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는 쪽

닷새째 새벽에 소하는 방바닥에 여섯 가지를 늘어놓았다. 먹으로 적은 헌 종이 한 장, 문틀에 누가 칼로 그어놓은 금, 흙바닥에 손톱으로 판 금, 등잔 그을음이 앉은 흙벽 한 자리, 밑에 표를 새긴 죽 그릇, 소매에 사흘 전 튄 죽 얼룩. 밖은 아직 어두웠고 문고리에서 찬 쇠 냄새가 났다.
왼손에 감은 헝겊을 풀었다. 밤새 세 번 갈았는데 세 번 다 젖었다. 물기는 손금 사이에만 얇게 있었고 손등은 말라 있었다.
소하는 오른손 뼘으로 팔을 쟀다. 손목에서 팔꿈치까지가 한 뼘 반이고, 차가운 데는 거기서 한 뼘 더 위였다. 어제저녁에는 팔꿈치였다.
하나씩 얹어보고 속으로 셌다. 헌 종이의 열 몇 해 전 곡식 셈은 손바닥이 닿은 자리에서 그냥 종이가 됐다. 칼로 그은 금은 그대로였고, 손톱으로 판 금도 그을음도 죽 얼룩도 그대로였다. 그을음은 손바닥에 묻어 나오기까지 했다.
없어진 쪽은 얹혀 있는 것이고, 남은 쪽은 그 물건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얹혀 있는 것만 없어진다. 그리고 관 기록은 전부 먹이다.
소하는 빈 종이에 오른손으로 자기 이름 두 자를 적었다. 먹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왼 손바닥을 얹었다. 종이를 들었을 때 이름은 없었다.
소하는 그 종이를 등잔불에 태웠다. 재는 손바닥에 받아 문 밖 흙에 비벼 넣었다. 닿은 것을 읽는 사람이 이 관 안에 있다.
기록관은 해가 담 위로 올라오기 전에 왔다. 종이와 붓과, 어제부터 들고 다니는 자 하나를 같이 들고 있었다.
"내려가겠느냐."
"내려갑니다."
"어디까지 차가우냐."
"팔꿈치에서 한 뼘 위입니다." 소하가 소매를 걷고 오른손 엄지를 그 자리에 짚었다. "어제저녁에 팔꿈치였습니다. 자는 동안 한 뼘입니다."
늙은 사람은 자를 대보고 촌으로 고쳐 적었다.
"어깨까지 몇 뼘이냐."
"두 뼘이 조금 안 됩니다."
"이틀이구나." 기록관은 그 말은 적지 않았다.
흔적꾼은 아침을 먹고 나서 왔다. 관 밖에서 자는 사람이라 신에 성 밖 흙이 묻어 있었다.
"남문 밖에 다녀왔습니다." 그가 소매에서 나무 빗 하나를 꺼내 소하 앞에 놨다. "이걸 나한테 준 사람이 당신한테 가라고 했습니다."
소하는 빗을 들었다. 살이 굵고 두 개가 빠졌고 손잡이 쪽이 닳아 반들거렸다.
"닿은 손은 둘입니다." 흔적꾼이 무릎을 짚고 앉았다. "하나는 여자 손이고 이십 년쯤 쥐었습니다. 하나는 아이 손인데 여섯 해보다 오랩니다."
"말은 없었습니까."
"셋 있었습니다." 흔적꾼은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낮추면 그것이 표가 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동생 이름을 대라고 하십디다."
그가 두 자를 말했다.
"적지 마십시오." 소하가 기록관 쪽으로 손바닥을 폈다. "제가 셈으로 외웁니다."
기록관의 붓은 이미 멈춰 있었다.
"둘째는."
"들에서 흙 나르는 늙은 짐꾼한테 밥을 샀답니다." 흔적꾼이 신을 털었다. "그 사람이 사흘 갇혔다 나와서 은포 안에서는 아무도 안 부른답니다. 그래서 성 밖에서 부르겠다고 전하랍니다."
어제는 둘이 같은 들에 있었고 오늘은 같은 상에 앉았다.
"셋째는 안 물으십니다." 흔적꾼이 일어섰다. "성 밖 이모 집 문간에 관 사람이 하나 앉아 있습니다. 사흘째랍니다."
소하는 빗을 오른쪽 품에 넣었다. 왼손이 닿지 않는 쪽이었다.
은실 두 줄은 어젯밤에 가져간 소하의 종이를 들고 왔다.
"다섯째 줄을 읽었다." 그가 종이를 우물 턱에 놨다. "아는 사람이 부르면 서고 위든 아래든 된다고 적었더구나. 위에서 세 번 불렀을 때 너는 안 섰다."
"틀리게 적었습니다." 소하는 뜸을 들이지 않았다. "아는 사람인 것만 세고 어느 쪽에서 부르는지는 안 셌습니다."
"오늘은 위에서 아무도 안 부른다."
"아래에서 부른 것이 무엇을 한 것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기록관이 붓대를 세웠다. "저 아이가 어제 선 것은 압니다. 왜 섰는지는 안 적혀 있습니다."
"안 적힌 것을 알아 오라고 내려보내는 거다."
소하는 그동안 두레박줄을 무릎에 걸고 한 발씩 당겨 세고 있었다.
"은포에 우물이 몇인지 아느냐."
"쉰둘입니다." 소하는 세던 것을 놓지 않았다. "짐 나르면서 물 얻어 마신 데만 셌으니 더 있을 겁니다."
"쉰넷이다. 그중에 가문 해에 마른 것이 하나도 없다." 그가 손등으로 우물 아가리를 두 번 두드렸다. "이십 리 밖 마을은 삼 년에 한 번씩 우물을 옮긴다. 은포는 이백 년 동안 안 옮겼다. 시장이 여기 서고 배가 여기 대고 계가 이 도시에 앉은 이유가 다 그거다."
"물이 어디서 옵니까."
"저쪽에서 온다." 그가 발밑을 가리켰다. "은포 밑에 저쪽이 얇게 붙은 자리가 몇 군데 있다. 얇으니까 새어 든다. 이백 년 전 여름에 이 우물 하나가 마르고 밑에서 바람이 올라왔다. 그때 관이 못을 박고 문을 달았다."
"메우지는 않았습니다."
"메우면 못 잰다." 은실 두 줄이 처음으로 소하를 똑바로 봤다. "관이 미정을 내려보내는 건 재라고 보내는 거다. 얼마나 얇은지, 올라오는지 내려가는지."
"올라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줄을 당겼다. 줄만 올라왔다."
"손에 헝겊을 감지 마라." 은실 두 줄이 일어섰다. "젖은 채로 둬라. 관이 지울 것이 생기면 네가 지운다. 그게 네가 여기 있는 값이다."
"규정에 없습니다." 기록관이 일어섰다. 늙은 사람이 그렇게 빨리 일어나는 것을 소하는 처음 봤다.
"내가 정한다고 했다."
"관은 적는 뎁니다." 기록관의 목소리는 그래도 높아지지 않았다. "지우는 데 쓰면 이백 년 뒤에 이 관에는 아무것도 안 적혀 있을 겁니다. 그때는 무엇이 얇아졌는지도 못 잽니다."
은실 두 줄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담 그늘로 갔다.
소하는 헝겊을 다시 감았다. 아무도 그것을 풀라고 다시 말하지 않았다.
소하는 매듭을 풀어 두 뼘 위에 다시 지었다. 어제 스물두 자에서 물이 왔으니 오늘은 그보다 얕은 데서 한 번 서 볼 생각이었다. 신을 벗어 우물 턱에 놓자 젊은 관 사람이 그것을 저쪽으로 치웠다.
"오늘은 안 부릅니다." 그가 손을 앞에 모았다.
"압니다."
소하는 눈을 감고 내려갔다.
어제는 숨이 벽에 부딪혀 돌아오는 것으로 자 수를 셌다. 오늘은 손바닥으로 벽을 훑으며 내려갔다. 위쪽은 마르고 거칠고, 어느 자리에서부터 미끄럽고 따뜻해진다. 어제 그 자리는 열여덟 자를 지나서였다.
열다섯 자에서 벽이 따뜻해졌다.
소하는 멈춰서 매듭을 다시 세고, 발가락으로 벽을 문질러 보고, 손바닥을 뗐다가 다시 댔다. 열다섯 자였다. 석 자가 올라와 있었다.
밑에서 바람이 올라왔다. 볕에 오래 둔 짚 냄새가 실려 있었다. 이백 년 마른 우물이고, 관 뒤뜰에는 짚을 널어 말리는 자리가 없다.
"밖에 사람 있습니까."
"있습니다." 소하는 발바닥을 벽에 붙였다. "오늘은 열다섯 자에서 벽이 따뜻합니다. 어제는 열여덟 자였습니다."
목소리가 한동안 없었다.
"올라오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돌아왔다. "제가 처음 왔을 때는 스물여섯 자였습니다."
소하는 그 셈을 두 번 했다. 여섯 해에 여덟 자였고, 어제오늘 사이에 석 자였다. 두 번 다 같았다.
"하나 묻겠습니다." 소하는 매듭을 손가락으로 눌러가며 말했다. "어제 저를 부른 것이 그쪽입니까."
"제 입입니다."

"묻는 것이 그것이 아닙니다."
"압니다." 목소리가 조금 늦게 왔다. "제 입인 것까지는 압니다."
소하는 아침에 외운 두 자를 입 안에서 굴렸다가 삼켰다. 위에서 기록관이 듣는다. 관이 그 이름을 적어두면 이름꾼이 돌아왔을 때 관이 시키는 대로 쓸 수 있다.
"소하야."
소하는 섰다.
어제와는 딴판이었다. 어제는 발밑에 무엇이 받쳐서 굳은 것이 풀렸는데, 오늘은 받치는 것이 없는데 몸이 안 갔다. 위에서 줄을 당기는 힘이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두 번, 세 번. 몸은 그 자리에 있었다. 차가운 것이 팔을 타고 겨드랑이 밑까지 올라왔다.
손가락은 움직였다.
며칠 전 다리 밑에서 이름꾼이 자기 이름을 왜 안 말하는지 설명하면서 한 마디가 있었다. 이름을 부르면 몸이 붙잡히는데 손가락까지는 못 잡는다. 소하는 다섯을 폈다 쥐었다. 다 움직였다.
위에서 이름을 아는 사람이 세 번 불렀을 때 소하는 안 섰고, 아래에서 한 번 부르니 섰다. 어제 소하는 그것을 아는 사람이 부르면 선다고 적었다.
부르는 것은 세우는 것이 아니라 붙잡는 것이었다.
위에서 세 번 불러도 아무 일이 없었던 것은 이쪽이 소하를 못 잡기 때문이다. 열 해 전에 붓이 종이에 안 닿은 것도 그것이고, 어제 젖은 손바닥 밑에서 먹이 없어진 것도 그것이다. 이쪽은 소하에게 아무것도 못 얹는다. 저쪽만 얹을 수 있고, 저쪽은 어제부터 소하에게 물을 얹었고 오늘은 이름을 얹었다.
소하는 줄을 놓지 않은 채로 셈을 세 번 했다. 어제 굳은 것은 사이였고 오늘 잡힌 것은 몸이다. 사이를 먼저 굳혀버리면 겹친 것이 끊어지고, 끊어지면 저쪽이 이쪽 몸에 닿을 자리가 없다.
"다음에 올 때는 부르지 마십시오." 소하가 아래로 말했다. "제가 세겠습니다."
"이름을 아는 사람이 위에 없으면 당신은 못 올라갑니다."
"오늘 그것도 셈해보겠습니다."
소하는 눈을 떴다.
아래는 어제처럼 어둡지 않았다. 이번에는 참지 않고 봤다. 벽에 풀이 자라 있었다. 마른 우물에 풀이 있는 것도 이상한데, 그 풀은 아래를 향해 자라 있었다. 소하는 그것이 자기 발밑에서 몇 자인지 정했다. 넉 자였다.
정한 순간 넉 자가 굳었다.
겹쳐 있던 것이 그 자리에서 끊어졌다. 짚 냄새가 걷히고 벽이 식었고, 발밑에서 부르던 것이 한 번에 없어졌다. 소하의 몸이 다시 줄에 매달린 무게로 돌아왔다.
우물 턱을 넘어오자 젊은 관 사람이 두 손으로 소하 팔을 잡았다가 놨다. 차가워서 놓은 것이었다.
"어디까지냐."
소하가 저고리를 내렸다. 기록관이 어깨뼈에서부터 자를 대고 내려 쟀다.
"두 치." 그가 그것을 적었다. 이번에는 붓이 멈추지 않았다.
흔적꾼이 소하의 왼팔을 두 손가락으로 짚었다.
"둘입니다." 그가 눈을 감았다. "하나는 여섯 해 전에 그 패를 쥔 손하고 같습니다."
"둘째는."
"모르는 손입니다." 흔적꾼이 손가락을 뗐다가 다시 짚었다. 두 번 짚는 것을 소하는 처음 봤다. "이 손은 아직 안 뗐습니다. 지금도 닿아 있습니다."
마당에 있던 사람들이 반 걸음씩 물러섰다. 은실 두 줄은 물러서지 않았고 우물 쪽으로도 안 갔다.
소하는 방으로 돌아와 종이를 폈다.
다섯째 줄을 오른손으로 고쳤다. 부르는 것은 붙잡는 것이다. 이쪽은 나를 못 붙잡는다. 그 밑에 여섯째 줄 자리를 비워두고, 오늘 눈을 떠서 끊은 것을 두 번 고쳐 쓰다가 손톱으로 긁어 지웠다. 왼손은 무릎 위에 뒤집어 놓은 채였다.
적지 않은 것이 셋 있었다. 벽이 따뜻해지는 자리가 하루에 석 자 올라왔다는 것, 여섯 해 동안은 여덟 자였다는 것, 그리고 아침에 외운 두 자.
소하는 왼 소매를 걷어 팔을 등잔 가까이 댔다. 차가운 데와 안 차가운 데의 경계는 눈으로는 안 보이고 손으로 짚어야 알았다. 어깨까지 두 치. 자는 동안 한 뼘씩 올라오면 내일 아침에는 어깨를 넘고, 어깨를 넘으면 무엇이 되는지는 아무도 안 적어놨다. 다섯은 죽었다고 적혀 있고, 여섯째는 열다섯 자 아래에서 자기 입으로 소하를 부르고, 관은 그 자리가 얼마나 얇은지 재라고 소하를 내려보내고, 그 자리는 하루에 석 자씩 올라오고 있다. 소하는 등잔을 끄고 종이를 접어 품에 넣었다. 그리고 어두운 데서 두 자를 소리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만 만들어봤다. 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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