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은 순서

"모릅니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면 관이 그것을 적고, 적힌 것은 나중에 소하를 묶는다.
기록관이 떨어진 붓을 주워 닦는 동안, 은실 두 줄은 패를 다시 왼 손바닥에 놓고 눈을 감았다. 코로만 세 번 들이쉬었다. 마당에는 벤 풀 냄새만 있었다.
"한 번뿐입니까." 기록관이 물었다.
"향은 되살리는 게 아니야." 은실 두 줄이 패를 우물 턱에 내려놓고 손을 털었다. "쓰는 거다. 한 번 쓴 자리에서는 다시 안 나온다. 이 패에 있던 그 아이 몫은 방금 다 썼어."
"여섯을 다 여기로 내려보내셨습니까."
"넷이다." 그가 우물 아가리를 손등으로 짚었다. 소맷단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그 손을 떼지 않았다. "그 뒤로는 무슨 냄새를 맡아도 그 넷이 같이 난다. 아껴서 남는 게 아니니까 나는 안 아낀다. 너도 그렇게 알아둬라."
소하는 그 말을 셈해봤다. 넷을 세는 사람은 아직 세고 있는 사람이다.
"패에 남은 게 냄새만은 아닙니다." 소하가 우물 턱으로 한 걸음 갔다. "닿은 것을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흔적계는 관 안에 못 들인다." 기록관이 붓을 세웠다. "백 년쯤 전에 흔적꾼 하나가 관 기록을 손으로 읽었다. 그날부터 규정에 있다."
"안에서 읽힌다." 은실 두 줄이 걸어가며 말했다. "규정은 내가 정한다."
흔적꾼은 밤에 왔다.
쉰이 넘은 사내였고 갈색 띠가 소매보다 깨끗했다. 들어오면서 마당 흙을 만지고 우물 턱을 만지고, 기록관이 든 종이를 만지려다 손을 도로 내렸다. 손톱 밑이 검었다.
관 사람이 등잔 두 개를 우물 턱에 놨다. 기름이 싸구려라 심지가 탈 때마다 톡, 톡 소리가 났고, 그것이 밤새 마당에서 가장 큰 소리였다.
흔적꾼은 패를 두 손으로 감쌌다. 눈을 뜨고 있었다.
"셋입니다."
"몇 해 전입니까." 소하가 등잔 옆에 앉았다.
"하나는 오래됐습니다. 나무를 깎아 글자를 새긴 손이고, 여러 개를 한 번에 새겼습니다." 그가 패를 뒤집었다. "하나는 여섯 해쯤 전에 쥐었습니다. 오래 쥐었고 마지막에 손아귀가 풀렸습니다."
기록관의 붓이 멈췄다.
"셋째는."
"엿새 전입니다."
소하는 무릎을 짚어 셈했다. 여섯 번째가 우물에 들어간 것이 여섯 해 전이고 그 패를 밑에서 주워 올린 것이 어제다. 그 사이 엿새 전에 누가 그것을 쥐었다.
"관에서 아무도 그 문을 열지 않았다." 기록관이 붓을 내렸다. "못을 박은 것이 이백 년 전이고, 어제 뽑은 것이 그 못이다."
"저는 누가 열었는지는 안 읽습니다." 흔적꾼이 패를 등잔 쪽으로 기울였다. "엿새 전 그 손은 젖어 있었습니다. 물 묻은 손으로 쥐었고 쥐고 나서 손을 안 닦았습니다."
"순서까지 읽는 사람은 흔적계에도 몇 없다." 은실 두 줄이 담 그늘에서 말했다.
"헌 옷을 이십 년 뒤졌습니다." 흔적꾼이 소매로 손을 닦았다. "누가 먼저 입었는지를 알아야 값을 부릅니다. 십 년쯤 하니까 먼저와 나중이 갈라졌습니다."
그가 패를 내려놓고 소하 쪽으로 돌았다.
"손 좀 봅시다."
소하는 두 손을 폈다. 그는 손바닥은 보지도 않고 손등을 뒤집어 손목까지 훑다가 왼 어깨를 짚었다. 옷 위로 짚었는데 어깨뼈가 눌렸다.
"여기에 열 해쯤 전에 뭐가 닿았습니다."
"제가 만진 것이 있습니다." 소하는 품에서 종이를 꺼내 폈다. "적는 날에 붓하고 종이 사이입니다."
"만진 게 아니라 만져진 쪽입니다." 흔적꾼이 손을 뗐다. "손에는 그날 게 없습니다. 어깨에 있습니다."
소하는 방으로 돌아와 등잔 없이 종이를 폈다. 어둠에서도 어느 줄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는 손가락으로 셈할 수 있었다. 왼쪽 줄 맨 위, 된 것 중에 가장 오래된 것. 소하는 그 한 줄을 손톱으로 긁어 지웠다. 된 것이 넷에서 셋이 됐다.
나흘째 아침에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관이 새벽에 수레를 붙여 성 밖 이모 집으로 보냈다고 했다. 받아둔 빨래를 돌려주고 가겠다고 우겨서 관 사람이 두 집을 같이 돌았다고도 했다. 소하는 그 말을 듣고 죽 그릇을 다 비웠다.
"이름꾼은."
"안 왔어." 젊은 관 사람이 그릇을 받아 들었다. "규정으로는 오늘까지야. 어젯밤에 남문 기록에 이름이 올라갔다더라. 성 밖으로 나갔어."
짐꾼 어른도 성 밖에서 흙을 나른다. 소하는 둘이 같은 들에 있다는 것만 셈해뒀다.
뒤뜰의 두레박줄은 새것이었다. 어제 것보다 굵고 기름 먹인 자리가 미끄러웠다. 한 발씩 당겨 세어보니 서른 자였다. 관은 소하가 어제 스물다섯 자를 다 쓰고도 더 내려간 것을 세어뒀다.
소하는 줄 끝에서 세 자쯤 올라온 자리에 매듭을 지었다. 매듭계 것 같은 매듭은 못 짓는다. 두 번 감아 통과시킨 것이라 잡아당기면 조금 미끄러졌다. 그다음에 헝겊을 손바닥에 감았다. 어제는 안 감아서 살이 갈렸고, 그 자리는 나흘 전 팔의 상처와 함께 벌어져 있었다.
신은 벗어 우물 턱에 놨다. 발가락으로 벽을 짚으려면 벗는 편이 낫다.
기록관이 종이와 붓을 들고 왔다. 은실 두 줄은 다섯 걸음 떨어져 앉았다.

"규정대로 묻는다. 오늘 내려가겠느냐."
"내려갑니다." 소하가 줄을 어깨에 걸쳤다. "그런데 어제 셈한 것이 있습니다. 부를 사람이 없으면 저는 안 섭니다. 어머니도 이름꾼도 성 밖에 있습니다. 지금 이 관에 제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관 사람 하나를 붙여준다. 부르라고 하면 부른다." 은실 두 줄이 말했다.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부르면 아무 소리도 아닙니다." 소하는 젊은 관 사람 쪽으로 돌아섰다. "제 이름은 소하입니다. 열 해 전 은포 기록 스물세 번째 줄에 미정이라고 적힌 아이입니다."
젊은 관 사람이 그릇을 든 채 서 있었다.
"그것을 나한테 말하면 안 된다." 기록관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조금 흔들렸다. "이름을 아는 사람이 늘면 이름 속성이 너를 앉힐 수 있다. 관이 미정을 앉히는 것도 규정에 있어. 이름꾼이 돌아와서 관이 시키는 대로 하면 너는 여기서 한 발도 못 움직인다."
"셋을 셈해봤습니다." 소하는 줄을 우물 턱 고리에 걸었다. "어머니를 쓰면 어머니가 관 안으로 들어옵니다. 짐꾼 어른을 쓰면 사흘 들어갔다 나온 사람이 또 들어옵니다. 셋째는 관이 아직 모르는 사람이라 부르는 순간 관이 알게 됩니다. 셋 다 남을 여기로 끌고 옵니다. 여기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제일 쌉니다."
"싼 게 아니다."
"제일 쌉니다." 소하가 기록관을 봤다. "어른 이름도 주십시오. 부르셔도 됩니까."
기록관은 대답하지 않고 소하가 방금 한 말을 적기 시작했다. 적는 손이 어제보다 느렸다.
우물 안은 어제와 같은 순서로 어두워졌다.
여섯 자쯤에서 위쪽 소리가 끊겼다. 담 밖 다듬이질도 안 들리고, 대신 자기 숨이 벽에 부딪혀 되돌아왔다. 눈을 감은 채로 그 숨을 세면서 내려갔다. 열두 자에서는 아직 돌아왔고, 열여섯 자에서는 늦게 돌아왔고, 열여덟 자를 지나면서부터 돌아오지 않았다. 벽이 있으면 소리가 돌아온다.
손에 닿는 벽도 그 아래에서 달라졌다. 위쪽은 마르고 거칠었는데 어느 자리에서부터 미끄러웠고, 미끄러운 자리는 따뜻했다. 사람 손을 오래 쥐고 있다 놨을 때 남는 정도였다. 마른 우물 벽이 발 하나 아래에서 따뜻해질 이유는 이쪽에 없다.
발가락으로 벽을 짚으며 두 발 더 내렸다.
"밖에 사람 있습니까."
어제 향에 얹혀 얇게 들린 목소리가 지금은 옆에서 말하는 것 같았다.
"있습니다." 소하는 눈을 뜨지 않았다.
"몇 자입니까."
"줄로 스물두 자 내려왔습니다. 우물은 열여덟 자입니다."
"넉 자." 목소리가 그 숫자를 되뇌었다. "나는 스물여섯 자에서 줄이 끊어졌습니다. 그다음은 못 셌습니다."
소하는 헝겊을 고쳐 잡았다. 여섯 해 전에 이 줄을 쥐고 손아귀가 풀린 사람이 넉 자 아래에서 자기가 못 센 자리를 말하고 있었다.
"손을 주십시오."
소하는 그 자리에서 셈을 했다. 좁아지는 사이여야 하고, 한쪽이 자기 몸이어야 하고, 소하가 속도를 정하면 안 된다. 저쪽에서 오는 손은 소하가 세울 수 없다. 세 줄이 다 맞았다.
왼팔을 아래로 뻗었다.
손이 오지 않았다.
물이 왔다.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한 번에 잠겼고, 우물물처럼 차지 않고 살보다 조금 찼다. 나흘 동안 안 아문 자리로 그것이 들어갔다. 안에서 닫히지 않으니 밖에서 들어오는 것도 안 막힌다. 열 해 동안 그 셈을 나가는 쪽으로만 했다.
소하는 눈을 떴다.
아래는 어둡지 않았다. 어둡지 않은 것을 본 순간, 그것이 얼마나 아래인지 소하가 정해버렸다.
그리고 굳었다.
줄이 안 내려가고 안 올라갔다. 발로 벽을 밀어도 몸이 안 갔다. 위에서 당기는 힘이 손바닥으로 전해지는데 몸은 그 자리에 있었다. 어제 문짝이 손등에 붙어 서버린 것과 같았다.
"소하야."
젊은 관 사람 목소리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소하야."
두 번째도 그랬다. 세 번째에는 목소리가 갈라졌고 줄이 더 세게 당겨졌다가 멈췄다. 밖에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이름을 알고 세 번을 불렀는데 소하는 안 섰다. 어제 적어둔 다섯째 줄이 틀렸다.
아래에서 왔다.
"소하야."
발바닥이 무언가에 닿았다. 바닥은 아니었다. 젖은 나무 같기도 하고 사람 어깨 같기도 한 것이 발을 받쳤고, 받친 자리에서 굳은 것이 풀렸다. 소하는 그 위에서 두 번 숨을 쉬었다. 줄이 이제 제대로 올라갔다.
우물 턱을 넘어오자 사람들이 물러섰다.
왼쪽 소매가 팔꿈치까지 젖어 있었다. 물이 떨어져 벤 풀 위에 자리를 만들었고, 그 자리에서 오래 젖은 나무 냄새가 올라왔다.
흔적꾼이 손을 내밀었다. 소하가 젖은 팔을 펴자 그는 팔목을 두 손가락으로 짚고 눈을 감았다.
"엿새 전 패를 쥐었던 손에 묻어 있던 물입니다." 그가 손가락을 뗐다. "같은 물입니다."
은실 두 줄이 우물 쪽으로 두 걸음 갔다가 멈췄다. 그는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여섯 해 동안 익힌 걸음이었다.
"무엇을 만졌느냐." 기록관이 붓을 들었다.
"손을 달라고 해서 뻗었는데 물이 왔습니다." 소하는 오른손으로 종이를 꺼냈다. "셈을 잘못했습니다. 저쪽에서 오는 것은 좁혀오지 않습니다. 그냥 겹칩니다. 사이가 없는 데다 규칙을 썼습니다."
"다섯째 줄은."
"고쳐야 합니다. 위에서 세 번 불렀는데 저는 안 섰고, 아래에서 한 번 부르니까 섰습니다." 소하는 종이를 무릎에 놓았다. "밖이라고 적은 것을 지우고 아는 사람이라고 적겠습니다. 위든 아래든 됩니다."
소하는 그 줄을 고치려고 종이 위에 손을 얹었다. 젖은 왼손이었다.
손바닥이 닿은 자리에서 먹이 풀렸다.
번지지 않았다. 글자가 있던 자리가 그냥 종이가 됐다. 소하는 손을 들었다가 다시 얹었고 두 번째 자리도 같았다. 네 줄 중 둘이 없어졌다.
기록관이 무릎을 굽혀 그 종이를 봤다. 늙은 얼굴이 하얗게 보였다.
"열 해 전에 내 붓이 종이에 안 닿았다." 그가 소하 어깨를 봤다. 흔적꾼이 짚은 자리였다. "세 번 바꿨는데 다 안 닿았어. 그때는 붓이 잘못됐다고 적었다."
소하는 젖은 손을 폈다 쥐었다. 손금 사이 물기가 마르지 않았다. 나흘 전 갈린 자리는 아프지 않았는데 차가웠고, 소하는 그 차가움이 어디까지 올라오는지 팔을 짚어가며 셈했다. 팔꿈치까지였다. 아침에는 손목까지였다.
기록관이 새 종이를 폈다. 그리고 소하가 방금 잃은 두 줄을 자기 붓으로 다시 적었다 — 움직여서 좁아지는 사이만 만질 수 있고 그 사이를 보면 안 된다는 것, 한쪽이 소하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 늙은 사람은 그것을 관 기록에 적지 않고 소하 종이에 적었다. 그리고 붓을 놓지 않은 채로 오늘부터 매일 두 가지를 묻겠다고 했다. 하나는 내려가겠느냐이고, 하나는 어디까지 차가우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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