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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성이 없어서 벽을 지납니다
    41화 · 2026년 10월 8일

    더 센 하나

    밤에 마당은 발밑으로만 움직였다. 낮에 부은 물이 빠지면서 메운 흙이 그만큼씩 내려앉았고, 얹어 둔 돌이 한쪽으로 기울었다가 멎었다가 한참 뒤에 다시 조금 기울었다. 담 밖에 서 있어도 그 떨림이 신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여태 소하는 이것을 수로만 알았다. 아침에 왼팔을 짚으면 간밤에 몇 자리가 비어 있었고, 비는 동안 마당에 사람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오늘은 그 위에 제 발로 서 보려고 나왔다.

    어머니가 문을 반쯤 열고 안쪽에 서 있었다. 소하가 돌아보자 문틀을 짚고 몸을 내밀었다. "멀리 가지 마라."

    이슬이 벌써 앉아 소매 끝이 무거웠다. 담 그늘을 따라 걷자 신코가 젖어 흙이 들러붙었고 몇 걸음마다 발을 털어야 했다. 목덜미에도 젖은 것이 앉았는데 땀처럼 안에서 번지지 않고 바깥에서 얹혔다.

    담 모퉁이에 사람이 서 있었다. 옷깃을 오른쪽으로 겹쳐 여민 사람이었고, 무릎을 세우고 앉던 버릇은 보이지 않았다. 소하는 달빛이 비껴드는 쪽으로 돌아서서 그 얼굴에 제 눈높이를 맞췄다.

    무명이 달빛 쪽으로 반 걸음 들어섰다. 그래야 소하가 받는다는 것을 아는 걸음이었다. "우리 쪽 밤은 마르오. 이슬이라는 것이 없소. 아침에 풀이 젖어 있으면 거기서 누가 울고 갔다고들 하오."

    소하는 메운 자리 쪽으로 턱을 들어 보였다. 무명이 그쪽을 한참 보다가 발끝으로 땅을 눌렀다.

    "여기서 저 돌까지가 어제는 한 걸음 더 멀었소." 달빛이 옅어 말끝은 반쯤 떨어져 나갔다. 무명은 걸음으로 재는 사람이 아니다. 걸음은 소하에게 보이려고 꺼내 쓰는 말이었다.

    소하는 무명의 손목을 잡아 내려앉고 있는 흙 위로 끌어다 짚게 했다. 무명은 손을 빼지 않고 손바닥을 땅에 붙인 채 가만히 있었다.

    "이 밑은 어제보다 한 자리만큼 가깝소." 손바닥이 땅에서 떨어졌고, 그 손은 다른 데를 더 짚으러 가지 않았다. "그 이상은 모르오. 나는 이제 세지 않소."

    소하는 흙더미 앞에서 신을 벗어 옆에 두었다. 신을 신은 채로 땅에 맞붙는 것은 신 바닥이다. 그 사이로는 여태 아무것도 온 적이 없었다.

    맨발로 디디자 이슬이 먼저 올라왔다. 소하는 기울어 가는 흙더미 가운데로 올라섰다. 아래가 비어 있는 자리라 발이 바로 꺼졌다. 얼마나 꺼질지는 흙이 정하고 있었다.

    달빛이 든 밤의 관 마당. 흙으로 메우고 납작한 돌을 얹은 우물들이 줄지어 있고 몇몇 돌은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맨발의 소하가 가운데 흙더미 위에 올라서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있고,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옷깃을 오른쪽으로 여민 사람이 몸을 낮춰 한 손바닥을 땅에 붙이고 있다
    밤에 삽이 없는데도 자리가 빠지는 것을 소하가 처음으로 제 발로 확인하러 나왔다.

    소하는 눈을 감으려다 멈췄다. 감으면 제가 흘려보낸 것이 한 박자 늦게 되돌아오는 것과 저쪽에서 처음 오는 것이 같이 들어온다. 어제 그것을 못 가렸다. 그렇다고 뜨면 그 사이가 눈에 잡힌 크기로 굳어 버린다. 어느 쪽이든 골라야 하는데 고를 수 있는 쪽은 한쪽뿐이었고, 소하는 눈꺼풀을 내렸다.

    발바닥으로 올라온 것은 결이었다. 한 쌍이 먼저 오고, 반 박자 뒤에 또 한 쌍이 왔다. 앞의 쌍은 끊긴 자리와 그 옆자리의 선후였고, 뒤의 쌍도 모양이 그랬다.

    소하는 그 둘을 겹쳐 보았다. 겹치는 데가 있었으나 끝이 조금 어긋났고, 어긋났으면 서로 다른 자리라는 뜻이었다. 여태 그렇게 가려 왔다. 밤 사이 끊긴 것은 둘이었다.

    발을 뺐다. 흘러나가는 것이 오늘은 금세 그치지 않았다. 왼팔 안쪽이 길게 비워지는 동안 소하는 숨을 세면서 기다렸고, 다 나간 뒤에는 머릿속 어디가 헐거웠다. 무엇이 헐거운지는 그때 짚이지 않았다.

    오른손은 이 일에 쓰이지 않았다. 빠져나간 자리는 왼팔 안쪽이었고, 그쪽에서 나간 것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소하는 손가락 둘을 펴서 무명 쪽으로 들었다. 무명의 눈이 펴진 손가락에 멎었다가 제 손바닥으로 내려갔다.

    "나는 세지 않소. 가까운 것만 아오. 한 자리요." 무명이 손바닥을 옷자락에 문질렀다. "나는 여섯 해 동안 발밑에서 소리가 난 것만 세어 놓고 그것을 남은 널이라 불렀소. 세는 것을 그만두니 그 다리가 아직 거기 있소."

    소하는 다시 흙더미로 올라갔다. 이번에는 눈을 뜬 채로 디뎠다. 발밑이 꺼지는 것을 보면서 꺼지는 만큼을 눈으로 정해버리면 그 크기로 굳고, 굳은 사이로는 뒤늦게 돌아오는 것이 끼어들 데가 없다.

    굳었다. 되돌아오는 것도 없었다. 대신 결이 오지 않았다. 발바닥에 올라온 것은 흙이 한 뼘의 반쯤 내려앉았다는 것뿐이고, 그것이 어느 우물 쪽에서 내려앉은 것인지는 어디에도 실려 있지 않았다.

    소하는 발을 빼고 흙더미 밖으로 내려섰다. 발가락 사이까지 들어온 흙이 식어 가면서 발바닥을 죄었다. 왼팔 안쪽이 두 번째로 비워졌고, 이번에는 비워지는 동안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걸러내려면 굳혀야 하고, 굳히면 가릴 것이 남지 않는다. 오늘 쓸 수 있는 셈은 처음 것뿐이었다.

    여태 수가 어긋났을 때 틀린 쪽은 소하가 아니었다. 소하는 신을 꿰어 신고 제가 센 것을 쥔 채 담 안쪽으로 돌아섰다.

    아침에 왼팔 안쪽을 짚자 위쪽이 스물이었다. 사흘 전에 스물넷이던 것이다. 아래쪽이 그 수에 한 칸까지 따라붙어 있었다.

    손가락이 흰 면에 올라서자 셈이 끊겼다. 끊긴 자리 너머로 넘겨 보았으나 아래쪽은 올라오지 않았다. 다시 해도 같았고, 아침에 소하가 가진 아래쪽 수는 간밤에 발바닥으로 센 것뿐이었다.

    관 마당에는 삽이 담에 기대어 서 있었다. 돌이 안 얹힌 자리는 여남은에서 더 줄어 있었고, 소하는 막는 선이 서기 전에 안으로 들어섰다.

    소하는 기록관 앞에 서서 오른손을 들었다. 손가락 둘을 펴 보이고, 그 손을 마당 바깥쪽 흙더미 쪽으로 돌렸다. 편 손가락이 펴진 채로 있는지는 손끝으로 알 수 없었다. 서른을 세고서야 둘째 마디가 당겨지는 느낌이 올라왔고, 그때 보니 첫째 손가락이 반쯤 접혀 있었다. 소하는 왼손으로 그것을 밀어 세웠다.

    기록관의 눈이 펴진 두 손가락에서 밤에 발을 디뎠던 흙더미 쪽으로 옮겨 갔다.

    기록관이 서판을 펴 들고 왔다. 그는 소하의 얼굴 쪽으로 눈을 올리지 않고 금만 보았다. 못끝이 서판 위를 내려가다 멎었고 거기에 짧은 홈이 났다. "간밤에 둘입니다."

    은실 세 줄이 메운 돌 옆에 서 있었다. 소하는 그 사람의 턱이 그늘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입가를 받았다. "어제는 밤에 끊긴 둘로 갈음했습니다. 오늘도 둘이면 갈음할 것이 아니라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소하의 오른손이 저도 모르게 내려갔다. 편 것을 도로 접으면 아직 무를 수 있었다. 그런데 수는 이미 서판에 올라가 있었고, 서판의 것은 소하의 젖은 왼손이 닿아야 없어지며 오늘 그 손은 마른 채였다.

    은실 세 줄은 메운 자리들을 눈으로 훑어 내려갔다. "오늘은 미루지 않습니다. 셋을 끊습니다."

    삽이 맨 앞 자리로 갔다. 소하가 그쪽으로 몸을 돌리자 삽 든 사람들이 사이로 들어섰고, 소하는 가장자리까지 밀려났다.

    삽이 맨 앞 흙을 떠낼 때 은실 세 줄이 멎었다. 소매 끝을 쥔 손이 쥔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숨이 길게 들어갔다 나오는 동안 아무 데도 보지 않았다.

    그 사람이 소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하는 턱이 돌아오는 속도에 눈을 맞췄다. "쉰넷을 두 번 세었습니다. 두 번째가 적었고, 적은 쪽을 제가 적어 올렸습니다." 숨을 고르는 동안에도 그 얼굴은 소하 쪽에 그대로 있었다. "모아 두면 저쪽이 한 번에 가져갈 자리가 된다는 것은 압니다. 그것도 제가 적었습니다."

    삽이 흙에 들어갔다.

    맨 앞 자리가 끊겼다. 삽이 다음 자리로 옮겨 가는 동안 소하는 가장자리에 앉아 왼팔 안쪽을 짚었다.

    흰 면을 지나는 동안 셈이 또 끊겼는데, 이번에는 끊긴 자리 너머가 올라왔다. 받아 든 수는 소하가 셈해 둔 것보다 하나 많았다.

    소하는 처음부터 다시 짚었다. 같았다. 간밤에 빠진 것이 둘이었다면 이 자리에 와 있을 수가 아니었다. 빠진 것은 하나였다.

    발바닥으로 온 두 쌍 가운데 나중 것은 저쪽에서 처음 온 것이 아니었다. 소하가 왼팔로 흘려보낸 것이 한 박자 늦게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고, 끝이 조금 어긋났던 것은 돌아오는 길에 어긋난 것이었다. 소하는 그것을 새것으로 세어 하나를 더 얹었다.

    다음 자리에 삽이 들어가 있었다. 소하는 일어나 막는 선 쪽으로 갔다. 삽 든 사람이 팔을 뻗기 전에 은실 세 줄이 먼저 그쪽을 보았고, 이번에는 팔이 내려가지 않았다.

    소하는 손바닥을 들어 아래로 눌러 보였다. 그만두라는 뜻으로 쓸 수 있는 손짓은 그것뿐이었다. 기록관의 못끝은 서판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은실 세 줄은 삽 쪽을 보았다. 간밤에 둘이 빠졌다는 수를 마당에 가져온 것이 소하였다.

    마지막 자리까지 가는 데 반나절이 걸리지 않았다.

    소하는 제 셈을 처음부터 되짚었다.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보려면 머릿속에 오래 두었던 것들을 차례로 꺼내 맞춰 봐야 했다. 가장 오래된 것부터 꺼냈다.

    우물은 열여덟 자였다. 소하는 줄을 쥐고 그보다 더 내려갔고, 아래에서 올라온 목소리가 둘 사이의 차를 되뇌었다. 그다음에 여울의 자 수가 넘어왔다. 제 줄이 끊어진 자리였다.

    자리는 그대로 있었다. 수가 없었다.

    소하는 그 자리를 다시 열었다. 줄로 내려간 자 수도, 두 사람 사이의 차도, 여울의 자 수도 올라오지 않았다. 열여덟이라는 우물 깊이만 남아 있었고 그것은 관 장부에도 적혀 있는 수였다.

    관 기록에 없는 것이 그것들이었다. 적어 둔 데가 없어서 소하는 그날부터 그것을 머리로만 들고 다녔다. 세면 머릿속에 남고 남으면 흘러가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간밤에 흘려보내는 길이 커졌을 때 남아 있던 쪽도 같이 갔다.

    실로 매듭을 지어 간수할 수는 없었다. 매듭은 다시 세는 순간 잊힌다. 못으로 새기면 관의 돌에 들어가고, 돌에 든 것은 소하 것이 아니게 된다.

    소하는 오른손 끝을 젖은 흙에 대었다. 긋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가 떼었다.

    삽이 마지막 자리에서 올라왔다. 마당에 돌이 안 얹힌 자리는 이제 손으로 꼽을 수 있었다.

    해가 담 위로 내려앉을 무렵 기록관이 우물 턱 돌 앞에 섰다. 어제 새긴 줄 아래에 홈이 늘어 있었다. 소하는 그 앞을 지나가면서 파인 자리에 들어찬 저녁빛을 보았다.

    소하는 마당 가장자리에 앉아 소매를 걷었다. 위쪽을 먼저 짚을까 하다가 아래쪽부터 짚어 내려갔다.

    받아 든 수는 열여덟이었다. 어제 저물녘이 스물둘이었고 간밤에 하나, 낮에 셋이면 맞는 수였다.

    소하는 손을 떼지 않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짚었다. 흰 면에서 또 끊겼고, 끊긴 데를 넘겨 받아 든 수는 열일곱이었다.

    오른손 끝으로 왼팔을 눌러 자리를 표시해 두려 했으나 누른 느낌은 손을 뗀 뒤에 왔다. 서른둘을 세고서야 올라왔다.

    소하는 손가락을 팔꿈치 안쪽에 도로 올려놓았다. 세 번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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