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른 값

엿새째 새벽, 소하는 잠에서 깨자마자 오른손을 들어 왼쪽 어깨에 얹었다. 손끝이 닿는 느낌이 없었다. 힘을 주어 눌러봐도 마찬가지였다.
오른손으로 팔뚝을 짚어 올라가 봤다. 팔꿈치 위는 여전히 찼고, 어깨 쪽으로 갈수록 그 차가움이 옅어지다가 아예 없어졌다. 차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소하는 저고리를 걷고 왼쪽 어깨를 오른손 손톱으로 긁었다. 아프지 않았다. 같은 힘으로 오른쪽 어깨를 긁자 그쪽은 아팠다.
품에서 나무 빗을 꺼내 오른손으로만 쥐었다. 살이 두 개 빠진 빗이었다. 왼손으로 쥐면 무엇이 되는지는 아직 시험해보지 않았고 오늘 할 생각도 없었다. 소하는 빗을 오른쪽 품에 도로 넣었다.
마당에 나가자 서리가 밟혔다. 오른발을 디디니 서걱 소리가 나면서 발바닥으로 찬 기운이 올라왔다. 왼발을 옮겨 디디자 소리는 똑같이 났는데 발바닥으로는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다.
마당에서 먼저 언 것은 처마 밑 물받이가 아니라 우물 턱에 감긴 밧줄이었다. 소하는 그 밧줄을 오른손으로 쥐어 서리를 부러뜨렸다. 왼손으로 같은 자리를 쥐자 부러지는 소리는 났는데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부엌 앞에 물동이가 있었다. 소하는 그것을 왼쪽 어깨에 얹었다. 열아홉 해 가운데 여섯 해를 그 어깨로 먹고살았으니 몸이 알아서 자리를 잡을 줄 알았는데, 동이는 얹힌 자리를 소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무거운지 가벼운지도 몰랐다. 세 걸음째에 동이가 뒤로 기울었고 소하는 오른손을 뻗어 아가리를 붙잡았다. 물이 반쯤 쏟아져 서리 위에 퍼졌다.
소하는 동이를 오른쪽 어깨로 옮겨 지고 부엌까지 갔다. 옮기고 나니 걸음이 저절로 편해졌다. 왼쪽으로 진 짐은 이제 남의 등에 진 짐이었다.
쏟은 자리로 돌아와 어제저녁의 셈을 다시 짚었다. 그때는 어깨까지 두 치가 남아 있었고 자는 동안 한 뼘씩 올라온다고 쳤으니 두 치는 다 올라오고도 남았다. 오늘 아침, 어깨는 넘었다.
기록관은 해가 담 위로 오르기 전에 왔다. 자와 붓과 종이를 함께 들고 있었다.
"내려가겠느냐."
"내려갑니다."
"어디까지 차가우냐."
소하는 저고리 깃을 내려 빗장뼈 아래를 오른손 손끝으로 짚었다. "여기까지 찹니다. 빗장뼈에서 한 치 아래입니다. 어깨는 차지도 않고 아무 느낌도 없습니다. 차가운 데보다 그 위가 더 갔습니다."
"언제부터 없느냐."
"자고 일어나니 없었습니다. 어제저녁에는 있었습니다."
기록관이 자를 대고 재서 촌으로 고쳐 적었다. 붓을 쥔 손은 멈추지 않았다.
"넘으면 어떻게 되는지 규정에 있습니까." 소하가 물었다.
"없다." 늙은 사람의 목소리는 어제와 같았다. "적힌 적이 없는 일이다. 오늘부터 내가 적는다."
"열두 자일 겁니다." 소하가 먼저 말했다. "어제는 열다섯 자에서 벽이 따뜻했습니다. 아직 재보지 않았지만 하루 석 자면 오늘은 열두 자입니다."
기록관은 그 숫자를 적어놓고 그 옆에 잰 뒤에 다시 적을 자리를 비워뒀다.
"관에 들어온 지 며칠이냐."
"엿새째입니다. 어머니는 성 밖 이모 집에서 사흘째입니다."
기록관은 뒷말은 적지 않고 붓을 거뒀다.
은실 두 줄이 흔적꾼과 함께 왔다. 젊은 관 사람이 소하의 저고리 깃을 조금 내려 왼쪽 어깨를 드러냈다.
"짚어봐라."
흔적꾼이 손가락 두 개로 그 자리를 짚고 눈을 감았다. 소하는 그 손이 자기 어깨 위에 있다는 것을 눈으로만 알았다.
"모릅니다." 흔적꾼이 손을 뗐다가 다시 짚었다. 그리고 한 번 더 짚었다. "아무것도 안 잡힙니다."
"방금 것도." 은실 두 줄이 우물 쪽에서 몸을 돌렸다.
"방금 것도요." 흔적꾼이 고개를 저었다. "이십 년 동안 방금 것을 못 읽은 적은 없습니다."
젊은 관 사람이 반 걸음 물러섰다. 소하 어깨에서 손을 뗀 채로 다시 다가오지 않았다.
은실 두 줄이 소하 앞에 와서 섰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숨을 들이켰다. 한 번, 두 번, 세 번.
"사흘 전에는 네 소매에서 마른 냄새가 났다." 그의 얼굴은 움직이지 않았다. "닷새째 아침까지 났다. 지금은 안 난다."
소하는 자기 소매를 코에 대봤다. 소하 코에는 처음부터 아무 냄새도 안 났다.
"제게는 원래 안 났습니다."
"나한테는 났다." 은실 두 줄이 소맷자락을 놓았다. "나는 이 우물에 넷을 내려보냈고 그 넷 냄새가 아직 다 난다. 밥을 먹어도 나고 비를 맞아도 난다. 그 코에 네가 안 잡힌다."
"관 기록은 손이 지웠다." 그가 걸음을 옮겼다. "이제 손도 필요 없구나."
"짚는 것과 남기는 것은 다릅니다." 기록관이 붓을 세웠다. "흔적꾼이 놓친 쪽은 남기는 쪽입니다."
"적을 수 없으면 관은 가진 게 아니다." 은실 두 줄이 소맷자락을 바로잡았다. "그건 관 쪽에서 곤란한 일이다. 우물보다 먼저 곤란해진다."
그는 담 그늘로 돌아갔다. 기록관은 벼루에 붓을 다시 적셨다. 손끝이 먹으로 조금 검어져 있었다.
흔적꾼은 가려다 말고 돌아섰다.
"성문에서 들었습니다." 그가 신발 코로 흙을 문질렀다. "어제저녁에 이름꾼이 성문을 지났답니다. 오늘 안에 관에 닿을 겁니다."
"짐꾼 어른은."
"오늘도 들에서 흙을 나릅니다. 몸은 성합니다." 흔적꾼이 신을 고쳐 신었다. "성문 소식을 듣고 상을 옮겼답니다. 이름꾼하고 같은 자리에는 안 앉겠답니다."
젊은 관 사람이 그 말을 받아 적으려다 기록관의 눈짓에 붓을 도로 놨다.
소하는 두레박줄을 짚어 매듭을 세었다. 이름꾼은 동생 이름을 흔적꾼 편에 보낸 사람이고, 관은 아직 그 두 자를 못 적었다. 이름꾼이 마당에 들어와 우물 앞에 서면 그 이름을 부를 입이 둘이 된다. 그리고 둘 중 하나는 관이 시키는 대로 부를 수 있다.
이름꾼이 관에 닿기 전에 한 번은 내려가야 했다.
"오늘 여울을 부르겠습니다."
기록관이 붓을 멈췄다. "네가 부른 적은 없다."
"이제 하겠습니다." 소하가 두레박줄을 어깨에 걸쳤다. 오른쪽 어깨였다. "부르는 것이 붙잡는 것이면, 제가 부르면 제가 잡습니다."
"이름꾼이 오면 부르는 사람이 바뀔 수 있다." 기록관이 붓을 다시 들었다. "규정에 순서는 없다. 먼저 온 사람이 부른다."

소하는 밧줄을 매기 전에 우물 턱에 서서 이름을 한 번 불러봤다.
"여울."
말이 끝나기 전에 오른손 손끝이 저렸다. 엄지에서 시작해 새끼손가락까지 차례로 갔다. 왼손은 그대로였다. 손을 들어 보니 손가락 사이로 찬 것이 한 번 지나갔다가 없어졌다.
"오른손입니다." 소하가 손을 펴 보였다. "부르니까 이쪽으로도 옵니다."
기록관이 그것을 적었다.
소하는 왼손과 오른손을 무릎 위에 나란히 놓고 봤다. 왼손은 헝겊 밑에서 젖어 있고 오른손은 말라 있었다. 오늘 저녁에도 말라 있을지는 세어봐야 알 일이었다.
"불러도 됩니까."
기록관은 대답하지 않고 붓을 든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하는 신을 벗어 우물 턱에 놓고 매듭을 손끝으로 세 번 확인했다. 밧줄에 앉은 서리는 손이 지나간 자리마다 녹아 물방울로 맺혔는데 오른손이 지나간 자리에서만 그랬다. 소하는 그것도 셈에 넣고 눈을 감고 내려갔다.
발가락으로 벽을 훑으며 셌다. 위쪽은 마르고 거칠었다. 오른쪽 귀로는 자기 숨이 벽에 부딪혀 돌아오는 것이 여섯 자쯤에서 잡혔고 왼쪽 귀로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았다. 소하는 오른쪽 귀로만 세기로 하고 자 수를 반씩 나눠 짚었다.
열둘에서 손바닥에 미끄러운 온기가 잡혔다. 어제보다 석 자가 또 올라와 있었다. 소하는 그 자리에 발을 붙이고 숨을 두 번 쉬었다.
벽에서 물이 배어 나와 손바닥에 고였다. 어제는 밑에서 바람이 올라왔는데 오늘은 벽이 젖어 있었다. 이백 년 마른 우물의 벽이었다.
"밖에 사람 있습니까."
"있습니다." 소하는 발바닥을 벽에 붙였다. "오늘은 열두 자에서 벽이 따뜻하고 젖어 있습니다."
"여기는 엿새 전부터 젖었습니다." 목소리가 왔다. "저는 젖은 데가 어디까지인지로 셉니다."
"부르겠습니다." 소하가 줄을 다시 쥐었다. "여울."
이번엔 왼팔 전체가 당겨졌다. 아침에는 손끝만 저렸는데 지금은 어깨부터 손끝까지 당기는 힘이 한 번에 지나갔다. 아프지는 않았다. 아픈 자리와 당기는 자리가 이제 겹치지 않았다. 소하는 줄을 놓지 않으려고 오른손 손가락을 하나씩 걸었다.
몸이 아래로 미끄러졌다. 발가락이 벽을 긁었는데 벽이 잡히지 않았다.
"가까워졌습니다." 여울의 목소리가 왔다. "줄을 안 당겼는데 가까워졌습니다."
소하는 매듭을 짚어 세었다. 두 자였다. 자기가 풀지 않은 두 자만큼 내려와 있었다.
"몇 자입니까."
"모릅니다. 셀 새가 없었습니다."
"손이 있습니까." 소하가 물었다. "제 팔에 아직 안 뗀 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있습니다." 여울이 답했다. "두 자 위에서 잡습니다."
"두 자요?"
"예. 저도 거깁니다." 목소리가 조금 늦게 왔다. "저도 잡혀 있습니다. 여섯 해 됐습니다."
소하는 그 말을 셈에 넣었다. 팔에 남은 손은 여섯 번째도 붙들고 있었다. 둘을 같은 자리에서 잡고 있으면서 여섯 해 동안 하나도 끌고 가지 않았다.
"어제 부른 것이 그쪽 입이라고 하셨습니다." 소하가 벽에 발을 다시 붙였다. "그러면 그 손은 여태 한 번도 안 불렀습니까."
여울의 대답이 오지 않았다. 벽에서 배어 나온 물이 손목을 타고 소매로 들어갔고 소하는 그것이 어디까지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소하가 줄을 감았다. "다음에 또 부르겠습니다."
"두 자만큼은 남겨두겠습니다." 여울이 말했다.
올라가는 동안 왼쪽 어깨에 줄이 닿았다 떨어졌다 하는 것을 소하는 눈으로만 알았다.
우물 턱을 넘어오자 기록관이 바로 자를 댔다.
"빗장뼈 아래 두 치." 그가 적었다. "아침보다 한 치 갔다. 한나절에 한 치다."
"얼마나 가까워졌느냐." 은실 두 줄이 물었다.
"모릅니다." 소하가 답했다. "매듭 두 자만 봤습니다. 여울도 셀 새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흔적꾼이 소하의 왼팔을 두 손가락으로 다시 짚었다. 눈을 감았다 떴다.
"그대롭니다." 그가 손을 뗐다. "팔은 여전히 안 읽힙니다. 그런데 안 뗀 손은 읽힙니다. 팔뚝은 안 잡히는데 그 위에 얹힌 손은 잡힙니다. 이런 걸 이십 년 만에 처음 짚습니다."
젊은 관 사람이 마당으로 뛰어 들어와 문 쪽을 가리켰다. "이름꾼이 문 앞에 닿았습니다."
기록관은 붓을 놓지 않았다. 은실 두 줄은 담 그늘에서 나오지 않았다.
소하는 방으로 돌아와 종이를 폈다. 오른손으로 오늘 것을 적었다. 어깨 넘음. 빗장뼈 아래 두 치. 벽 열두 자, 젖어 있음. 매듭 두 자. 부르면 오른손. 왼손은 무릎 위에 뒤집어 놓은 채였다. 다 적고 종이를 접어 오른쪽 품에 넣었다. 빗이 그 안에 먼저 들어 있었다.
담 너머로 종이 한 번 울렸다. 성문이 닫히기 전에 치는 종이었다. 소하는 그 소리는 세지 않았다.
마당에 등잔이 하나둘 걸렸다. 하늘은 아직 회색인데 성문 쪽만 붉었다. 관 사람들이 문 앞을 오가는 발소리가 평소보다 잦았고, 젊은 관 사람은 문 쪽을 자꾸 돌아보다가 소하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거뒀다.
소하는 마당에 다시 나가 문 쪽을 보고 섰다. 오른손 손끝은 아직 저릿했다. 이름꾼이 저 문을 넘어와 우물 앞에 서서 동생 이름을 부르면 그 저림이 어디까지 갈지, 여울을 두 자 위에서 잡고 있는 손이 그때 어느 쪽으로 당길지, 소하가 아직 세어보지 못한 것이 둘이었다. 소하는 오른손을 폈다 쥐고 왼손은 뒤집어 놓은 채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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