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렌은 무덤에 세우던 새였다 — 꼬리가 붙기까지 천 년
호메로스는 생김새를 적지 않았다
『오디세이아』 12권 184~191행에는 세이렌의 노래가 그대로 인용돼 있다. 그런데 내용은 관능이 아니라 정보다. 우리는 트로이에서 아르고스인과 트로이인이 겪은 모든 고난을 알고, 풍요로운 대지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안다고 그들은 부른다. 오디세우스를 붙잡은 것은 목소리의 아름다움이기 전에 모든 것을 안다는 약속이었다. 그리고 호메로스는 그들의 생김새를 한 줄도 적지 않는다. 몇 명인지조차 이중형 어미로만 암시될 뿐이다.
그림이 알려 주는 몸
생김새는 문헌이 아니라 도기가 알려 준다. 대영박물관의 이른바 세이렌 항아리(적화 스탐노스, 기원전 480~470년경)에는 돛대에 묶인 오디세우스 위로 세이렌 셋이 떠 있는데, 몸은 새고 얼굴만 사람이다. 기원전 6~5세기 그리스 미술에서 세이렌은 예외 없이 새다. 물고기 꼬리는 한 점도 없다.
무덤 위에 올라간 새
더 이상한 것은 그 새가 놓이는 자리다. 아테네 사람들은 묘비 꼭대기에 세이렌 상을 세웠다. 에우리피데스는 『헬레네』 167~178행에서 헬레네가 세이렌을 날개 달린 처녀들, 대지의 딸들이라 부르며 자신의 애곡에 함께해 달라고 청하게 한다. 뱃사람을 죽이는 괴물이 아니라 죽은 이를 배웅하고 곡을 하는 쪽에 쓰인 것이다.
꼬리는 팔세기 라틴어 책에서 붙는다
물고기 꼬리는 그리스에도 로마에도 없다. 지금까지 확인되는 가장 이른 기록은 8세기 무렵 앵글로라틴 괴물지 『리베르 몬스트로룸』으로, 세이렌을 배꼽까지는 처녀의 모습이지만 아래는 비늘 덮인 물고기 꼬리를 가졌다고 적는다. 호메로스로부터 천오백 년가량 뒤다. 인어가 된 세이렌은 그리스의 것이 아니라 중세 유럽의 편집물이다.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해석인가
문헌과 유물로 확인되는 것은 이렇다. 『오디세이아』에 외모 묘사가 없다는 것, 그리스 도기의 세이렌이 새라는 것, 아티카 묘비 위에 세이렌 상이 올라갔다는 것, 『헬레네』의 애곡 요청, 『리베르 몬스트로룸』의 물고기 꼬리.
해석은 그다음이다. 세이렌이 본래 영혼을 데려가는 죽음의 새였다는 설명은 학계의 유력한 가설이지 문헌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스트라본이 『지리지』 1권에서 세이렌의 자리로 적은 소렌토 앞바다를 실제 난파 해역이나 해적과 연결하는 읽기도 마찬가지로 가설이다. 확인되는 것은 방향뿐이다. 애도하던 새가 홀리는 여자가 되는 데 천 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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