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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성이 없어서 벽을 지납니다
    45화 · 2026년 10월 15일

    코에 든 넷

    삽 든 사람들이 오기 전에 소하는 반쯤 파인 자리 안에 들어가 있었다. 밤 사이 물이 들어와 무릎까지 찼고, 물낯에서 올라오는 것이 밤새 덮어 둔 젖은 삼베를 걷었을 때 나는 냄새였다. 눅눅하고 끝이 시큼했다. 마당 흙 냄새와는 아예 다른 데서 오는 것이었다.

    소하는 물속에 선 채로 왼팔 안쪽을 짚었다. 짚었다는 것이 서른다섯을 세고서야 손에 올라왔다. 간밤에 하나가 걷힌 수다.

    팔꿈치 안쪽부터 받았다. 아홉이었다. 어제도 아홉이고 그저께도 아홉이다. 손가락을 떼지 않고 한참 두었는데 수는 손가락 밑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흰 면 위로 올려 보내니 거기서는 다섯이 왔고, 이쪽은 이제 한 손에 다 든다.

    소하는 오른손을 물낯 위로 내렸다. 손이 물로 들어가는 것은 눈에 보이는데 닿았다는 것은 손목이 다 잠기고 나서 왔다. 결은 오지 않았다.

    소하는 손을 들어 올렸다가 아까보다 빠르게 내렸다. 물낯이 손보다 먼저 올라와 손가락 사이로 들어왔다. 이번에도 없었다. 사이가 남아 있는 동안에 오는 것인데, 그 동안이 손에 올라오기 전에 이미 끝나 있었다.

    여태 늦어진 것은 받고 난 뒤였다. 받는 자리에 끼어든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빨리 닫히는 사이는 이제 소하가 못 쓴다.

    소하는 구덩이 벽에 등을 대고 무릎을 세워 팔꿈치를 괴었다. 그러고는 손바닥과 물낯 사이를 눈으로 들여다보면서 손을 내리기 시작했다. 한 뼘에서 반 뼘으로, 반 뼘에서 손가락 마디만 한 데로. 좁히는 속도를 제가 쥐고 있으니 얼마나 남았는지를 눈으로 셀 수 있었다.

    관 마당의 반쯤 파인 흙구덩이 안. 해진 옷의 소하가 구덩이 벽에 기대 무릎을 세우고 앉아, 발목까지 찬 고인 물 위로 오른손 손바닥을 펴서 천천히 내리고 있다. 손과 물낯 사이가 손가락 마디만큼 남았고 소하는 그 사이를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구덩이 위쪽 담에는 날이 선 삽 한 자루가 기대어 세워져 있다
    좁히는 속도를 제가 쥐고 있으니 얼마나 남았는지를 눈으로 셀 수 있었다.

    물낯에 거의 닿을 데까지 가는 동안 결이 들어왔다. 한 덩이로 오지 않았다. 앞엣것이 먼저 들어오고 조금 뒤에 뒤엣것이 들어왔다. 어제 두 손 사이에서는 겹쳐서 한꺼번에 왔고 그게 끝이었는데, 오늘은 손을 늦추는 만큼 뒤엣것이 뒤에 섰다.

    소하는 손을 더 늦췄다. 이쪽 셈으로 아직 서 있는 아홉이 차례로 들어왔다. 마당 담 밑에 선 것은 그 가운데 몇뿐이다. 여덟에서는 결이 바닥에서 들려 있었다. 붙은 데 없이 혼자 떠 있는 것의 결이었다.

    남은 하나만 달랐다. 그것은 아직 바닥에 붙어 있었는데 가장자리가 들려 있었고, 들린 데가 소하가 세고 있는 동안에도 조금 더 벌어졌다. 그것이 떨어지면 떠 있는 것들이 그것을 기다릴 까닭이 없다.

    물에서 손을 뺐다. 손끝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은 보이는데 떨어져 나간 데는 손에 오지 않았다. 소하는 가장자리를 잡고 기어 올라와 왼팔 안쪽을 다시 짚었다. 손가락 끝으로는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다. 손등을 통째로 팔에 붙이고 한참 눌러서야 수가 왔다. 물에 들어가기 전에는 손가락만으로 왔다.

    소하는 마당을 되짚어 나가 집으로 돌아갔다. 알아낸 것을 담아 보낼 데가 관 안에는 없었고, 받을 수 있는 손은 아궁이 앞에 있었다.

    어머니는 불을 지피고 있었다. 실은 그 손가락에 걸린 채였다. 소하는 실 끝을 당겨 고리를 새로 지었다. 그러고는 어머니 손을 끌어다 새 고리에 얹고, 제 손으로 땅바닥을 쓸어 모아 통째로 들어 올리는 시늉을 했다. 흩어져 있던 것이 모여서 한꺼번에 간다는 뜻으로 지은 것이었다.

    어머니가 고리를 짚고 소하를 보았다. 그러고는 아궁이 쪽으로 손을 뻗어 불을 덮어 끄는 시늉을 했다. 멈춘다는 뜻으로 받은 것이었다.

    소하는 다시 했다. 쓸어 모으는 손을 더 넓게 돌리고 들어 올리는 데를 더 빠르게 했다. 어머니는 이번에 제 가슴을 짚었다. 받아 간 뜻이 또 달랐다.

    소하는 새로 지은 고리를 풀었다. 풀고 나서 넷째를 짚어 보이자 어머니의 손이 바로 담 너머를 가리켰다. 넷까지는 어긋나는 데가 없다. 어머니가 실을 제 손가락에 도로 감고 소하의 손등 위에 손을 얹었다. "넷까지만 해라." 그러고는 부지깽이를 아궁이에 세워 놓고 일어섰다. "해 떴다. 가라."

    은실 세 줄은 담 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흙을 한 줌 쥐어 코 앞까지 들어 올린 채였다. 어제 그 사람은 이 흙 앞에 오래 서 있지 못한다고 하고 돌아섰다. 오늘은 돌아서지 않았다.

    소하는 그 등 뒤로 가 섰다. 쥔 것을 놓고 옆자리로 옮겨 가 또 쥐었다. 들이마시는 동안 어깨가 올라갔다 내려왔고, 자리마다 올라가 있는 길이가 같았다. 소하는 그것으로 셈을 잡았다.

    기록관이 서판을 펴 들고 뒤를 따라다녔다. 자리마다 못끝이 금을 넣었다. 못끝이 지나간 데서 먹 냄새가 올라왔는데 서판에 먹을 새로 먹인 지 얼마 안 된 것이었다. 소하가 어깨 너머로 본 금들은 어제부터 비워 둔 칸 아래가 아니라 그 옆에 새로 낸 줄에 쌓이고 있었다.

    소하는 담 쪽 구석으로 먼저 가 끝자리에 올라섰다. 발을 얹자 흙이 발 모양대로 내려앉았다가 더 내려가지 않았다. 밑에서 받쳐 주는 것이 없는 흙이 그렇게 앉는다.

    은실 세 줄이 그 자리까지 왔다. 소하는 비키지 않았다. 그 사람은 소하의 신 옆에서 흙을 쥐어 코 앞에 들었고, 어깨가 올라가 있는 길이는 다른 자리와 같았다.

    소하는 제 발을 들어 그 손 위로 밀어 놓았다. 발바닥에 붙어 있던 흙이 손등에 떨어졌다. 은실 세 줄은 손을 빼지 않고 떨어진 것까지 같이 코 앞에 들었다. 어깨가 올라가 있는 길이는 또 같았다. 쥐었던 것을 놓고 다음 자리로 갔다. 그 자리에 들어간 금도 옆자리들 것과 길이가 같았다.

    우물 턱 돌 앞에 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소하는 입이 보이는 쪽으로 돌아가 섰다. 은실 세 줄이 돌의 맨 아래 줄에 손가락을 얹고 있었고, 말이 시작될 때 아랫니가 먼저 드러났다.

    "다시 세는 일은 끝냈습니다." 줄 위의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제까지 꼽던 것보다 많습니다. 아직 서 있는 것이 생각보다 남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몫은 없습니다." 그 사람이 삽 쪽으로 턱을 들었다. "다시 센 수가 설 때까지 기다립니다. 어제 빈 데를 팠습니다. 그런 날을 또 만들지 않겠습니다."

    삽 든 사람들이 연장을 내려놓고 담 그늘로 들어갔다. 소하는 그쪽으로 따라갔다가 멈춰 섰다. 오늘 소하가 바라는 것은 삽이 멎는 일이 아니었고, 삽이 멎은 날에 소하가 할 수 있는 일은 여태 없었다.

    소하는 돌아와 은실 세 줄 앞에 섰다. 왼손 엄지와 검지를 맞붙여 고리를 짓고, 그 고리를 담 너머로 밀어 보냈다. 실이 없으니 손가락을 떼면 고리도 없어졌다.

    그래도 소하는 거듭했다. 고리를 지은 손 아래로 다른 손을 넣어 담 밑을 쓸어 모으는 시늉을 하고, 모은 것을 통째로 들어 올려 담 너머로 넘겼다. 마지막에는 들어 올리는 데를 손목이 꺾일 만큼 빠르게 했다.

    은실 세 줄은 그 손이 멎을 때까지 보고 있었다. "저 손이 무엇을 세는지는 압니다. 몇을 세었는지를 못 읽습니다."

    "읽을 사람은 어제 제가 안으로 들였습니다." 그 사람의 눈이 안채 문 쪽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들이라고 한 것도 저입니다. 그 손이 지금 어디 있는지도 압니다."

    소하는 안채 문을 보았다. 문은 닫혀 있었고 그 앞에 사람이 서 있었다.

    소하는 기록관 쪽으로 가 서판에 손을 뻗었다. 아침부터 그은 금들을 손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훑었다. 길이가 다 같았다. 소하는 제 발을 들어 밑창에 남은 흙을 보이고, 그 발로 제가 올라섰던 자리의 금을 짚고, 다시 끝까지 훑었다. 흙을 더한 데도 같고 안 더한 데도 같았다.

    소하는 두 손을 벌려 그 사이를 고정한 채 들어 보였다. 자리를 옮겨 가며 같은 너비로 거듭 들었다. 어느 자리에 코를 대도 그만큼이 더 들어 있다는 뜻이었다.

    은실 세 줄이 아침부터 들고 다니던 흙 뭉치를 돌 위에 내려놓았다. 손바닥 모양대로 눌려 굳어 있었다. "저 손이 짚은 것이 맞습니다. 어디에 코를 대도 늘 같은 만큼 더 들어옵니다." 그 사람은 흙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넷입니다.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소하는 그 손을 보았다. 아침부터 펴지 않은 손이었다.

    "그 넷은 제가 줄을 쥐었습니다." 손이 돌 위에서 한 뼘 갔다가 멎었다. "내려보내는 일은 아무나 합니다. 줄을 쥔 사람만 몇 자까지 내려갔는지 셉니다. 그래서 제가 쥐었습니다. 수가 남으라고 쥐었습니다."

    "쥔 값으로 코가 이렇게 됐습니다. 덜어 내고 세는 법은 여태 못 배웠습니다." 손가락이 돌의 아래 줄로 돌아갔다. "그런데도 셉니다. 틀린 수라도 적혀 있으면 다음 사람이 그것을 고칩니다. 아무것도 안 적혀 있으면 다음 사람은 저부터 다시 합니다."

    소하는 그 줄을 내려다보았다. 어제 저 사람이 제 손으로 새긴 줄이고, 그 위에는 소하의 손끝을 증거로 삼는다는 줄이 아직 있다. 그 둘 다 못으로 판 것이라 지워지지 않는다.

    소하는 오른손을 펴서 돌 위에 올려놓고 손바닥으로 눌렀다. 아래 줄의 홈이 살을 파고들었다. 파고든 것이 손에 올라올 때까지 소하는 손을 떼지 않았다.

    기록관이 서판을 소하 쪽으로 돌려 세웠다. 아침부터 그은 금들이 새 줄을 다 채우고 다음 줄로 넘어가 있었고, 그 옆에 이틀째 비어 있는 칸이 가운데로 남았다. 못끝이 그 칸 위에서 멈췄다. 소하는 그 입이 보이는 자리로 옮겨 섰다. "빈 칸은 규정에 없습니다."

    그 사람이 못끝을 소하의 손등에 댔다. 댄 채로 제 입술을 크게 움직여 수를 세기 시작했다. 소하는 그 입을 보면서 같이 세었다. 손등에 쇠가 닿았다는 것은 서른여덟을 세고서야 올라왔고, 거기서 소하가 고개를 들었다.

    기록관이 세던 것을 멈추고 빈 칸에 그 수를 넣었다. 그러고는 못끝을 든 채 은실 세 줄 쪽으로 몸을 돌렸다. 소하는 그 얼굴을 따라 자리를 옮겼다. "손끝이 잰 것은 참고로 쓰고 있습니다. 손끝을 잰 것은 규정에 없습니다."

    은실 세 줄은 돌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날마다 재십시오. 그 칸은 둡니다."

    못끝이 칸 머리로 올라가 짧은 금을 넣었다. 소하는 그 금이 나는 동안 못끝을 보고 있다가 기록관이 고개를 들 때 그 입을 받았다. "미정의 오른손을 날마다 적겠습니다."

    소하는 돌에서 손을 뗐다. 손바닥에 홈 자국이 두 줄로 나 있었고 금세 지워졌다.

    은실 세 줄이 흙 뭉치를 집어 소매에 넣었다. "내일 아침에 또 셉니다." 삽 쪽은 보지 않았다. "오늘 저 손이 센 것이 제 것보다 작으면 저는 오늘 하루를 버린 겁니다. 그것도 압니다."

    집에 들어서자 등잔이 켜져 있었다. 어머니는 상을 차려 놓고 실을 손가락에 건 채 앉아 있었다.

    소하는 상 앞에 앉기 전에 왼팔부터 짚었다. 손등을 붙이고 눌러서야 수가 올라왔다. 아래쪽에서 아홉이 오지 않았다. 여섯이 왔다.

    소하는 손을 떼고 손가락을 비벼 말린 다음 이번에는 팔꿈치 쪽에서 위로 거슬러 짚어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다섯을 받았다. 끝까지 갔다가 도로 내려오니 넷이었다.

    손등 밑에서 수가 줄고 있었다. 세는 동안에 줄었고, 처음부터 다시 세면 또 줄어 있었다. 소하는 팔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어머니가 실 끝을 소하의 손가락에 걸어 주었다. 아침에 소하가 풀어 놓은 자리에 어머니가 혼자 다시 지어 놓은 고리였다. 매듭 모양이 넷째와 달랐고 더 단단했다. "무슨 뜻인지는 네가 정해라."

    그러고는 상을 소하 앞으로 밀었다. "먹고 나가라."

    소하는 숟가락을 들었다가 내려놓고 일어섰다. 담 너머 마당에서 삽은 세워진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고, 관은 내일 아침에 또 셀 참이었다. 문을 밀고 나서자 아침에 구덩이에서 맡은 눅눅하고 시큼한 냄새가 바깥 공기에 섞여 들어왔다. 마당에서 집 앞까지 올라온 냄새였다. 소하는 왼팔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로 문지방을 넘었고, 그 사이에 손등 밑에서 하나가 더 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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