벽을 지납니다
    40화 · 2026년 10월 7일

    못은 물에 풀리지 않는다

    문 앞에 선 사람은 소하를 보고도 소하 쪽으로 몸을 돌리지 않았다. 관의 기록관이었고, 쥔 손에는 늘 그렇듯 못이 들려 있었다. 그는 문턱 앞에 서서 어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여태 관은 소하 앞에 와서 소하에게 묻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 사람은 소하 앞에서 매일 묻겠다고 못을 박아 두기까지 했다. 오늘은 소하가 문간에 서 있는 것을 분명히 보고도 그쪽을 향하지 않았다.

    소하는 입가가 보이는 쪽으로 반 걸음 비껴섰다. 거기서도 받을 수 있는 것은 절반이었다. "앞에 서는 집부터 다시 적습니다." 거기까지는 잡혔다. 그다음에 온 몇 마디는 턱이 돌아가면서 끊겼고, 끝까지 좇았지만 끝은 어머니 쪽으로 넘어가 버렸다.

    어머니는 캐묻지 않았다. 기록관이 돌아선 뒤에 문을 반쯤 당기고 소하 쪽을 보았다. "안에 있어라."

    기록관은 돌아서면서 문설주 쪽을 보았다. 거기 걸린 실에 못끝이 머물렀다가 떨어졌다. 소하가 그것으로 말을 보낸다는 것을 아는 눈이었고, 그 눈은 소하의 얼굴까지 올라오지 않았다.

    아침빛이 마당에 낮게 들어와 있었다. 밤새 젖은 흙은 짙게 가라앉았고 마른 쪽은 희읍스름하게 떠 있었다. 소하는 둘이 갈리는 선을 눈으로 따라가다 왼쪽 눈을 감았다. 그쪽을 감아야 색이 온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그랬다.

    담 밑 돌에는 밑동에만 테가 둘려 있었다. 테 안쪽이 바깥보다 어두웠고, 어두운 만큼이 간밤에 물이 닿은 높이였다. 소하는 그 높이를 손가락으로 재어 보고 돌아섰다.

    문설주의 실에도 색이 있었다. 물을 들였다가 바랜 자리가 아랫단에 남아 위쪽보다 누르스름했다. 소하는 그 아랫단을 쓸어 보고 손을 거두었다.

    어머니가 솥을 내려놓는 떨림이 마루를 타고 발바닥으로 왔다. 짧게 끊겼다 이어지는 간격으로 소하는 어머니가 부엌 어디쯤에 있는지 짐작했다. 떨림이 문턱 쪽으로 옮겨 오지는 않았다.

    소하는 왼팔 안쪽을 짚었다. 흰 면을 지나는 동안 셈이 한 번 끊겼다가 이어졌고, 끊긴 자리를 넘겨 받아 든 수가 어제보다 적어서 처음부터 다시 세어야 했다. 두 번째도 같았다. 아래쪽으로 스물셋이었다.

    어제 저물녘에는 스물다섯이었다. 그 사이에 삽은 한 번도 흙에 들어가지 않았다. 관은 어제 몫을 미뤘고 밤에는 마당에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둘이 빠져 있었다.

    소하는 실을 집어 다음 매듭을 쥐었다. 앞서 쥐었던 실의 닿음은 그때서야 손끝에 올라왔다. 그 어긋남이 스물여덟이었다.

    소하는 문을 밀고 나갔다. 뒤에서 어머니가 무어라 했는데 그때 이미 등이 돌아가 있어서 받지 못했다.

    관 마당에는 메운 자리마다 돌이 얹혀 있었다. 아침에 올린 돌은 밑동이 젖어 어두운 테를 두르고 있었고, 며칠 지난 돌은 위아래가 한 빛이었다. 소하는 걸어 들어가면서 테 있는 돌과 테 없는 돌을 눈으로 갈라 두었다.

    아직 돌이 안 얹힌 자리도 여남은 남아 있었다. 관이 아직 이어져 있다고 보는 자리들이다. 소하가 매일 손을 얹어 차례로 가려 온 것이 그 자리들이었다.

    은실 세 줄이 마당 가운데에 서 있었다. 소매 끝을 쥐고 집 이름 셋을 불렀다. 소하는 입가가 잡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 끊을 자리입니다. 어제 미룬 몫까지 셋입니다."

    기록관의 서판에는 그 이름들이 이미 적혀 있었다. 못끝이 지나간 자리마다 점이 찍혀 있었고 먹은 말라 있었다.

    어제는 소하가 짚는 동안 그 점이 찍혔다. 오늘 것은 소하가 마당에 들어서기 전에 적혀 마를 데까지 말라 있었다. 마르면서 가장자리가 나무 결을 따라 번졌고 가운데만 아직 윤이 났다.

    소하는 기록관의 입가를 찾았으나 그 사람은 고개를 숙인 채였다. 대신 못끝이 서판 귀퉁이를 짧게 긁고 소하 쪽으로 돌아왔다. "규정에 없습니다."

    소하는 돌이 안 얹힌 자리 쪽으로 걸어갔다. 삽 든 사람들이 소하와 그 자리들 사이로 들어와 섰다. 소하가 팔 밑으로 몸을 낮추자 그쪽에서 어깨를 내려 길을 도로 막았다. 반대쪽으로 돌자 그쪽도 따라 돌았다.

    소하는 손짓으로 자리를 가리켰다. 은실 세 줄은 그 손을 보고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턱으로 삽 든 사람들에게 선을 일러 주었을 뿐이고, 소하는 메운 자리 바깥으로 밀려났다. 우물을 에워싸고 치우듯 그렇게 세워 두었다.

    밀려난 가장자리에도 돌이 있었다. 밤 사이 메운 흙이 내려앉으면서 그 돌이 한쪽으로 기울어 가라앉고 있었다. 돌 밑과 땅 사이가 손이 들어갈 만큼 벌어져 있었다.

    소하는 그 틈에 오른손 손등을 받쳤다. 돌 밑과 손등 사이가 좁아졌고, 내려앉는 것도 멈추는 자리를 정하는 것도 흙이었다. 눈을 감았다.

    걸렸다. 그리고 둘이 왔다.

    앞에 온 것은 이 돌이 놓이기 전의 결이었고, 뒤에 온 것도 같은 결이었다. 소하는 그것이 서로 다른 두 자리인지, 한 자리를 두 번 받은 것인지 가리지 못했다.

    소하가 왼팔로 흘려보낸 것은 저쪽에 닿았다가 한 박자 늦게 그대로 돌아온다. 그것과 저쪽에서 처음 오는 것은 여태 서로 달랐다. 손등을 빼고 나서 소하는 제가 받은 것이 어느 쪽인지 알아보려 했다. 알아보지 못했다.

    손등은 돌에 밀려 한 줄로 붉었다. 거기서 오른손의 닿음이 두 박자 뒤로 밀렸다. 손가락을 폈다 쥐는 동안 폈던 것이 나중에 올라와서 소하는 쥐었던 것을 다시 쥐었다.

    소하는 손등을 들여다보려다 그만두었다. 사이를 보면 사이가 굳는다. 보지 않고 다시 넣어도 같은 것이 올 것 같았고, 같은 것이 올지 아닐지조차 이제는 장담할 수 없었다.

    삽 든 사람들이 돌을 들어 올렸다. 어제 다시 적으라는 말이 있어서 자리를 고쳐 놓는 중이었다. 소하는 막는 선 바깥에 있는 그 돌 쪽으로 가서 내려놓는 자리에 오른손 손날을 걸쳤다.

    돌이 내려왔다. 내리는 힘은 사람들 팔에 있었고 멈추는 자리는 땅에 있었다. 소하는 눈을 감았다.

    온 것은 한 쌍이었다. 이 돌이 지금 놓인 자리와 직전에 놓였던 자리, 그중 어느 쪽이 먼저 끊겼는가. 그것만 왔다. 먼저인 쪽은 지금 놓인 자리였다.

    돌이 손날을 눌렀고 소하는 손을 뺐다. 살이 밀린 자리에 붉은 것이 비쳤다. 색이 오는 눈으로 보니 그 속은 못자국 속과 같은 빛이었다. 아무는 데 걸릴 것 같지 않았다. 여덟째가 되었다.

    오른손의 닿음은 또 한 박자 물러났다.

    소하는 그 쌍을 서판의 점 셋과 맞춰 보았다. 지금 놓인 자리는 장부에서 뒤쪽에 적힌 집이었고, 직전 자리가 앞쪽이었다. 관의 차례는 뒤집혀 있었다.

    차례가 뒤집혔다면 오늘 부른 셋 중에 아직 안 끊긴 것이 섞여 있다. 그것은 짚어 봐야 알고, 짚는 자리는 막혀 있었다.

    소하는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았다. 관은 오늘 아직 저쪽과 이어져 있는 자리를 끊는다. 밤에 둘이 빠진 것은 아무도 모르는 채 남고, 그 둘을 세고 있는 것은 소하의 왼팔뿐이다.

    들어가서 짚으면 가려낸 것이 소하가 된다. 관이 그 셈을 어디로 가져갈지도 소하는 알고 있었다. 어제 서판에 놓인 줄이 어느 쪽으로 자라는지 보았기 때문이다.

    소하는 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삽 든 사람이 팔을 뻗었는데, 은실 세 줄이 그쪽을 보았고 팔이 내려갔다. 막는 것이 오늘은 관에 이롭지 않다는 뜻이었다.

    소하는 부른 셋 가운데 두 자리에 차례로 손을 얹었다. 손바닥 밑에서 좁아지는 것이 아직 있었다. 손을 떼고 손가락 둘을 펴 보였다.

    흙으로 메우고 돌을 얹은 우물들이 줄지어 있는 관 마당에서, 소매를 걷은 소하가 돌 사이를 건너며 몸을 숙여 맨손을 짚고 있고, 삽을 든 사람들이 일을 멈춘 채 서 있고 관복 입은 두 사람이 멀찍이서 보고 있다
    들어가서 짚으면 가려낸 것이 소하가 된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은실 세 줄이 두 자리를 번갈아 보았다. 삽 든 사람들이 서로를 보았다. 소하가 짚은 둘은 오늘 끊기로 적힌 자리였다.

    은실 세 줄이 소하 쪽으로 돌아섰다. "둘이 아직 이어져 있다면 밤에 끊긴 것은 다른 둘입니다. 삽은 마당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둘이 끊겼고, 그 수를 세고 있는 것은 저 팔입니다."

    소하는 그다음 말을 받지 못했다. 고개가 기록관 쪽으로 돌아가면서 입가가 그늘로 들어갔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끝난 뒤였다.

    기록관이 서판을 폈다. 집 이름들 아래에 어제 더해진 줄이 그대로 있었다. 소하의 왼팔이었다.

    그는 서판을 들고 마당 한쪽 우물 턱 돌로 갔다. 관이 제 손으로 오늘부로 이 손끝이 잰 것을 증거로 삼는다고 새겨 둔 돌이었다. 못을 고쳐 쥐고 그 줄 아래에 서판의 끝줄을 옮기기 시작했다.

    소하는 그 서판을 가로채려고 손을 뻗었다. 손이 나간 것은 못끝이 돌에 닿기 전이었는데, 손끝에 나무가 닿는 느낌이 올라온 것은 못끝이 이미 돌에 들어간 뒤였다. 기록관은 서판을 넘겨주지 않았고 소하의 손은 빈 데서 멎었다.

    못끝이 들어간 자리마다 돌 속이 드러났다. 겉은 비에 씻겨 거무스름한데 새로 파인 데는 속살이 희고 조금 누랬다. 소하는 색이 오는 눈으로 그 희고 누런 줄이 길어지는 것을 끝까지 보았다.

    기록관의 팔은 쉬지 않았다. 못을 쥔 손가락 마디가 희게 섰다가 돌아왔고, 돌아올 때마다 손등의 힘줄이 다시 솟았다. 그 팔은 소하 쪽으로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못은 쉬지 않았다. 돌가루가 발밑으로 떨어져 젖은 흙 위에 희게 앉았다. 소하는 그 가루를 신코로 밀어 보았다. 흙에 섞이자 희던 것이 금세 흙빛을 따라갔다.

    어제 그 줄은 먹이었다. 오늘 든 것은 먹이 아니었고, 물을 부어도 풀릴 것이 없었다.

    은실 세 줄이 삽 든 사람들을 돌려세웠다. "저 둘은 오늘 끊지 않습니다. 밤에 끊긴 둘로 갈음하고, 오늘은 하나만 끊습니다. 어제 미룬 몫은 이것으로 갚습니다."

    삽이 한 자리에서만 흙에 들어갔다. 해가 기울 때까지 그 자리뿐이었다.

    소하는 마당 가장자리에서 왼팔 안쪽을 짚었다. 받아 든 수는 아래쪽으로 스물둘이었다.

    오른손의 어긋남은 서른하나가 되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소하는 그 턱 돌을 지나쳤다. 저녁빛이 비껴들어 파인 줄 속이 낮보다 더 희게 떴다.

    마루 바닥에 실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었다. 낮 동안 감고 풀기를 되풀이했다는 뜻이었다. 소하는 그것을 손바닥으로 쓸어 모아 문턱 밖으로 내보냈다.

    바깥은 벌써 어두워져 마당의 흙이 다시 한 빛으로 붙어 있었다. 색이 오는 눈을 떠 두고도 젖은 데와 마른 데가 갈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마루 끝에 앉아 실을 감고 있었다. 소하가 들어오자 감던 것을 멈추고, 매듭 없는 실 끝을 당겨 소하 쪽으로 밀어 놓았다. 그러고는 손을 거두었다.

    소하는 실 끝을 받아 쥐었다. 매듭을 지으려고 손가락을 모았다. 실은 벌써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는데 그 느낌은 아직 올라오지 않았다. 고리가 느슨하게 풀렸다.

    지으려는 손과 지어지는 자리가 따로 놀았다. 실은 벌써 저만치 가 있는데 손끝은 지나간 자리를 쥐고 있었다. 소하는 눈으로 보지 않고 손가락만으로 다시 해 보았다. 그러자 조금 나았다.

    다시 모았다. 이번에는 걸렸다. 어머니는 실을 대신 당겨 주지 않았고 캐묻지도 않았다. "손 씻어라."

    소하는 실을 제 쪽으로 더 끌어왔다. 그리고 매듭을 지었다. 하나를 짓고, 그 밑에 또 하나를 짓고, 그 밑에 다시 하나를 지었다.

    셋째 매듭 밑에 소하는 손가락을 다시 모았다. 넷째였다. 어머니의 실에는 넷을 가리키는 말이 없었고, 소하는 그것을 알면서 고리를 걸었다.

    손끝이 늦어 두 번 풀렸다. 세 번째에 매듭이 섰다. 소하는 실을 어머니 무릎 쪽으로 밀어 놓고 손을 뗐다.

    어머니가 실을 받아 손바닥에 올려 매듭을 짚어 내려갔다. 셋째에서 손이 한 번 멎었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넷째까지 내려갔다. 그 손은 넷째를 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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