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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자의 신화
    12화 · 2026년 10월 8일

    스파르타 옆에 칠백 명이 있었다 — 테르모필레에서 지워진 테스피아이

    원전은 한 사람의 책이다

    기원전 480년 테르모필레 전투를 가장 먼저, 가장 자세히 적은 것은 헤로도토스의 『역사』 7권이다. 전투가 끝나고 반세기쯤 뒤인 기원전 430년 무렵에 쓰였다. 스파르타 삼백 명의 이야기는 결국 이 책에서 나온다. 그런데 같은 책 7권 202절은 고개를 지킨 그리스 연합군을 도시별로 나열하면서 테스피아이에서 칠백 명이 왔다고 적는다. 테베에서 온 사백 명도 함께 적혀 있다.

    마지막 날 남은 사람들

    페르시아군이 산길로 돌아 들어온다는 소식이 오자 레오니다스는 동맹군 대부분을 돌려보냈다. 헤로도토스는 7권 222절에서 테베인과 테스피아이인만 남았다고 쓰고, 둘을 분명히 가른다. 테베인은 레오니다스가 인질처럼 붙잡아 두었고, 테스피아이인은 스스로 남아 떠나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테스피아이인을 이끈 사람은 데모필로스였다. 헤로도토스는 스파르타인 다음으로 용감했던 사람으로 테스피아이의 디티람보스를 이름까지 적어 둔다.

    비문이 고른 이름

    같은 7권 228절은 전사자 무덤에 세운 비문을 옮긴다. 펠로폰네소스에서 온 사천 명이 삼백만과 싸웠다는 비문이 하나, 그리고 나그네여 스파르타인에게 전하라, 우리가 그들의 말을 따라 여기 누워 있다고 하는 비문이 또 하나다. 뒤의 것이 이천 년 넘게 인용되는 동안 테스피아이의 칠백 명은 이름을 얻지 못했다. 8권 50절에 따르면 테스피아이는 그 뒤 페르시아군에게 불태워졌다. 이 사람들을 기억해 줄 도시가 한동안 없었던 셈이다. 테르모필레의 레오니다스 동상은 1955년에 섰고, 칠백 명의 기념비는 1997년에야 그 옆에 섰다.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해석인가

    확인되는 것은 이렇다. 헤로도토스가 테스피아이인 칠백 명의 참전과 마지막 날의 잔류를 적었다는 것, 가장 유명한 비문이 스파르타인만 부른다는 것, 테스피아이가 뒤에 불탔다는 것, 1997년에 테스피아이인 기념비가 세워졌다는 것.

    해석은 그다음이다. 헤로도토스의 숫자가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페르시아군 삼백만이라는 숫자는 오늘날 거의 누구도 믿지 않는다. 테베인이 억지로 남았다는 대목은 1~2세기의 플루타르코스가 『헤로도토스의 악의에 대하여』에서 편견이라고 반박했다. 스파르타만 남은 이유를 누가 지웠다고 보기도 어렵다. 스파르타가 강했고 비문이 짧고 좋았기 때문일 수 있다. 다만 순서는 분명하다. 칠백 명은 원전에 처음부터 있었고, 그들을 빼고 기억하기 시작한 쪽은 원전 이후의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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