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승자의 신화
    10화 · 2026년 10월 1일

    용의 아들은 이방인이었다 — 처용이 노래한 진짜 처지

    처용 이야기는 사건보다 사백 년 뒤에 적혔다

    우리가 아는 처용은 『삼국유사』 권2 「처용랑 망해사」 조의 처용이다. 헌강왕이 개운포에 나갔을 때 동해 용이 일곱 아들을 데리고 나와 춤을 추고, 그중 처용이 왕을 따라 서울로 온다. 왕은 그에게 아내와 급간 벼슬을 준다. 어느 밤 역신이 사람으로 변해 그 아내 곁에 눕고, 돌아온 처용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물러난다. 역신은 무릎을 꿇고 처용의 얼굴만 보아도 그 문에 들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이 책을 엮은 일연은 13세기 말 사람이고, 헌강왕의 재위는 875~886년이다.

    그보다 앞선 기록에는 용이 없다

    김부식이 1145년에 편찬한 『삼국사기』 신라본기 헌강왕 5년(879) 3월 조는 같은 순행을 이렇게 적는다. 왕이 나라 동쪽 주군을 돌 때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네 사람이 수레 앞에 나와 노래하고 춤을 추었는데, 생김새가 해괴하고 옷차림이 괴이하여 당시 사람들이 산과 바다의 정령이라 불렀다. 용도, 역신도 없다. 『삼국유사』는 그로부터 백사십 년쯤 뒤에 이 낯선 사람들을 용왕의 아들로 바꿔 적었다.

    바다 건너온 사람들이 있었다

    같은 9세기 아바스 왕조의 지리학자 이븐 쿠르다지바는 『제도로와 제왕국지』에서 신라에 금이 많고 그곳에 간 무슬림들이 눌러앉는다고 썼다. 개운포는 지금의 울산 바닷가다.

    노래는 뒤로 갈수록 성격이 바뀐다

    『삼국유사』의 향가 처용가는 여덟 줄이고, 끝은 본디 내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겠느냐는 체념이다. 그런데 1493년 성현 등이 엮은 『악학궤범』에 실린 고려의 처용가는 길어지고 목소리가 달라진다. 처용의 얼굴을 눈썹과 귀까지 하나하나 묘사하고 열병신을 잡아 달라고 빈다. 같은 책에는 궁중 처용무의 가면 그림이 실려 있다. 체념하던 사람의 얼굴이 역병을 쫓는 부적이 된 것이다.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해석인가

    확인되는 것은 이렇다. 『삼국사기』 헌강왕 5년 조에 낯선 네 사람의 기록이 있고 용은 없다는 것, 처용과 역신 이야기는 13세기 말 『삼국유사』에 처음 나온다는 것, 9세기 아랍 지리서가 신라의 무슬림을 적었다는 것, 『악학궤범』의 처용가가 역신을 쫓는 노래라는 것.

    해석은 그다음이다. 처용을 서역 상인으로 보는 설은 여러 설 가운데 하나이고, 지방 호족의 아들을 서울에 볼모로 잡아 둔 것이라는 설, 무당으로 보는 설도 있다. 향가의 체념을 이방인이 신라 사회에서 맞설 수 없었던 처지로 읽는 것도 해석이다. 다만 순서는 분명하다. 가장 이른 기록에 있는 것은 용이 아니라 낯선 얼굴이었고, 너그러운 노래는 그 뒤에 덧붙었다.

    0

    댓글 0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구글로 로그인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줄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