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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자의 신화
    11화 · 2026년 10월 6일

    에밀레종에 아이는 없었다 — 명문 천 자가 말하지 않은 것

    종이 제 이력을 몸에 새기고 있다

    경주 국립박물관의 성덕대왕신종은 몸체에 천 자 남짓한 명문을 두르고 있다. 명문은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의 공덕을 기리려 종을 만들기 시작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아들 혜공왕이 그 뜻을 이어 대력 6년, 곧 771년 12월에 완성했다고 적는다. 끝에는 종을 부은 주종대박사 박종일을 비롯해 제작에 참여한 관리와 장인의 이름이 이어진다. 누가, 누구를 위해, 언제, 누구의 손으로 만들었는지가 전부 종 자신에 새겨져 있는 셈이다. 그 천 자 어디에도 아이를 바쳤다는 말은 없다.

    오백 년 뒤의 기록에도 아이는 없다

    13세기 말 일연의 『삼국유사』 권3 탑상 편은 황룡사종과 함께 봉덕사종을 따로 적는다. 경덕왕이 황동 십이만 근을 내어 아버지를 위한 큰 종을 만들려다 이루지 못했고 혜공왕이 이를 완성했다는 내용이다. 종의 재료와 무게까지 적은 이 기록에도 아이 이야기는 없다. 김부식의 『삼국사기』(1145)에도 없다.

    아이 이야기는 언제 글이 되었나

    아이를 쇳물에 넣어 종이 비로소 울었고 그 소리가 어미를 부르는 에밀레로 들린다는 이야기는 신라와 고려의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글로 확인되는 것은 근대에 들어서이고, 1943년 함세덕의 희곡 「어밀레종」이 이 이야기를 무대에 올렸다. 종이 완성된 지 천백 년이 넘은 뒤다.

    쇠는 무엇을 말했나

    1998년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이 종의 성분을 분석했다. 사람 뼈의 주성분인 인(P)은 검출되지 않았다. 구리와 주석이 주성분인 전형적인 청동이었다.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해석인가

    확인되는 것은 이렇다. 종의 명문이 제작 경위와 771년 완성, 장인의 이름을 적고 있다는 것,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인신공양 이야기가 없다는 것, 이 설화가 글로 확인되는 것은 근대 이후라는 것, 1998년 분석에서 인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

    해석은 그다음이다. 인 미검출이 설화를 완전히 부정하는 증거는 아니다. 십구 톤 가까운 쇳물에 아이 하나의 뼈가 섞였다면 그 양은 검출 한계보다 적었을 수 있다. 설화가 근대 이전에 입으로만 전해졌을 가능성도 남는다. 쇠를 붓는 일에 사람을 바쳤다는 이야기는 베이징 종루의 주종낭랑 설화처럼 동아시아에 널리 퍼진 유형이라, 한 종에 옮겨 붙기 쉬웠다는 설명도 있다. 다만 순서는 분명하다. 종은 자기 이력을 천 자로 적어 두었고, 아이의 울음은 그로부터 천백 년 넘게 지나서야 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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